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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찐 시험관 고차수였다

by 서호근
혹시 임신 20주 이후 중기유산하거나 출산하신 이력 있으신가요?


이달 초 우여곡절 끝에 채취를 마치고 시술비를 결제하려던 그때, 원무과 직원에게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아니요’라고 답하면서도, 뭔가 뒤가 개운치 않다. 내게 그런 질문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노력하며 물었다. 이번 채취로 건강보험 지원 차수가 모두 소진되어, 혹시 지난 11월부터 확대된 정부지원 난임시술비지원금 대상자에 포함되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고 했다.


어라, 내가 벌써? 지난 11월부터 1일부터 건강보험에서 급여로 인정해주는 난임시술 급여 횟수가 출산당 25회로 늘었다. 그 중 시술횟수는 인공수정 5회 별도로 급여로 적용하고, 신선배아와 동결배아를 통합하여 체외 수정 20회까지는 급여로 인정되어 정부 지원을 받는다. 내 경우에는 신선배아와 동결배아를 합친 20회까지 정부 지원 차수를 다 썼다. 지원 차수가 지금보다 적었을 때 정부 지원 없이 서울시 난임부부시술비지원금만 받고 시험관을 진행했거나 100% 자부담으로 병원에 다녔던 횟수를 합하면 20회는 우습게 넘는다.


어떤 지원도 없이 100% 자부담으로 시험관을 진행했을 때 채취는 200~300만원대, 이식은 100만원대가 들었다. 채취와 이식이 한번에 이루어지면 5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기도 한다. 다행히 서울시는 인공수정과 신선배아, 동결배아 상관없이 25회까지 난임 시술 비용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아직은 한숨 돌릴 여지가 있다. 다만 조금은 씁쓸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채취만 18번, 이식은 9번. 꽤나 많이 그것도 오래 난임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아이는 자기만의 때가 있는 거라, 남들보다 조금 늦는 거라고 믿었다. 지금 당장 속상하고 힘들 뿐, 내 아이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일절 없기에 스스로를 혹은 아이를 기다리는 다른 난임 동료들과 서로를 다독이면서 수없이 일어났다. 버거우면 놓아버리고 때로는 도망치기도 했던 내 안에 신기하게도 그런 힘이 있었다. 난임을 계기로 너와 내가 아니라 부부로서 끈끈해졌다.



짜증나


다소 무거워진 마음을 불들고 있기 버거워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매번 반복되는 칭얼거림에 질릴 만도 한데도 그는 언제나 처음 듣는 것처럼 끝까지 묵묵히 들어준다. 그것만으로도 돌덩이 같던 무게의 반은 덜어진다. 엄마가 이렇게나 열심히 노력하는데, 자식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렇게나 엄마를 힘들게 한다며 내 편을 들어준다. 어라, 이렇게 허무하게 충전이 돼버리면 안 되는데. 최선을 다해 위로해 주려는 남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고차수가 되었더라도 감정의 굴곡 앞에서 별 수 없다. 흔들면 흔들린다. 다만 차수가 쌓일수록 요령 하나가 생겼다. 일어나야 할 땐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남편의 응원을 붙잡고 이번에도 '끙차' 힘을 내 일어난다. 누군가는 무의미한 희망이라 부를지도 모르지만, 나의 마음은 ‘또 다시’를 향한다. 기적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니까. 우리에게 올 다정한 온기를 품을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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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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