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인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말
처음에는 그랬다. 금방 임신이 되리라는 발칙한 기대감에 주변에 알리지 않고, 둘이서만 조용히 시험관을 진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레 가족과 친구, 지인들도 난임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채취나 이식 일정과 모임 약속이 겹쳤을 때 참석을 하지 못하거나 시간을 조정해야 할 때, 몇 번은 다른 핑계를 대곤 했지만 결국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예상대로 반응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힘들겠다’ ‘아프지?’ ‘안 하면 안 돼?’ 소중한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인 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도 좋을 말 그렇지 않을 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시험관 그거 꼭 해야 해?
과배란이나 채취, 이식 등 여러 약제와 시술로 체력에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염려하는 마음은 안다. 그러나 내 소중한 친구가, 내 가까운 지인이, 이미 그 길을 선택했다. 누군들 자연적으로 아가와 만나길 고대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시험관 시술을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오랜 시간 여러 방도로 임신을 시도한 끝에, 어쩌면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던 이 길로 방향을 틀었을 것이다. 부부가 함께 깊이 고심하고 충분히 상의하여 내린 결정을 그저 지지하고 응원해 주길.
- 시험관 주사 그거 엄청 아프다며?
어차피 안 아프다고 해도 안 믿고, 아프다고 하면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걱정을 넘치도록 하는 당신. 주사는 아픈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다만 처음에 자기 피부에 직접 주사를 놓는다는 경험이 낯설 뿐, 시작하고 보면 다들 잘해낸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듯이 매번 괴로워서 두 눈 질끈 감고 은장도 잡듯 주사기를 배에 내리꽂는 일은 없다. 주사 부위가 겹치지 않도록 위치 선정도 신중하게 해야 하고, 마지막까지 주사액이 잘 들어가는지 확인해야 해서 끝까지 배에 시선을 놓지 않아야 하니까. 처음에는 낯설어도 경험이 쌓여 점점 더 주사에 능숙해진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주사 맞고 약을 챙겨 먹는 게 번거로울 뿐이다. 당신의 걱정이 상대에게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더할 수 있다.
-어디 한의원 혹은 병원이 유명하다더라. 쑥팬티는 입어봤어?
난임 당사자들도 이미 다 안다. 그리고 한약의 경우에는 호르몬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시험관 시술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먹지 않는 게 좋다. 내막이나 생리주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아 난임 전문의들은 권장하지 않는 편이다. 쑥팬티는 임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거나 사봤을 아이템인데, 그것도 당사자의 상황에 맞게 결정할 일이다. 개인적으로 쑥팬티는 플라시보 효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없다’
난임으로 고생하고 있는 소중한 친구나 지인을 곁에 둔 사람이면, 걱정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면, 그 친구나 지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묵묵히 기다려주길 바란다. 섣부른 조언이나 격려는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나, 그리고 내가 알고 지내는 난임 당사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짜잔~~'하고 임신 소식을 공개하는 그 날까지, 먼저 진행 과정을 묻거나 유명한 한의원이나 '카더라'는 임신 잘되는 방법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 일과 견주어 본다. 졸업을 하고 몇 년 뒤에 다른 친구의 결혼식에서 대학 동창을 만났다. 학창 시절에도 워낙에 날씬했던 그 친구는 못 본 사이에 더욱 핼쑥해져 있었다. 혹시 건강에 이상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라고 나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친구는 내 말을 듣자마다 눈살부터 찌푸렸다. 그리고 '가뜩이나 나도 그게 콤플렉스인데,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답했다. 아무리 내 의도가 좋았더라도 상대의 아픈 곳을 건드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시험관 시술을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 2번의 신선이식을 치르는 동안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거의 반 년 만에야 친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매달 생리 주기에 따라 몸 상태를 확인하고 그에 맞게 채취나 이식 날짜를 결정하다 보니, 적어도 한두 달간은 주치의가 판단한 날짜에 맞게 병원을 찾아야 한다. 한 마디로 일상의 중심이 시험관 일정에 맞춰지게 되는 것이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누군가와 약속을 잡기가 부담스럽다. 이미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기 몇 년 전부터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한 친구는, 고맙게도 매번 나를 배려해 시간을 내주었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 우리 사이에 알게 모르게 금기시하고 있던 난임 이야기를 내가 먼저 꺼냈다. 왜 내가 시간을 내기 어려웠는지 사정을 풀어놓다 보니 자연스레 그간의 과정을 털어놓게 되었는데,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리고 내 안의 모든 것을 비워놓고 난 후에야 친구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 따뜻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먼저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늘 너를 위해 기도했어.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이가 쉽게 가져지지 않아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고립감이나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하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원망했던 날들을, 그저 나 혼자서 견디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뒤에는 나를 위해 조용히 기도해주는 이들이 있다. 누구보다 든든한 백이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나를 사랑하고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와 그들의 하나 된 기도가 하늘에 닿지 않을 리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니 난임 과정에 있는 지인이 있다면 그저 '말 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길 바란다. 그들은 반복되는 실패를 딛고 오늘도 간절하게 아이를 기다린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임신에 좋다는 영양제나 한약도 이미 먹을 만큼 먹었다. 이미 그쪽은 반전문가나 다름없다. 난임으로 유명한 병원들도 죄다 꿰고 있고 그 중에서 나와 맞는 선생님도 찾아내 한 차수 한 차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며 괴로워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땐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실없는 연예인 이야기나 날씨 이야기를 나누자. 이 평범한 시간 속에서 당신의 소중한 사람은 슬픔을 조금씩 밀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희망을 채울 것이다. 당신이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난임인 친구나 지인은 잘, 그것도 매우 열심히 해내고 있다. 그러니 슬플 땐 그저 함께 있어주고, 기쁜 소식이 들린다면 당사자보다 더 환호해주자. 그 모든 순간을 그들도 깊이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