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으로 취소될 뻔한 채취에 성공한 사연
새해 첫날부터 남편과 크게 다퉜다. 이튿날에는 전날까지 멀쩡했던 세면대 배수관이 터졌다. 이 정도면 새해 액땜은 끝이려니 싶었는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1월의 셋째 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픽하고 쓰러졌다. 독감이었다. 체온을 재보니 38.5도. 체온계는 분명히 고열을 가리키는데, 근육통으로 쑤시는 몸을 주물러 주려고 만져보니 죽은 사람처럼 온몸이 차갑다. 얼음장 같다는 게 이런 상태를 말하는 거구나. 밤새 오한에 사시나무 떨 듯하는 남편의 몸을 주무르고, 수시로 젖은 수건을 갈아주며 곁을 지켰다. 따뜻한 보온주머니를 품에 안겨주고 두꺼운 이불을 덮어줘도 온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러다 남편을 잃으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요 근래 부쩍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다더니 독감 전조 증상이었나 보다. 기침할 때마다 폐와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고통스러워하고, 고열과 근육통으로 끙끙대며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남편은 당일 오전에 예정된 채취를 하지 못할 것 같다며 미안해한다. 나는 이미 오비드렐과 데캅페틸, 난포 터트리는 주사까지 다 맞고 자정부터 금식 중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몇 시간 뒤에 병원에서 잘 자란 난포를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 시험관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채취가 취소될 참이었다.
그런 걱정은 말라고 채취 따위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내심 날이 밝으면 이 새벽만 잘 견뎌내면, 평소처럼 남편은 장난치며 씩씩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어둠이 걷히고 병원 진료가 시작될 시간을 넘겨도 남편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남편 회사에 출근은 어렵겠다고 소식을 알리고, 병원에도 전화를 걸어 채취하러 갈 수 없다고 전했다.
아픈 남편을 데리고 동네 병원을 찾았다. 증상만으로 볼 때 전형적인 독감이어지만, 독감과 코로나 검사에서 모두 음성이 나오는 바람에 빠른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독감 수액은 맞을 수 없었다. 아마도 다음 날이면 키트에 반응이 나타날 거라 했다. 하룻밤을 넘기기 위해 진통과 고열을 낮춰주는 수액을 맞아보고 싶었지만, 현재 주사실을 점령한 독감 환자들 사이에 남편을 두기엔 전염 위험이 높다고 했다. 지체하지 않고 근처 대학병원으로 달렸다. 다행히 차트를 만들어둔 이비인후과 주치의 선생님이 보시고는 단박에 독감 증상이라고 진단을 내려주신 덕분에, 진통제와 해열제가 든 수액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지난 밤 이후 처음으로 남편은 고른 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도 차츰 내렸다.
남편의 상태가 진정이 되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속상함도 밀려왔다. 시계를 보니 이미 예정된 시술 시간을 훌쩍 넘겨 배란이 되었겠다 싶다. 채취가 취소되었으니 수면 마취를 위해 금식할 이유도 없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목이 마르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다. 남편이 먹고 싶다던 차갑고 부드러운 푸딩을 사러 병원 내 편의점을 찾았다. 평소 같으면 코를 킁킁거리며 유혹에 넘어갔을 군고구마 냄새에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갑상선 약을 먹기 위해 물 반 모금 정도만 살짝 입만 댔다. 수액이 줄어들수록 남편의 통증도 가라앉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이걸로 됐다. 속상하지만 어쩌랴. 채취보다 내 남편이 먼저지. 몇 시간 전 남편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던 그때 병원 침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우리가 다니는 난임병원에서 보내온 메시지였다. 최근에 바뀌었다는 주차 시스템 안내겠거니 하고 떨떠름한 기분으로 메신저 아이콘을 눌렀다. 그런데 전체 메시지가 아닌 개인 메시지였다. ‘정말로 오늘 병원에 올 수 없냐’고 물었다. 그리거 이어 ‘오늘 방문이 어렵다면 다음 번에 생리가 시작되고 다시 병원을 찾아달라’고 했다. 아마도 보낸 이의 의도는 다음 차수로 넘기자는 것이었겠으나, 이상하게도 서두의 ‘병원에 정말 올 수 없냐’는 물음이 마음에 걸렸다. 확실하게 채취 취소 의사를 밝혀두자는 취지에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간호사님의 목소리. 배란이 됐으리라고 예상은 하지만 만약을 위해 주치의 선생님께 문의해 보겠다는 의외의 답변을 받았다.
에이, 이미 채취는 무리지.
이미 머릿속으로 깔끔하게 포기한 상태였다. 일말의 기대 없이 그로부터 20분 정도가 지났으려나. 역시나 이번 차수는 어렵겠다는 예상 답변은 온데간데 없이, 지금 당장 내원할 수 있겠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능한 한 서둘러 병원에 와야 된다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초음파로 배란 여부를 확인해 보고, 혹시라도 배란이 되지 않았으면 채취를 해보겠다고 하셨단다. 하지만 차마 아직 병원 침상에 누워 있는 남편에게 병원에 가자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냥 그렇다고, 방금 전 전해 들은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려줬다. 축 늘어져 있던 남편이 대뜸 ‘가자’고 벌떡 일어났다. 아니, 반드시 가야 한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역시 우리 남편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다. 콜벨을 눌러 수액 바늘을 빼고 차에 올랐다. 입으로는 안전이 먼저라고 이미 배란이 된 걸 확인만 하러 가는 거라고 했지만, 평소와 달리 나는 속도를 올리고 차로를 옮기며 시간을 앞당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덕분에 출발할 때 내비게이션에서 알려준 도착 시간보다 이르게 난임병원에 도착했다.
진료실에 들어선 우리를 보고 주치의 선생님은 남편의 건강을 염려했고, 남편은 방금 전 처방 받은 항생제와 약물이 채취에 줄 영향을 걱정했다.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고 단호하게 ‘아무 문제없다’고, 오히려 약을 쓰지 안고 고열이 지속되게 두는 것이 더 나쁘다고 남편을 달랬다. 난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진료대 위에 누웠다. 응? 그런데 몸속에 기구가 들어가자마자동글동글한 난포들이 보인다. 진작에 배란되어 쪼글쪼글해졌으리라 여겼던 난포들이 기특하게도 여태 버텨주고 있었다. 오른쪽에 3개, 왼쪽에 3개. 그 중에 충분히 자란 난포는 3개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오전에는 채취, 오후에는 이식이 이루어지는 수술실이 오후 3시 넘어 내 채취를 위해 문을 열었다. 그렇게 우리는 귀한 성숙 난자 4개를 얻었다. 채취 후 회복실을 찾은 선생님은 제일 먼저 잘 되었다고, 나와 남편 모두 놀라고 힘든 하루였을 테니 푹 쉬라며 토닥여주셨다. 기적이었다. 시술 예정 시간을 4시간 이상 넘겼는데도 난포들이 기다려줬다. 주치의 선생님이 포기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로 인해 분주했을 선생님과 간호사님,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배양실 연구원 여러분들 모두에게 새삼 죄송하고 감사하다.
채취된 난자와 정자가 만나 어떤 배아로 결실을 맺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얼렁뚱땅 무사히 끝난 이번 채취로 인해 우울할 뻔한 새해의 시작이 기분 좋은 출발로 바뀌었다. 혹시 결과가 좋지 않아도 상관없다. 당사자인 나와 남편보다도 의지를 꺾지 않고 완주해보자고 격려해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서 가슴이 꽉 찬다. 포기를 포기해야 기적은 온다. 올 한해 운수가 좋을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