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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Jul 24. 2023

누가 내 딸 아니랄까 봐

암 걸린 아재의 육아 일기(3)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왜!”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올 게 왔구나 생각했다.


  유학 차 외국에 나가있을 때였다. 병원에 갔더니 첫 방문이냐 물으며 종이 한 장을 건네받았다. 나이나 성별 같은 기본 정보는 물론 앓고 있는 병을 적어야 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었다. 부모님이 암에 걸린 적이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암에 걸렸다면 암에 걸린 나이 역시 적어야 했다. 의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암은 유전적 요인이 상당하고, 부모의 암 발병 나이에서 10년 전부터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암에 걸렸던 나이는 47세. 즉 나는 37세부터 암 검진을 받아야 했다. 


 당시 받았던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암이 꼭 대장에서만 생기라는 법은 없다. 코 역시 걱정스러운 부위 중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비염을 달고 살았는데, 내심 코 쪽에 암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을 했고 그와 유사한 내용의 건강 프로그램을 보고 서울대병원을 찾은 적도 있었다. 20년 전의 일이다. 암세포는 보이지도 않았을 테니 담당 의사는 일반적인 비염 치료만 해주었고 별일 없다 생각한 나는 더 이상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40대 초반의 암 환자가 되어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니 인생은 알 수가 없는 것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 사이 내게는 딸 앵두가 생겼고 혹시나 내가 이 병을 앵두에게 넘겨주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앵두는 나를 빼다 박았다. 누구나 앵두를 보는 즉시 ‘아빠를 닮았네요’라고 반응한다. 우리 엄마에게 있던 유전적 요인이 나를 거쳐 앵두에게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엄마를 빼다 박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부릴 때였다. 앵두의 몸에 열이 심하게 올랐고 인후염으로 통증을 호소해 병원에 데려갔더니 코로나란다. 어린아이 혼자 어떻게 격리시키는지 걱정하고 있을 때쯤 내 몸도 정상이 아님을 느꼈다. 누가 앵두를 봐야 할 걱정도 하기 전에 내가 코로나에 걸림으로써 앵두를 볼 사람이 생겨버렸다. 신기한 것은 아이 엄마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 앵두와 나는 방에 갇혀 증상이 사라질 때까지 아이 엄마가 주는 밥을 먹으며 버텨냈다.


 앵두와 나의 체질 상 비슷한 점은 한 둘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비인후과에 날마다 갈 정도로 비염 증상이 심했다. 그런데 이 것까지 앵두는 복사를 해버렸다. 늘 훌쩍이고 있는 앵두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그 병을 걸리게 한 것 같아 속상하고 맘이 아프다. 거기에 비인두암까지 걸려버린 지금은, 조금 두렵다. 혹시나 앵두에게도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내가 암에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 어떤 의사도 이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말하지는 않는다. 삶에 얽힌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기는 것이 암이기에 암의 원인을 명확하게 꼽을 수 있는 의사는 없다. 하지만 추정 가능한 원인의 그룹은 있다. 스트레스, 운동, 술·담배, 음식, 수면, 생활 태도 등등... 이런 요인들에 대한 나의 건강 관리는 0점이었다.


 우선 비염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았고,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았다. 편식이 심했고 술도 많이 마셨다. 스트레스를 잘 받는 예민한 성격이었으며 암 발병 이전 몇 개월간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나름의 어설픈 완벽주의를 갖고 있었으며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도 갖지 못했다.


 처음부터 안 좋은 습관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엔 시골에 살았다. 집 밖을 나가면 개구리와 메뚜기, 잠자리와 나비가 노니는 천연의 환경이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해가 저물 때까지 뛰어놀았다. 지구라는 자연과 완벽하게 동화한 하나의 생명체로서 자연에 해를 주지도 외부로부터 해를 입지도 않는 날것의 삶을 살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도시로 전학을 오고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주기적으로 시험을 봤고, 몇 개 더 맞았는지 덜 맞았는지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그 순위는 암묵적으로 사람의 우열을 나타냈고 서열이 되었다. 점점 그 숫자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 숫자의 변동에 불안함은 커져만 갔다. 갑갑한 육면체의 콘크리트 안, 차가운 재질의 사각 책상에 책을 펴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몸은 움직이지 않은 채 성적만이 업무 성과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동아줄인 양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몸은 파업을 선언했다. 도저히 못해 먹겠다는 것이다. 인간은 움직이도록 진화됐다 하는데 움직이지 않고 머리만 쓰고 있으니, 스트레스에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성적표에 적힌 숫자와 업무 성과 평가에 왜 그리 집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들에게 인정받아 팔자를 얼마나 바꿔보겠다고 술을 마시고 새벽까지 일하고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돌아보니 어리석었다.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적절히 노력하고 받아들이며 되는 것을 과하게 몰입했다. 열심히 하더라도 나 자신의 중심을 꼭 잡으며 건강하고 꾸준히, 여유롭게 해야 했다.


 인간은 탄생 이후 움직이도록 진화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는 그런 삶이 허용되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 어찌 인간이 삶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겠는가. 앵두가 내가 밝은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산을 내가 바꿀 수는 없겠지만 앵두가 집에 있는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움직이며 즐기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었다. 이게 나의 망할 체질이 발현하지 않고 앵두가 남은 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앵두는 5일 전부터, 나는 2일 전부터 약한 감기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병원에 갔더니 최근 아이들 사이에서 독감이 유행하고 있고, 그 증상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앵두는 약을 계속 먹는데도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내 몸에 나타나는 증상도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유전자를 복제한 부녀지간이라 그런가?

 그래도 앵두가 돌아오면 유튜브를 틀어 놓고 최근 유행하는 춤을 같이 추려한다. 얼마 전에는 버물리 광고 송의 율동을 둘이 따라 하며 킥킥 대고 놀았다. 오늘은 다른 춤을 찾아 앵두와 멋지게 미션을 수행하고 약 기운에 취해 잠들려 한다. 앵두와 마무리하는 하루가 즐겁다. 앵두도 즐겁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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