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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Nov 01. 2020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를 읽고


내가 읽어본 책들 중에 감히 최고의 책들 중 하나. 저자의 집착과 열정 그리고 전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몇 안 되는 책이다. 책을 쓰고 싶단 욕심은 많이 없으나 만약 쓰게 된다면 이런 책을 쓰고 싶다. 


이번에 두 번째로 책을 읽었지만 사실 책을 읽고 어떤 내용을 정리해야 할지 감조차 안 오는 방대한 내용의 책이다. 인상 깊은 문구들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덧 붙인다. 


"나는 서서히 죽음과 황폐에 단련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자의 뛰어난 부분 중 하나가 한때는 종양학과 의사, 어쩔 때는 환자, 어쩔 때는 보호자, 어쩔 때는 과학자 여러 가지 모자를 써가며 그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이 문구에서는 종양학과 의사로서의 그 무뎌짐 들을 묘사한다. 


"그렇다면 암과 싸우는 비결은 취약한 세포에 이런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수단을 찾아내거나, 정상적인 성장에 피해를 입히지 않은 채 돌연변이 세포를 제거하는 수단을 찾아내는 것이 된다."


정말 말은 쉬운데, 이론은 쉬운데, 어려운 암 치료.


"엽산이 아이의 백혈병 세포 생산을 가속시켰다면, 반대되는 약물, 즉 항 엽산제를 투여하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간단한 발상.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궁금증이 결핍된 과학자들 의사들도 많이 만난다. 논문을 내기 위한, 졸업을 위한 연구내용이 아니라 정말 궁금증에서 드라이브가 되는 그런 기초과학자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 


"양쪽 사례에서 죽어간다는 것이 죽음보다 더 그 병을 규정한다"


죽어간다는 것.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면도 있지만 서서히 물에 잠겨가는 듯한 그 감정들. 그리고 마지막이 언제일지 모르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고문..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킴으로써 암의 정체를 드러나게 한다"


헷갈리기 쉬운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수명이 연장됨으로써 암의 정체가 드러난다. 사실 이 둘의 관계는 복잡하긴 하다. 노화와 암은 인과관계지만 단순히 수명이 늘어나서 암이 더 생겨난 건 아니라는 점.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선택적으로 죽이는 엑스 선의 능력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암 연구자들이었다."


이런 케이스들은 얼마나 과학 정보의 보급 및 확산이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논문이 발행되고 그 논문을 지구 반대편 과학자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엄청난 현상. 


"그의 약학적 탄환은 마법적이기는커녕 너무 무차별적이거나 너무 약했다."


너무 과하던지 아예 안 하던지. 안타까운 현실. 비단 항암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두 번째 변신 - 임상의에서 암 연구 대변인으로의 변신 - 은 암 자체의 변신을 반영했다. 지하실에 틀어박혀 있던 암이 공개활동이라는 눈부신 세계로 나오면서 이 이야기의 궤적도 달라진다."


책 나중에도 나오는데 종양학 그리고 의학이 과학과 사회의 경계면에 있다는 것이 와 닿는 부분. 어떻게 보면 우리가 과학과 기술 발전을 이해할 때 좀 더 포괄적으로 사회, 정치적인 요소까지 다 고려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영국 통계학자가 특이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무작위 실험군 대조군이 이 때는 특이한 해결책이었다는 것. 그리고 한편으론 1940년에 나온 이 "특이한" 해결책이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 최근에 데이터 사이언스, 그중 머신러닝의 발전으로 좀 더 "특이한" 통계적 해결책이 임상의 비용을 줄여줄 수 있길. 


"암은 모든 가시적인 징후가 그것이 사라졌다고 말한 뒤에도 오랫동안 전신 치료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1950년대의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가 너무 닮아있어 슬픈 현실. 사람들의 관심이나 주목은 많은 발전을 이뤄낸 암종들에게 집중되지만 아직도 그때(?)와 비슷하게 치료되고 있는 암들이 아직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론 안타깝고 갈길이 멀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다소 일반적이라고 할 독들은 왜 어떤 암들은 전혀 손대지 않고 특정한 형태의 암만을 치유하는 것일까"


과학자의 궁금함. 그리고 암의 이질성(Heterogeneity)을 잘 보여주는. 암 종간들 외에 암 종내에서도 이질성이 존재하는 정말 어려운 질병.


"따라서 근치 수술이 몰락하자, 외과의 문화 전체가 더불어서 무너졌다."


외과와 종양내과의 문화적 차이 혹은 정치적 충돌은 2020년에도 존재하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이 책을 통틀어서 봤을 때, 기본적인 가설의 첫 검증에서 유난히 흥분하는 과학자들을 볼 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물리에서의 법칙처럼 X와 Y의 관계를 보여주기가 힘든 것은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종양학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종양학은 대체로 우연히 발견되는 상대적으로 무차별적인 세포독성 약물이 암을 완치시킬 것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혔다."


