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고요했던 아침이 또랑또랑한 아이 목소리로 유쾌하게 기지개를 켠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웃집 꼬마를 마주쳤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아이는 자기 몸의 반만한 책가방을 메고, 깡충깡충 걷는다. 새삼스레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옆집 노부부 내외는 맞벌이로 바쁜 자식 내외 대신 낮 동안 손주를 돌본다. 출산 과정이 힘들어 병원에서 산후조리 대신 치료를 받아야 했던 엄마와 떨어진 갓난쟁이를 정성을 다해 길렀다.
오며가며 유모차에 누워 있거나 어른 품에 안겨 있는 아이에게 어색하게 웃어주는 게 전부였지만, 나 또한 꼬물이가 작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제는 제법 의젓한 어린이로 자란 아이는 인사성 밝은 할머니를 빼닮았다. 그저 이웃 아줌마일 뿐인 나를 먼저 ‘어?’하고 아는 체를 한다. 나를 보고 웃는다. 반가움이 묻어나는 인사와는 달리 표정은 할머니 지인이라 아줌마라고 불러야 할지 언니라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곤란한 눈치다. 조만간 호칭 정리를 해주어야겠다.
명색이 어른으로서 부끄럽지만, 처음부터 이 아이가 예쁘진 않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같이 늦은 밤 울고 떼쓰는 갓난아기의 목소리가 우리 집 현관을 넘고, 작은 두 다리로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내는 울림이 벽을 타고 전해질 때는 사실 힘들었다. 그러나 이웃에게 항상 미안하고 감사해하는 노부부를 생각하면, 정색하고 싫은 티를 낼 방법이 없었다. 하루빨리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가고 노부부 집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길, 그저 시간이 잰 걸음으로 달려가 주길 바랐다.
그러나 아이가 자랄수록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한 아이는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현관문 앞을 왔다 갔다 하며 걸음마 연습을 하는 수준이었다. 아이는 아직 자기 몸을 사용하는 데 서툴지만 자기 발로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는 데 가능성을 발견하고 불타올랐다. 다니는 곳마다 신나는 모험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휘청거리는 걸음마다 꺅깍 한 번, 바닥에 신발이 부딪는 소리와 아이의 환호성이 복도 안에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슬슬 자신감이 붙었는지, 이제는 익숙해진 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벗어나 다른 쪽을 노리기도 했다.
역시나 가장 만만한 좌표는 같은 층의 우리 집. 아장아장 걸어와 자기 손이 닿는 도어락 손잡이에 힘껏 손을 뻗어 찰칵찰칵 힘차게도 흔들었다. 사정을 몰랐던 나는 혼자 있는 집에 도둑이나 이상한 사람이 침입하려는 줄 알고 깜짝 놀랐었다. 누구냐 물어도 답이 없이, 들리는 건 손잡이를 흔드는 소리뿐. 외출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안 돼’하고 만류하며 달려오는 노부부의 다급한 외침, 강제로 끌려가며 우는 아이의 억울함 가득한 울음소리를 듣고 범인의 정체를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강박이 풀리자마자 다시 이쪽으로 돌진했다. 보지 않아도 소리로 알았다. 그 후로 한동안 아이의 발소리가 우리 집에 가까워질 때마다 종종 나는 예민해졌다.
그날도 아이는 우리 집 도어락 손잡이를 탐냈다. 아이의 존재를 확신한 나는 이날만큼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차마 항의까지는 못하더라도 그 시간에 집안에 사람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애쓰고 계신 줄은 알지만 앞으로 재기발랄한 손주에게 더 신경을 써 달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싶었다. 하나 둘 셋, 큰 숨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열린 문 틈 사이로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이 내 눈에 가득 찼다. 세상 더러운 것이라곤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순진한 표정이었다. 이 앙증맞은 생명체와 눈이 마주치자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됐다. 목까지 차올랐던 말과 감정들이 원래 없던 것인 양 쑥하고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나는 남편 몰래 먹으려고 아껴둔 포도맛 젤리를 아이 손에 쥐어주려고 잽싸게 움직였다. 소심쟁이가 야심차게 계획했던 작전은 실패했다. 싸워보기도 전에 나는 졌다.
그 후로도 아이는 활기찼다. 울고 웃고 짜증내고 행복해하는 소리가 벽으로 공기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데시벨은 여전한데 그전만큼 거슬리지 않았다. 아이는 변함이 없는데, 내가 달라졌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이고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그 날부터다. 누군가의 아이가 내가 아는 아이가 되었다. 몇 호 어르신들의 손주가 아니라 다정하게 ‘Y야’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느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던 이유를 어스름하게 알 듯도 하다.
Y는 요정이었을까. Y의 마법은 다른 곳에서도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얼마 뒤 윗집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고 몇 년을 살았다. 그 중에 어린 아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 뛰는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천장을 울렸다. 한 번은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가 이 정도 소음이면 항의를 하든지 신고를 하든지 뭐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도도도도’하고 짧은 다리로 뛰어다닐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 아이일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친구는 얘가 제정신인가 싶은 표정을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드디어 얘가 미쳤구나 싶었을 거다. 당시 나는 윗집 아이 부모님이 할 수 있는 한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꽤나 두꺼운 매트를 깐 모양인지 아이의 발소리는 크지만 둔탁했고, 밤 9시 이후로는 어떤 식으로든 아이를 재우는 듯 고요해졌다. 무엇보다 아이 부모인 어른들의 기척은 일절 느낀 적이 없었다. 부모의 고군분투를 뛰어넘는 작은 사람의 생기발랄함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아이라고 해서 아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너그럽게 봐주어서는 안 된다. 소중한 아이가 자라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옳고 그름을 가르칠 수 있는 단호함도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가 아이다운 것이 무례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요즘, 나 역시 그렇게 작은 존재였음을 상기한다. 내가 철모르는 말썽쟁이였을 때 아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흐뭇하게 기다리고 지켜준, 이름 모를 친절들이 새삼 고맙다. 나 역시 당사자는 눈치 챌 수 없고 기억할 필요도 없는 수많은 호의 중의 하나가 되고 싶다. 한 아이가 나를 그런 어른이 되고 싶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