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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Oct 01. 2021

오징어 게임과 메타버스

지난 2주 동안 말도 많고 뉴스에도 많이 오른 오징어 게임. 많이 스킵하면서 보았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게 보았다. 보는 내내 기생충이 많이 생각났고 게임의 면모와 우리 사회의 닮은 면이 보여 메타버스 같다고 느껴지기도. 주의 깊게 본 포인트 두 가지. 


- 공평하다고 하는데 공평하지 않은 게임

게임을 만든 자들은 공평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공평하지 못했다. 중간중간 공평함을 어긋나게 하는 이들이 처벌받긴 하지만 아무리 규칙이 있다고 하여도 다들 같은 레벨에서 플레이했다고 보기는 힘든 부분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그리고 새벽 등을 제외하고는 게임이 공평하다고 믿는 것처럼 보였고 (아님 어쩔 수 없이) 모든 게임에 최선을 다했다. 실제 사회에서도 공평과 공정하다고 위에선 소리치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면에서 조금은 씁쓸했다. 


그리고 특정 게임은 특정 성별이 유리하였다. 줄다리기 같은 게임은 "힘"이 중요했고 남성에게 유리할 수 있는 게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게임이 공개되기 전부터 사람들은 "힘"이 당연히 중요할 거라고 예측하고 여성과 노인을 제외하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실제 사회에선 어떨까? 직장 그리고 특히 남성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나 조직도 그러한 걸까?


- 자발적이라고 하는데 자발적이지 않은 참가

게임의 참여자들과 시청자를 한 단계 가깝게 만들어주는 에피소드 2의 핵심은 참여자들이 게임에서 자발적으로 나갔다가 다시 제 발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이는 이들이 처한 현실이 더 힘들기에 어쩔 수 없지만 자발적으로 이런 게임을 택했다는 점에서 시청자에게 한 발짝 다가온다. 그럼 이게 정말 자발적 선택일까? 아니면 사회에 다른 옵션이 없었으므로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자발적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꽤나 많은 결정들을 자발적으로 하였다고 믿게 된다. 대학 전공과 대학교, 사는 지역, 직업군 등. 하지만 이들은 얼마나 자발적이었을까? 어느 정도가 부모나 가정환경에 따라서 이미 정해져 있었고, 어떻게 보면 우리가 주어진 환경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 혹은 최선을 다루는 게 인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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