과학적 발전이 줄 수 있는 환상 중 하나. 하지만 당연히 또 그렇게 믿고 싶을 것 같고 믿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언론에서 이런 문구를 받아서 사람들이 환상에 취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없는지? 그리고 자원은 한계적인데 이럴 때 정책적 연구비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문제들이 생각난다. 


"마법 탄환을 찾으려면 암이라는 마법 표적을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왜 일부 유방암은 난소가 제거되면 줄어드는 반면, 전혀 반응하지 않는 유방암도 있는 걸까?"

"암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약물, 하나의 표적, 하나의 암세포가 핵심 분자 논리로 연결된 것이다."


1920년대 말의 전립선 암의 남성호르몬. 그리고 유방암의 여성 호르몬. 그래도 이렇게 표적을 찾기 시작하는 단계가 정말 흥미로운 부분. 과학적 호기심이 임상적 결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 짜릿한 순간이다. 


"주변 림프절에만 퍼진 암, 즉 더 국소적인 2기 유방암에는 더 잘 듣지 않을까?"

"이런 임상시험들을 통해 암의 미묘한 차이점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암 의학에 심각한 영향이 미쳤다."


어떻게 보면 과잉치료로 인식될 수 있겠지만 진화나 악성이 덜 심한 초기 암에 표적치료를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1960대. 그리고 '선수술 후 항암'의 개념도 등장. 


한편으론 임상을 통해서만 확인을 해야 한다는 점. 전임상에서도 이런 미묘한 차이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이 세팅되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보면 현대의학에서 항암제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수많은 선배 환우들의 희생이 따랐기 때문. 


"바머스는 암이 우리의 정상 자아의 '일그러진 형태'라고 썼다."


암은 우리의 일그러진 형태이기에 너무나도 똑똑한 그리고 생존능력이 강한. 


"그것은 죽음과 서서히 단계적으로 화해하는 과정이었다."

"암은 모든 생활을 포섭한다."

"환자가 하루하루 자신의 병에 점점 더 심하게 집착하게 됨에 따라서 주변 세계는 흐릿하게 사라진다."


많은 전이 암환자들이 겪어야 하는 과정. 죽은과 서서히 화해하는 과정. 이 책의 저자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이런 문구들 때문. 환자의 입장도 어느 정도 헤아리는 듯한 그러한 문구들. 


"자그마한 승리에 걸맞지 않게 흥분하는 의사는 환자가 궁극적인 패배를 맞이하도록 준비시키는 바로 그 의사 일수 있다."


종양학과 의사들의 감정선은 어떨까. 어떻게 보면 환우들 앞에서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정해진 표준치료법으로 약을 처방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환우들에게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걸까.


"오히려 그것은 조직된 염색체 혼돈이었다"


반대되는 '조직'과 '혼돈' 그것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암세포.


"활성 상태의 원종 양유 전자와 불활성 상태의 종양 억제 유전자라는 두 비정상이 암세포의 핵심적인 분자 결함이다"


암이 생기는 이유를 거의 한 문장에 요약. 


"돌연변이 유전자에서 기원한 비정상 신호의 사슬은 암세포 내에서 퍼지면서, 생존을 강화하고, 성장을 촉진하고, 이동성을 갖추게 하고, 혈관을 충원하며, 영양 공급을 강화하고, 산소를 끌어왔다. 즉 암의 생명을 유지시켰다."


위와 마찬가지로 암세포의 질긴 생명력을 잘 요약. 한 가지 방법으로는 이기기 힘든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다. 


"우리는 제자리에 있기 위해서라도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HER2의 발견과 기적의 약 허셉틴의 약진. 하지만 암과 맞선 자들은 제자리에 있기 위해서라도 달려야 한다는 가슴 저린 문장. 


"따라서 우리가 물어할 질문은, 우리가 생전에 이 불멸의 질병과 맞닥뜨릴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마주칠 것인가이다."


이제는 1/3이 아닌 1/2이 죽기 전에 암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하니, 정말 언제 마주칠까 가 더 적합한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암과의 전쟁은 승리를 재정의함으로써 '이기는'편이 최선일지 모른다."


슬픈 현실이나 맞는 말이기도 하다. 2개월 살던 환자를 3개월 살 수 있게 하는 것도 '승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당장 아픈 사람들에 겐 그것이 승리일지도 모른다. 


지금 아픈 사람들, 앞으로 아플 사람들, 그리고 우리 다음다음 세대들까지 모두를 위해 승리의 '정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사코니 리뷰 바로가기: http://www.fb.com/sacony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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