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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Jul 21. 2022

암 환자에게는 이렇게 접근해 주세요.

치료 전 주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

 가족들과 지인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조직 검사 결과 비인두암이라고 확진되었다.

 조직 검사를 한 병원과 S대학 병원이 연계되어 있어, S대학 병원에서 본격적인 암 치료과정이 진행되게 되었다. 

 빨리 치료에 임하고 싶었지만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무료한 시간을 나는 다음에 있는 '비인두암 카페'에서 보냈다. 온라인 카페에 상주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치료를 버텨냈는지, 치료는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치료 효과는 얼마나 좋은지 등을 여러 사례를 통해 알아냈다.


 치료 전 조언의 대부분 '잘 먹어라'는 것이었다. 치료에 들어가면 못 먹게 될 확률이 높으니, 미리 많이 먹으라는 것. 그래서 나는 불과 한 달 사이에 2kg이나 살이 쪘다. (치료 후에는 8kg이 빠졌고 지금은 다시 정상 체중이다.)


 또 하나 내가 중점을 뒀던 것은 운동이다. 근력 운동과 걷기를 거의 매일 했다. 치료 직전에는 몸에 근육이 생긴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암 환자가 암에 걸리고 몸이 좋아지는 아이러니를 겪기도 했다. 


 심리적인 요인 역시 중요한데, 나는 내가 암이라는 것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치료에만 전념하기로 생각했고, 치료 시작일이 다가올수록 내 병을 빨리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치료 전에 나를 살짝 곤란한 게 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었다. 한 번 생각해보라. 아는 사람이 암에 걸렸다고 제삼자를 통해 전해 듣게 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상당수의 사람들이 암환자에게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인은 그 정도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궁금증을 참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걱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겠지만, 그 통화가 환자 입장에서 유쾌할지는 생각해 봤을까?


거꾸로 본인이 암에 걸렸을 때 지인들이 전화해서 "암 걸렸어?"라고 물으면 어떨지 생각해보면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 암 걸렸어. 전화해줘서 고마워. 치료 끝나고 만나자."라고 화기 애애한 대화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겪어본 암환자들 대다수는 암 진단 후 지인의 전화를 기피했다. 


 암이라는 상황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보니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수년을 준비한 공무원 시험에서 불합격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지인 중 하나가 전화를 한다. 

 이 전화를 받을 것인가? 전화를 받지 않아 어떤 대화가 이뤄질지는 알 수 없으나, 시험 불합격에 대한 얘기를 피하긴 어려울 거다. 그런데 불합격한 당사자 입장에서 그 얘기를 하고 싶은가? 


 그래서 대부분의 시험에 불합격한 수험생들은 핸드폰을 끄고 한동안 잠수를 탄다. 일개 시험도 이럴진대 암에 걸린 경우는 오죽하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지랖이 넓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지인이 암에 걸렸다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적어도 중간은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나중에 연락하지 않았다고 섭섭해할 것이 걱정되는가? 그렇다면 정성을 담아 문자를 하나 보내면 된다. 쾌유를 빈다는 내용의 심플한 문자 말이다.


 난 그런 문자를 보내준 사람들에게 지금도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들의 문자에서 그들이 얼마나 속상한 지, 그리고 내가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케이스는 숱하게 많다. 내 주치의 선생님의 블로그에서도 이와 관련된 글이 있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일부 발췌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참고로 설 근처에 작성된 글임을 유의하고 읽어 주기 바란다.)


"바야흐로 설 명절이다. 암환자가 있는 경우, 건강은 어떠시냐며 조심스럽게 근황을 묻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취직 준비는 잘 되었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애는 언제 낳을 거냐는 말 못지않게 암환자에 대한 지나친 오지랖과 간섭은 가족관계에 독이 된다.

 가까운 사람 입장에서 정말 도와주고 싶거든 이런 방법도 있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인데, 병원비에 보태라고 5만 원권 두둑이 봉투에 넣어서 집 앞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단, 아무 말하지 말고 봉투만 건네고 집으로 와야 한다. (뒷모습이 콘셉트이다.) 하고 싶은 말은 손편지에 써서 봉투에 넣는다. 봉투를 손에 쥐어주고 손을 한번 꼭 잡아주고 오면 된다. 그저 따뜻한 눈빛 한번 건네면서 고개 한번 끄덕거리면 된다. 따스한 가슴으로  한 번 꼭 안아주고 와도 된다. 정말 한 마디를 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린다면 "내가 도움 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언제든 갈게." 이 정도 한 마디면 족하다. 그러면 상대방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희망과 격려는 필요하지만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자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는 식의 망언으로 남의 속을 긁어놓는 설 명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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