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사진으로 보는 배려
얼마 전 동결 이식 준비를 위해 병원에 갔던 날 대기실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두 번이나 임산부 배지를 발견했다. 임산부 배지를 걸 수 있다는 건 엄마의 뱃속에 아기가 예쁘게 자리를 잡아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난임의 세계에서 임신은 졸업이라는 말과 동급이다. 분홍 색 동그라미 속 파란색 머릿결을 뽐내는 엄마는 뱃속에 하트 모양의 아기를 품고 있다. 분명 당사자들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배지를 가방 안쪽으로 숨겼을 텐데, 내 눈은 희한하게도 그런 작은 부분을 놓치지 않는다. 평소 세심하다거나 예리한 성격이 아닌데도 그렇다. 보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마도 나 역시 한때 그것을 가져본 적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로부터 3주 후 유산으로 잃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임신을 하고 아기집을 확인했던 임신 5주차 당시, 남편은 신이 나서 보건소로 달려갔다. 막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라 챙겨줄 게 별로 없다며 미안해하던 직원 분은 몇 번이고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남편을 배웅했다. 남편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와 보건소에서 바리바리 챙겨온 임신 축하 선물들을 펼쳤다. 그 중에 임산부 배지도 있었다.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서야 특별히 쓸 데는 없었지만, 너무나 바라고 가지고 싶었던 것. 당장 밖으로 나가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디어 나도 엄마가 됐다. 예전의 그 벅찬 감동이 되살아나, 나도 모르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할 뻔했다. 아마 실제로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냈더라도 서로 어색했을 것이고, 그 안에 있는 누군가는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차분한 병원 대기실이 조용히 출렁였을 것이다.
우리가 있는 곳이 산부인과가 아닌 난임 병원이었던 까닭이다. 대체로 임신 사실을 알고부터 출산하기까지 다니는 산부인과와 달리 난임 병원에는 절실하게 임신을 원하는 사람들이 오간다. 요즘에 와서는 임산부 배지나 볼록한 배를 보면 속으로 ‘아가야, 내게도 임신의 기운을 주렴’이라고 부탁할 만큼 덤덤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의 임신 소식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굴었다. 왜 나는 남들 다 갖는 아이를 이렇게도 갖기 어려운지 한탄하고, 어떤 때는 심사가 뒤틀렸는지 지나가는 유모차나 어린 아이를 보며 질투하고 소심해지도 했다. 난임이란 이렇게도 거대한 파도를 넘나드는 작은 조각배처럼 아슬아슬하게 정서적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다. 그래서 막상 임신에 성공했더라도 병원 안에서는 기뻐하는 티를 내기가 조심스럽다.
난임 병원을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문율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기실에서 아기 초음파 사진이나 심장 초음파 영상 꺼내지 않기이다. 뱃속 아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만큼 초음파 사진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심정은 이해한다고 쳐도, 부부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심지어 양가 어른들에게 전화를 걸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은 소감을 전하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목격한다. 돌려 말하지 않겠다. 너무나 무심하고 야속하다.
물론 새 생명은 축하하고 축복받을 일이다. 하지만 아직 그곳에 과거의 자신도 함께 있다는 걸 기억한다면, 어떨까. 우리가 있는 그곳은 아가를 만나기 위해 온 사람들, 어쩌면 그 중에는 얼마 전 유산으로 아이를 보냈거나 반복된 실패로 다른 사람의 임신 소식조차 듣기 버거운 심정으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 티내지 않을 뿐 조각나고 부서진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같은 여정을 지나온 사람이 또 다른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약해지고 힘들었을 때 듣기 싫었던 이야기나 무례하게 여겼던 행동을 다른 이에게 해서는 곤란하다.
요즘처럼 아이가 귀한 세상에 다 큰 어른이 이렇게나 속 좁게 굴어서야 되겠느냐고 타박한대도 어쩔 수 없다. 대놓고 드러내기엔 부끄럽기는 해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여긴다. 지극하게 바라고 노력하고 기다린 만큼 절망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보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밑바닥을 목격하고, 남몰래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난임은 이렇게도 정서적으로 약한 부분만을 들추고 헤집는다. 그래서 난임이라는 과정을 씩씩하게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 챙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 챙김의 첫 번째 주체는 당연히 자기 자신이겠지만 난임 여성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난임 여성들은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어쩌면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보다 더. 그런 난임 여성들이 배려하고 보살펴준다면, 조금이나마 평온하게 졸업을 맞이하지 않을까. 난임 동료들의 보이지 않은 연대가 필요한 순간 필요한 이에게 분명 든든한 지지가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