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한 달간 도넛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번 냉동이식도 한 자릿 수 임신 수치를 보이며, 비임신으로 종결됐다. 두 달간 근종 크기를 줄여보고 내막을 키우며 신중에 신중을 기할 만큼 건강하고 예뻐 보였던 배아가 해동을 하면서 분열 속도가 느려졌다는 설명을 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남편에게 실망하지 말라며, 남편은 내게 수고했다며 서로를 도닥인다. 엄마 아빠한테 오기도 전에 이렇게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걸 보면, 우리 아이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도대체 뭘로 유혹을 해야 한 걸음이라도 빨리 우리 곁에 와 주려나 싶다. 너무나 어려운 고민이다.
당연히 속상하다. 한 치의 기대 없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질 수 있을까? 내 의지를 거스른 결과로 인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굴레가 망연하기도 하다. 덤덤한 척 이번만은 다른 결말이기를 바랐으니까. 이번 이식으로 남은 배아를 소진했기 때문에 바로 이어 채취를 해보자는 주치의의 제안에 그러마고 대답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남해 여행은 이로써 또 다시 미뤄진다. 항상 질이 아쉽긴 하지만 40대 중반이라는 신체 나이를 고려하면 이상할 게 없고, 그래도 아직은 난소 기능이 나쁘지 않다는 의학적인 위로(?)에 ‘잠깐 쉬고 올까 봐요’라는 말이 쏙 들어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감사하다. 초기에 임신과 비임신이 명확하게 판가름이 나면서, 바로 이어 다음 차수에 돌입할 수 있다. 세 차례의 유산을 경험하는 동안 분명히 이별하고 있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바라며 마음 졸여야 하는 시간들, 그리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다른 시작을 준비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절약할 수 있다. 우리 부부의 목표는 착상 즉, 임신이 아니라 건강한 아이를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채취를 앞두고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나보다 더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를 만난 분들도 분명 있지만, 나 역시 인내한 시간의 길이가 결코 짧다고 여기지 않는데 말이다. 문득 내가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지, 되짚어 봤다. 무엇 하나도 특별하지 않아도 좋으니, 오직 건강한 아가가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공부를 못해도 좋고, 운동에 젬병이어도 상관없고, 책 읽기를 싫어해도 괜찮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이번에 우리에게 아이가 오지 않은 것은 우리의 기도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조잘대며 아이와 하고 싶은 순간을 계획한다. 봄이 되면 도시락을 싸서 가까운 공원에서 매일 소풍을 가야지, 별이 보고 싶다 하면 언제라도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데려가 줘야지.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주방이 어질러진대도 조물조물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며, 맛있는 추억을 만들어줘야지. 자전거를 타고 싶다면 함께 자전거를 배워야겠다. 사춘기가 와서 우리와 멀어지려 한 대도, 우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줘야지. 그리고 아주 먼 훗날 자기만의 세상을 찾아 떠난다면, 기쁘게 배웅할 수 있도록 매일 아낌없이 사랑해줘야지.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 때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이 되어줘야지.
우리 부부는 그래서 또 다시 다음을 기약한다. 지나간 시간이 준 무게가 서서히 덜어지면, 그 자리에 새로운 가능성이 차오른다. 지난 몇 달간 체중이 쏙 빠져 한층 건강해진 남편 덕에 이번에 만날 배아는 튼튼하지 않을까 설레발을 친다. 말이 씨가 된다 하니, 우리의 말이 진짜 좋은 씨가 되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변함없이 긍정적인 상상으로 어서 오라고 아이를 부른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산타에게 받을 선물을 고민하는 어린아이처럼, 밤하늘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을 향해 기도한다. 우리에게 꼭 건강한 아이를 보내달라고. 나와 남편은 또 다시 들뜬다. 아이와 함께 할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리다 보면, 바닥났을 거라 여겼던 힘이 솟아난다. 그러니 실망할 틈도 없다. 반드시 우리에게도 해피엔딩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