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vid Mar 17. 2023

늘 힘든 암 환자

알고 보니 코로나

 회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같이 회식을 했던 상급자가 내게 물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야? 술 좀 마시면서 동료들이랑 지내는 것도 괜찮지 않아? 체력이 부족한 건 운동하면 되는 거 아니야?"


 사람들은 암환자에 대해 잘 모른다. 당연하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거다. 그 상급자는 예전부터 내가 술을 안 마시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집까지 그를 태워주면서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의 지인 중 암 4기였던 사람도 지금 폭음을 하며 잘만 지낸다는 것이다. 그에게 난 암환자가 아니라 조심병 환자로 보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를 탓할 수는 없다. 원래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을 하고 자신의 경험에 갇힌 채 살아가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3년 전에 암에 걸린 형이 한 명 있다. 처음에 그 형이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참 이상했다.

 '멀쩡해 보이는구먼. 왜지?'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속으로 생각하고 그러려니 했다. 시간이 지나 암에 걸리자, 그 형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웃긴 건 몇 달 전 그 형과 지인들을 만났을 때였다.

 삼겹살 집에서 모였는데, 술잔을 자리 앞에 하나씩 놓으면서 그 형 앞에도 하나 놓았다. 그랬더니 술 안 마시는 거 알면서 왜 잔을 놓냐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차 싶었다. 인간은 이 정도로 자기중심적이다. 내게 있어 나만 암 환자다. 그 형도 암에 걸렸지만 그건 내게 있어 그다지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 상급자가 저렇게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를 그의 아파트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술을 안 마시는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1. 암 재발 확률을 낮추기 위해.

     술이 발암 물질인 것은 확실하다. 의사들이 금하는 몇 안 되는 음식(소시지와 탄 고기 등등...) 중 하나이다. 암 재발 확률이 0.01%라도 올라간다면 나는 그런 일들은 하지 않고 싶다. 그리고 나처럼 방사선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방사선 치료로 암세포가 생겨 10년 후에 새로운 암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면역력을 항상 최대치로 높여야 하고, 술은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나중에 죽게 되었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리 별생각 없이 살지만, 암에 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죽음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고 그것이 빨리 오냐 늦게 오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암에 걸린 후 죽음을 조금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죽게 되면 분명 후회를 할 것이다. 어떤 후회를 하게 될까? 아마도 '가족들이랑 시간을 더 보낼걸'이라고 후회하겠지. 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회사 사람들과 술도 마시며 재미나게 놀걸'이란 후회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요즘 내 삶은 책 읽고 글 쓰며,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가득 차 있는데 여기서 얻는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회사 사람들과 굳이 약속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고픈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루에 8시간이나 같이 있는데 뭘 또 나가서 보나! 그냥 같이 있을 때 말이나 친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3. 몸이 힘들어서

    이번 주는 몸이 정말 안 좋았다. 수요일에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도 받았다. 늘 그렇다. 아침에 일어날 때 '오늘은 회사 못 가겠다. 연가 내달라고 문자 보내야지.'라고 거의 매일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나면 힘이 나 출근 준비를 하게 되지만 암 치료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이나 극도의 졸음과 피로를 느끼곤 한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술을 마신다? 나는 보통 그다음 날 회사에 가지 못하거나 회사에 가도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폭음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몸 상태에서 술을 마신다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내가 왜 술을 안 마시는지 이유를 좀 정리해 봤다.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이해가 내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난 안 마실 거니까. 하지만 그들이 자꾸 물어봐서 대답하는 게 귀찮고 그들이 잘 공감하지 않는 것 같아서 정리를 좀 해봤다.


 회식이 끝나고 집에 갔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속이 안 좋았다. 반신욕도 하고 장 상태를 좀 편안하게 한 후 잠에 들었지만 식은땀이 나고 근육통에 계속 괴로웠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더 심하다. 회사에는 당연히 출근을 못했고, 계속 잠을 자다 오후에 병원에 갔다. 독감일지도 모른단다. 약을 잔뜩 받고, 수액 주사를 맞았더니 조금 괜찮아졌다. 체온이 37.6도까지 올라갔단다. 의사 선생님께 코로나 아니냐 했더니, 의심스러우면 집에 가서 키트를 해보란다. 요즘에는 코로나 환자가 거의 없어서 코로나 검사를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 진단 키트가 하나 있길래 검사를 해봤다.


 젠장 코로나다. 6개월 전에도 걸렸는데... 이번 주에 힘들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군. 아오. 만일 어제 술을 마셨다면 어떻게 됐을까? 끔찍하다. 일주일 동안 푹 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숨이 달린 시험, 암 환자의 정기 검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