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일 뿐
빼도 박도 못하는 40대 중반. 병원 진료 차트에 적힌 내 나이를 확인할 때마다 희미한 한숨이 새어나온다. 아마도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20~30대에 회사에 들어가 커리어를 쌓고 30대에 접어들어 안정을 찾아 짝을 만났다. 이제야 겨우 당신과 나를 골고루 빼닮은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늦은 나이의 임신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간 임신과 출산은 선택의 영역이라 여겼던 여유로움이 난임 병원에 다닌 뒤로 초조함으로 바뀐다.
서른아홉 살이라는 나이에 난임 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수시로 나와 내 남편의 신체적 나이가 문제가 되곤 했다. 채취한 것에 비해 적은 성숙난자 개수, 정상 비율은 낮고 속도도 느린 정자질, 채취 개수에 비해 매우 떨어지는 수정율과 배아 발달 속도. 우리처럼 난임 부부의 대다수가 원인 불명의 난임을 겪고 있다 보니 과배란 제재나 치료 과정을 달리 해도 실패를 하게 되면, 그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만의 하나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던지면, 어김없이 주치의는 조심스레 나이 이야기를 꺼냈다. 성공과 실패는 운이라는 위로 외에는 더 보탤 말도 없다.
결국은 나이를 곱씹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밖에서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보니 자기 자신에게 묻곤 하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같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임신이 어려운 걸까? 고령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없이 아이를 가진 다른 부부들은 어떻게 설명하지? 실제로 가장 친한 친구는 40대에 결혼해 자연임신으로 건강한 딸 둘을 출산했다. 난임을 겪는 부부만이 벌을 받고 있다는 전제도 앞뒤가 맞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부부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뜻일까? 물론 의학적으로는 여성의 신체적 나이 만 35세를 넘어서면 가임력이 낮아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수치가 나에게도 정답인 것은 아니다. 늦은 결혼도 지금의 임신에 대한 결심도 결코 틀리지 않았다. 어엿한 성인으로서 부모로부터 자립하고 나만의 기반을 다지고자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했던 시간들은 옳았고, 우리만의 시기에 평생을 함께할 그 사람을 알아본 나의 안목은 현명했다. 결혼은 긴 인생에서 실수 따위는 하고 싶지 않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기마다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결정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나이가 장애물은 될 수는 있지만, 결코 난임은 신이 내린 벌이 아니다. 아직 아이와 함께하는 계획이 실행되지 않았을 뿐이다. 3년 전 차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분당으로 첫 전원을 하고 의욕 있게 첫 이식을 했다. 하지만 깔끔하게 0이라는 수치로 실패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또 다시 나이 때문에 주눅 들어 있는 내게 새로운 주치의는 말했다.
안 될 이유가 없어요.
그렇다. 나이가 임신과 출산에 불리한 요소이긴 하지만 평생 우리를 난임에 머무르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지금 나는 난임일 뿐이다. 그러니 후회하거나 자책하며 자신을 탓하지 말았으면 싶다. 나이는 바꿀 수 없다.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은 나이 많은 엄마 아빠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품에 안길 아이를 위해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면서 행복한 육아를 준비해 보면 어떨까. 설레발이라고 타박해도 아무렇지 않다. 그게 언젠가 올 그날을 즐겁게 기다리는 방법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