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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Jul 23. 2023

둘째를 '안' 가진 아재에서, '못' 가진 아재로

암 걸린 아재의 육아 일기(2)

 짐작은 하고 있었다. 모든 정황이 내가 암에 걸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존의 정황 증거를 깨부술 한 방을 찾아 헤맸지만 조직검사지에 적힌 ‘암’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현실을 인정했다. 검사지를 들고 서울대병원을 찾아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신속한 치료.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여겼다.


 첫 진료 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검은 뿔테 안경의 의사 선생님이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내가 충격을 받을까 봐 암에 걸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비인강암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난 치료 방법이나 효과, 앞으로 주의할 점 등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었는데 그의 다음 질문이 의외였다.

 “40세라... 혹시 자녀 계획이 있으신가요?”

 이야기인 즉, 항암 치료를 받게 되면 유전적으로 손상을 받게 될 우려가 있어 향후 자녀 계획이 있는 남자 환자들에게는 정자 보존을 권유한다는 것이다.   


 앵두(딸의 애칭이다)가 만 3세였던 그때는 육아의 고단함이 정점을 찍고 있을 때였다. 둘째를 갖기에는 체력도, 의지도, 여유도 부족하다고 결론짓고 앵두만 열심히 키우고 있었다.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불명확한 미래(시간이 지난 후 둘째를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를 위해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난 하루라도 먼저 치료를 시작해 세상에 남아 있는 날을 늘리고 싶었다.


 목에 튀어 난 커다란 혹 때문인지, 아니면 내 조급한 마음을 읽으셨는지 의사 선생님은 모든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주시며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암이 타 장기에 전이가 됐는지 안 됐는지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지기에 PET 검사를 통해 이를 확인해야 하는데, PET 검사 다음날부터 치료를 시작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아버렸다. 거기에는 숱한 경험을 통해 암이 전이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만일 PET 검사 결과 암이 전이가 되었다면 예약된 항암 치료는 취소해야 하고 이는 결국 누군가의 진료가 늦춰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생각하지 않으셨나 추측할 뿐이다.


 나의 기우 덕분인지 암은 임파선 부분까지만 전이되어 있었다. 코와 목에 광범위하게 퍼진 암세포 박멸을 위한 2달간의 항암 치료가 즉시 시작되었고 코로나로 인해 홀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3세(만 3세, 앞으로 계속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사용하겠다)인 앵두에게 암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정확히는 설명할 시도도 하지 않았다. 떨어져 있는 두 달간 아이 엄마가 앵두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매주 찾아오던 아빠가 어느 순간부터 오지 않으니 앵두도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가끔씩의 영상 통화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힘들어지고 있었다. 기력이 너무 떨어지고 성대를 쓸 때마다 통증이 동반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치료는 끝났다. 다음에 내가 받을 치료는 무엇일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암 환자는 병원의 치료에 따라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임상실험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으신다. 나는 이번에도 불확실한 미래와 효과를 위해 내가 투입할 노력과 시간을 정해야 했다.

 3세대 항암제인 면역항암제 임상 실험. 2/3의 확률로 면역항암제를 투여받을 수 있다.(나머지 1/3은 안타깝게도 생리식염수를 투여받는다) 3주에 한 번씩 진료를 받으며 항암제를 투여받고 2달에 한 번씩 CT 촬영을 통해 결과를 확인한다. 이렇게 총 17번, 1년간 진료를 받은 후 2달, 3달, 6달 주기로 주기를 늘려가며 추적 관찰만 한다. 총 4년의 시간이 걸리는 임상실험. 면역항암제 투여 비용만 무료이고 나머지 진료비나 검사비는 환자 부담이다. 면역항암제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1년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는 데는 1억 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된다.


 다른 임상 실험은 모든 비용이 무료에 교통비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서울까지 가기 위해서는 왕복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의 비용 지출이 필요하기에 금전적 지출도 조금 부담스러웠다. 생각해 보라. 생리식염수 투여하자고 몇 십만 원씩 써가며 서울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하지만 맘 속의 불안과 생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은 내가 감내해야 할 기회비용보다 훨씬 컸고 설령 내 몸속에 들어오는 것이 생리식염수라 할지라도 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면역항암제 효과가 있을 확률 1/5, 면역항암제를 투여받을 확률 2/3, 암이 재발할 확률 2/5. 이를 복합적으로 계산하면 내가 임상 실험에 참여해서 득을 볼 확률은 5% 정도였다.(당시에는 이렇게 수학적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만일 계산했다면 임상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에 비해 내가 치러야 할 비용은 200만 원 수준의 진료비 및 차비와 조금 더 자주 병원에 가야 하는 수고로움이었다. 만에 하나 있을 불행을 피하기 위해 나는 'GO'를 외쳤다.


 면역항암제 치료는 조금 더 수월했다. 완전히 망가져 버린 내 몸은 조금씩 회복되었고, 이제 앵두를 볼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암 진단 5개월 만에 다시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는 주말 아빠가 아니라 매일매일 같이 사는 아빠가 되었다.


 나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꽤 심한 상태의 환자로 보인 모양이었다. 아침이면 앵두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저녁이면 버스에서 내린 앵두를 집으로 데려왔는데 이를 본 다른 아이의 할머니 중 하나가 우리 장모님께 내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한다. 나만 몰랐다. 내 몰골이 그렇다는 것을.


 하지만 시간의 힘은 위대했다. 조금씩 식사량을 늘리고 운동을 하다 보니 남들 보기에 정상처럼 보일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은 2년. 다른 여느 아빠들처럼 나는 앵두와 매일을 공유하게 되었다. 너무나 쑥쑥 커가는 앵두에 비해 항암 치료 이후 내 근육은 너무 많이 사라져 앵두를 안아 주거나 앵두의 짐을 들기에 버거울 때가 있다. 하지만 점점 예뻐지는 앵두의 모습을 보면, 암에 걸려서 앵두를 매일 볼 수 있게 된 게 행운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예뻐지고 성숙해지는 앵두를 보며 마음속에는 둘째를 갖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난 참으로 고집쟁이였다. 돌이켜보면 나 빼고 모든 가족들이 둘째를 원했다. 엄마도, 장모님도, 아내도. 하지만 바쁜 회사 생활, 술자리, 부족한 체력과 정신적 여유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아이 둘은 키울 수 없는 사람’으로 한정지었고, 둘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2년 전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내게 자녀 계획을 묻던 순간이 계속 떠오른다. 경솔했던 것 같기도 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어떡하랴. 나의 욕심을 위해 모험을 강행하는 것은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것 같으니. 대신 앵두에게 더 좋은 아빠가 되자고 다짐한다. 가끔씩 자신은 왜 동생이 없냐는 앵두. 형제가 없어 외로울 수도 있겠다. 그 외로움이 앵두를 지배하지 않도록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동생처럼 앵두와도 지내줄 수 있는 아빠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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