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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Jun 08. 2021

나의 아들 선생님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나니깐 내가 아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오버랩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가족이라는 게 누가 누구에게 직접적으로 배우고 선생님 학생의 관계가 기본이 되는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만연하게 부모가 자식의 선생님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클 거라고 보는 시각이 클 것 같다. 물론 나와 아들 관계에서도 그렇다. 선생님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아들에게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좋아" "그럴 땐 저렇게 해볼까" 등의 말들을 많이 하게 되고 어른사람이어서 하는 말들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크레이그가 문어에게 느꼈듯이 나도 아들을 통해서 배우는 게 많다. 


제일 크게 느끼는 부분은 내가 나의 단점일 수도 있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아들에게서 보일 경우이다. 나의 고집과 자기 주도적인 성향. 좋게 봐주는 사람들은 그것을 리더십 또는 일종의 능력으로 봐줄 때가 있으나 나쁘게 보면 그냥 고집이 센 것이다. 


아들 또한 그런 내 성향을 닮은 듯하다. 혼자서 할 일을 알아서 해서 좋은 것도 많지만 어쩔 때 부리는 고집을 보면 내가 내 모습을 보는듯하여 속으로는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아 나도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행동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럴 때 나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 나도 잘 못하는 것을 아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럴 때마다 난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아빠도 너였으면 그랬을 것 같아. 하지만..." 같은 대화를 시도한다. 아들에게 얼마나 잘 와닿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아들은 힘들지 않을까? 물론 힘들겠지? 내가 그만큼 아들에게 엄마의 빈자를 메꿔줄 수 있을지가 처음엔 제일 고민이었다. 하지만, 몇 번의 상담을 통해 내 가정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빈자리는 내가 애초부터 메꿀 수가 없는 부분이고 나는 엄마가 세상에 있을 때 주었던 사랑을 계속해서 간직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역할이였다는 것을. 그리고 아빠로서의 역할을 잘할 수 있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을 말한다. 부모가 세상에 있어도 빈자리가 있는 자식들이 있다고. 하지만, 지난 1년 넘게 아들을 제일 가까이서 지켜본 나로선 아들은 행복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는 듯해 보인다. 아들의 감정을 100프로 들여다볼 순 없지만 해맑게 웃어주는 그런 표정들을 보면서 나는 괜스레 대견해 보일 때가 많다. 


나도 아들과 함께 어려움을 같이 겪으면서 힘든 적이 많았지만 아들이 저렇게 해맑게 지내는 것을 보며 오늘도 나는 많이 배운다. 행복한 사람으로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길 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야지 하고. 나의 아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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