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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Jul 18. 2022

가족에게 암 걸렸다 말하기

가족에게 뭐라고 말하지?


 암이 의심되어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생긴 고민거리 중에 하나는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할 시점이었다. 애당초 몸에 이상이 생긴 걸 알게 된 것도 비밀로 한 채 홀로 병원을 전전했으니 가족들은 내가 아픈걸 전혀 알 수 없었다. 암이 아니길 바라며 가족들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지만, 말해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슬퍼할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져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CT촬영 이후 영상의학과 선생님이 추천한 병원으로 가서 신속하게 조직 검사를 받았다. 조직 검사를 하신 이비인후과 선생님의 표정은 어두웠고 긍정적인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다.


 당시 아내와 나는 주말부부였기에 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었고 조직검사 결과 하루 전에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말했다.(그다음 주는 너무 늦고 그렇다고 주중에 전화로 얘기할 사항도 아니지 않은가!)


 TV를 보고 있는 아내의 뒤에서 아무래도 암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한참을 울더니 전이가 됐는지 물었다.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말했고 한참을 운 아내는 장모님에게 전화를 걸더니 마음을 조금 추스른 것 같았다. 


 내가 가족들의 눈치를 보는 만큼 가족들도 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조직 검사 결과 '비인두암'을 확진받았고, 나는 서울의 유명한 대학병원에 진료를 의뢰했다.


 슬픔을 뒤로한 채 가족들은 내가 편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비인두암'의 치료는 2달여간의 방사선+항암 치료로 이루어진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2~3주가 지나면 입안과 목이 헐어 음식물을 삼키기가 곤란해지고, 여기에 항암제 부작용이 더해지면 식욕이 완전히 떨어지며 속이 불편해진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환자의 경우 치료를 마치고 30kg가량이 빠진다고 하니 얼마나 힘든 치료일지 감이 올 것이다.


 아무튼 가족들에게 알리고 나니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졌다. 치료에만 집중하면 되니 말이다. 


 내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린 이들이 꽤 많다.(나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 당시 나는 암으로 인한 결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신속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치료를 받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치료에만 집중했고 주변 사람들의 배려로 2개월 간의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암 치료를 받으며 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봤는데, 나의 경우는 매우 특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든 진료를 혼자 보러 다녔다.(집은 경상도, 직장은 서울이니 가족들이 진료에 동참하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반면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보호자들과 함께 진료를 받는다. (나야 젊고 건강했지만 암 환자들은 대부분 고령이다. 보호자의 부축이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보호자들이 환자들이 충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의사를 따로 만나 '절대로 환자에게 암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라고 부탁한다고 한다. 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는 행위일 테니 일방적으로 뭐라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내가 가족들에게 말하길 주저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경우든 암에 걸린 후 가족관계는 재정립된다. 우리 대부분은 일과 성공에 매달리며 가족에게 소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큰 사건을 겪게 되면 우리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인지, 우리의 가족이 내 삶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끼게 된다. 


 암에 걸린 후 아내와 싸워본 적이 없다. 암에 걸린 후 가족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엄청 넓어졌다. 그리고 확실히 알고 있다. 내 가족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인지 말이다. 가족은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설령 그것이 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암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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