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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아이

by 서호근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기는 엄마와 아빠 두 사람의 사랑 의학적으로는 DNA의 결실이다. 하지만 시험관을 진행하다보면 아내인 나와 남편의 속도가 달라서 빚어지는 문제들이 종종 발생한다. 우리의 경우를 예로 들면 시험관이 남성으로서 자존심을 굽히는 일이라고 여겼던 남편이 혹시 채취일에 도망(?)가지 않을까 염려하는 하는 마음에, 제 날짜 제 시간에 병원에 올 수 있도록 내내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혼자서 병원을 오가야 했다.


시험관의 참여도는 여자 쪽의 비중이 단연 높다. 생리 주기에 따라 난소와 자궁 상태를 확인하고 과배란을 하고 채취를 하고 이식을 한다. 그래서인지 난임병원 대기실에서는 부부 동반보다는 여성 혼자서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흔하다. 참여도와 심리적 부담감이 비례하는 모양이다. 여성은 임신에 대한 부담을 홀로 떠안기가 쉽고, 시험관을 하면서 겪는 신체적 정서적 문제를 남편은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아직 서로를 이어주는 주파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아니 몇 번 난임 병원에서 이런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아마도 산전검사로 난임을 판정받은 지 얼마되지 않아 보였던 한 부부가 대기실에 나란히 앉아 낮은 목소리로 서로에게 감정을 높이고 있었다. 여성은 난임이 된 원인과 시험관이 임신을 도와줄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남편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남편 쪽은 왜 자신이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조차 납득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입장 차는 줄어들지 못하고 결국 남편 쪽에서는 벌컥 화를 냈다. 조용한 병원 대기실이 출렁였다 가라앉았다. 난임의 원인이 어느 쪽이든 간에 난임을 받아들이고 하루빨리 의학적인 도움을 받자는 입장과 아직 난임이라는 사실 자체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입장 사이에서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질 리 없었다.


이 정도 고차수쯤 되니 하는 말이지만, 이런 경우 무리하게 시험관이나 인공수정을 진행하기 보다는 충분히 부부가 대화하고 난 뒤에 시술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시험관을 하는 동안 부부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큰 도전은 바로 불확실성이다. 치료가 어떻게 진행될지, 시술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공감이다. 부부 간의 신뢰가 없다면, 각자의 걱정과 불안을 서로에게 투사하며 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 반면,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


나 역시 저차수에는 병원에 가기 싫다는 남편을 어르고 달래가며 다녔었다. 홀로 씩씩해져야 했다. 하지만 혼자서 시험관에 참전(?)한다는 감정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고,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내 불안한 감정들을 비난으로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시작한 시험관으로 인해 서로 멀어지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그래서 우린 거의 2년간 연이어 달리던 시험관을 멈추고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오로지 둘만의 이야기를 했다. 묵힌 감정을 꺼내고 풀고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우린 나란히 손을 잡고 난임병원으로 돌아왔다.


시험관은 남편과 아내가 단지 시술의 동반자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서로를 지원하고 이해하면서 두 사람의 아가를 만나러 가는 과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험관은 부부 두 사람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공고히해주는 과정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부부 간의 공감은 단순히 감정적인 교류를 넘어 서로의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부부는 단지 부모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남편의 역할은 시험관이 두 사람의 아이를 만나러 가는 여정임을 깨닫고 예비 아빠로서 함께 하는 것이다. 아내만큼 남편도 아내의 주사 맞는 날을 기억하고 함께 병원에 동행하거나, 아내가 피곤해할 때 집안일을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아내의 기분을 살핀다면 아내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시험관은 여러 번의 반복적인 과정과 시간이 드는 만큼 남편의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는 아내에게 큰 힘이 된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는 함께 이 과정을 겪고 있고, 나는 네 곁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이와 더불어 건강한 식습관, 체중 관리, 스트레스 감소 등을 통해 정자의 질을 높여 시술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도 잊으면 섭섭하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한 가지 목표를 위한 과정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부부는 더 큰 관계의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 우린 아직 아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이전보다 훨씬 더 긴밀하고 가깝다. 부부의 사랑 속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더 없이 좋은 환경이 될 것이고, 혹시 임신이 더 늦어지거나 끝내 아이가 오지 않더라도 두 사람은 변함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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