시험관 주사 입문기
해 뜨기 전 여명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살다 보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앞두고서 막막한 때가 있다. 어떤 운명이 다가올지 가늠할 수 없어 두렵고, 혹시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게 아닐까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눈 꾹 감고 뛰어들어보면 생각보다 별 게 아니어서 김이 샌 적도 있을 테다. 내게는 시험관이 그랬다. 난임을 진단받았던 당시 내게 시험관이란 불안, 초조, 긴장이었다. 시험관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무엇을 준비하고 맞닥뜨리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조언을 구할 주변인이나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 보니 더욱 그랬다.
개인적으로 난임이라고 하면 반사 작용처럼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오래 전 어느 유명인이 시험관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다. 자기 배에 주사를 놓고 마취 없이 온전히 고통을 참아가며 채취를 하는 동안 카메라는 여성의 괴로운 표정에 멈춰 섰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노력은 위대하지만, 난임은 이렇게나 힘든 일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방송으로는 몇 초 몇 분에 불과했던 그 장면이 내 뇌리에는 강하게 남아, 슬로모션을 건 듯 느리게 재생되곤 했다. 시험관은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나는 그 사람을 가여워했었다. 동정 어린 시선으로 대했다. 불쌍하고도 불쌍한 사람.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의 입장이 되었다. 뭔가 해보기도 전에 기가 죽었다.
시험관이든 인공수정이든 일반적인 난임 시술은 생리 초기부터 약과 주사로 더 많은 개수의 난자를 얻기 위해 배란을 유도하는 과정에 돌입한다. 가장 큰 걱정은 배 주사였다. 주사 바늘을 보면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데에는 그동안 미디어에서 접한 부정적인 선입견도 한몫 했겠지만, 나름의 사정도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결혼하기 전부터 함께 지낸 반려묘 두 마리가 있었다. 어느 날 시름시름 앓던 반려묘를 병원에 데리고 간 날 신부전을 진단받고 난 뒤, 반려묘들이 1년 간격을 두고 차례로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매일 하루 두 번씩 수액을 놓아야 했다. 주사 바늘이 작고 약한 몸의 피부를 뚫을 때마다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신음소리에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그렇게나 묻어두고 싶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이제는 내 손으로 내 배에 직접 주사를 놓아야 한다.
처음으로 과배란 주사를 받아오던 날은 유독 심난했다. 주사약과 일정을 설명해주던 주사실 간호사님이 내 어두운 얼굴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지, 정 하기 어려우면 병원에 오라고 했다. 덥석 그 호의를 붙들었다. 며칠 동안은 매일 천 원인가 이천 원 정도 비용을 내고서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다. 당시 다니던 병원까지는 집에서 걸어가도 무리가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라, 매일 같이 오가기에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병원이 문을 닫는 주말이 다가오자, 기댈 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실전에 임하기에 앞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자가 주사 놓는 법을 찾아보고, 수차례 머릿속으로 연습을 했다. 나보다 앞서 시험관을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해 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고 격려했다. 그래, 다른 사람들도 다 잘해내는데 나라고 못할 리 없어. 세상 최고 겁쟁이에게 약간의 용기가 충전됐다. 한숨 크게 들이쉬고 병원에서 받아온 보냉백에서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역시나 처음은 어설펐다. 주사 바늘을 피부에 대긴 했지만 찌르지는 못한 채 포기하기를 여러 번. 그러다 큰 맘 먹고 힘을 줘봤다. 얼렁뚱땅 바늘이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응? 그런데 의외로 안 아프다. 주사액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꽤 할 만 했다.
결과적으로 그 단 한 번의 시도로 주사가 편해졌다. 하면 할수록 요령도 늘었다. 주사를 맞는 자리는 피부를 최대한 넓게 잡고서 혈관이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위치에 주사 위치를 잡는다. 주사 바늘은 머뭇대지 말고 망설임 없이 한 번에 찌른다. 주사 바늘이 들어간 상태에서 방향을 돌리거나 움직이는 건 금물. 주사 후 해당 부위는 5분 정도 오픈해 놓고, 몇 시간은 누르거나 바지선이 걸리게 하는 행동으로 배를 자극하지 않는다. 그래야 멍이 덜 든다. 프롤루텍스처럼 멍울이 잘 잡히거나 멍이 들기 쉬운 주사는 2~3분에 걸쳐 천천히 놓아보기도 하고, 빠르게 맞아보기도 하면서 자기한테 맞는 속도를 찾는다. 내 몸에는 빠른 속도가 도움이 됐다. 지혈이 된 것을 확인했다면 5분 정도 후에는 손가락 두 개 정도로 조물조물하고 주사 부위를 살살 풀어준다. 이러면 멍울 예방에 도움이 된다. 물론 가끔 피가 나거나 멍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주사를 놓는 게 간호사님이 놔주시는 것보다 편하다. 주사 바늘만 봐도 긴장했던 내가 이제는 자가 주사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됐다.
과배란부터 채취와 이식까지 시험관 한 주기를 통틀어 내게는 가장 마음이 놓였던 때가 과배란 기간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주사를 맞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오히려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을 재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식 기간이 상대적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나 같은 최강 겁쟁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두려움을 키운다. 그러니 주사가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딱 한 번만 과감하게 도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가 주사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임신 준비 과정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테니까.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는 빛을 한자말로 여명이라고 한다. 사전에서 밝히는, 여명의 또 다른 뜻은 ‘희망의 빛’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두운 터널 속에 머물러 있다 여기지만, 희망의 빛은 어김없이 어둠을 몰아내고 새 날을 맞이한다. 모든 시작은 어렵다. 처음이라 서툴다. 당연하다. 하지만 내 안의 두려움은 의외로 단 한 번의 시도로 깨지기 쉽다. 그러니 지레 겁먹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잘해낼 필요도 없다. 해내면 된다. 그걸로 족하다. 소소한 성공을 쌓아가며 우린 분명히 엄마가 되고 있으니까. 우리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가를 데리러 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