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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Jun 21. 2023

 암 크기는 얼마나 줄었을까?

 암 치료를 마친 후 여러 가지 후유증을 달고 살지만 그중 평생의 짝이 되어버린 것은 갑상선 기능 저하 증이다.(비인두암 치료 부작용으로 꽤 흔하며, 나의 경우는 면역항암제 임상에 들어가며 확실하게 나타났다. 면역항암제 부작용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기 검진 외에 별도로 갑상선 호르몬을 체크하고, 약을 타러 서울대병원에 방문했다. 


 하지만 단순 피검사와 약 처방을 위해 경상도에서 서울까지 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의사 선생님께 갑상선 진료는 동네 병원에서 받아도 되는지 여쭤봤다. 대답은 ok. 선생님도, 다른 의료진도 원했을 거다. 서울대병원에는 환자가 너무 많기에...


 병원을 옮기기 위한 서류를 받았다. 그 서류에는 2년간 내가 받은 치료 내역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그토록 원했던 문장이 그 서류에 선명히 적혀 있었다.


 '종양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음'


 처음 암의 크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치료를 마친 후 고열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진료를 받으며 CT 촬영을 했고 문득 영상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퇴원할 때 원무과에서 ct 영상을 cd에 복사했다.(만 원의 비용이 든다. 보험 처리도 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후 할 일도 없던 나는 치료 전, 치료 중, 치료 후의 암세포 크기를 재봤다. 처음에는 4센티미터 가량 됐는데, 치료를 마치고는 2.3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였다. 탄식과 걱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정말 치료가 잘 된 경우에는 치료 후 ct에서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데, 2.3센티미터라니...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치료 종료 후 수개월이 지나도 암세포가 남아있는 경우, 외과적 수술을 통해 직접 제거를 한다고 비인두암 카페에 적혀 있었다. 목 근처 임파선을 모두 들어내는 수술을 해야 하기에 보기 흉한 상처가 남는다. 또한 수술은 암세포를 자극하여 재발을 촉진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환자 입장에서는 암세포가 말끔히 사라져 그  어떤 추가 수술도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어렵게 치료를 마쳤지만 목에 남은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암세포가 2센티미터 가량 남은 후에는 크기 변화가 거의 없었다. 난 암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ct 촬영 때마다 돈 만 원을 주고 영상을 가져와 집에서 판독했다. (판독은 개뿔, 그냥 이전 영상과 크기 비교만 하는 것이다.) 희망적인 거라면 아주 조금씩 암이 작아진다는 것. 하지만 작아지냐 아니냐 보다는 깨끗이 사라졌냐 아니냐가 더 중요했다. 판독지에도 암의 크기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적혀 있어서 내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2센티미터 가량의 암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너무 실망한 채 진료실에 들어갔다.(진료 전에 영상을 받아서 보고 들어갔다. 이렇게 예습을 열심히 했으면 전국 수석도 노려볼만했을 거다.) 하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나의 예상과 달랐다.


 "치료 잘 됐고요... -> 들림

   블라블라블라..." -> 안 들림


 난 너무 황당해서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저 동그란 것들 다 괜찮은 거예요?"


 선생님은 암 찌꺼기라고 하셨다. 난 믿지 않았다. '저렇게 큰 찌꺼기가 어딨어?'


 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암 환자만 20년 가량 보신 분을 신뢰하지 않았다. 인간이란 존재가, 아니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비합리적이다. 물론 선생님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시며 여유를 보이셨다. 


 몇 개월 후에 시행한 시침 검사.(ct 영상 상 암으로 의심되는 부위의 세포를 일부 떼어내어 확인하는 검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암세포가 아니라고 나왔다. 암세포를 발견할 수 없단다. 일단 한 시름 놨지만 찝찝한 마음은 계속 남아 있었다.


 그 후로 ct 촬영 시마다 영상을 분석, 아니 암의 크기를 비교했다. 아, 조직 검사 결과 암이 아니라 림프구라 하니 림프구라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림프구지만 곧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 시한부 림프절, 줄여서 시림이라 불렀다. 시림이의 크기는 계속 작아졌다. 


 1.4센티미터 정도 됐을 때쯤이었나? 돈 만원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크기 잰다고 시림이가 더 작아지는 것도 아니고. 조직 검사 결과대로라면 암세포도 아니라는 데 굳이 돈 써가며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시림이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오랜만에 시림이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물론 해당 서류에도 시림이의 크기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시림이가 작아진다는 표현이 몇 번 적힌 것으로 보아 지금쯤 거의 콩알만 해지지 않았을까 한다. 어쩌면 좁쌀만 할 지도...


 그제야 선배 환자들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몇 년 지난 후 찌꺼기였다고. 지금은 건강하게 잘 산다고.


  정기 검진이 내일로 다가왔다. 시림이에겐 미안하지만 이번 영상에서는 아예 그 흔적도 안 보여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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