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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Jul 26. 2022

암 환자의 식사법

이거 먹어도 됩니까?

 암에 걸리면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것 같지만 암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갖는다.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암환자들에게는 더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치료가 끝난 환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은 어떤 가요?"라고 하니, 다른 환자들보다 치료효과가 더 좋아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깔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그래서 암에 걸리자마자 비인두암 환우 모임 카페(온라인)에 가입했고 하루에 몇 번씩 들락거리곤 했다. 치료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지, 치료 효과는 얼마나 좋았는지, 치료를 잘 받는 팁은 무엇인지 등등을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알고 싶어 했고, 나도 그 정도 효과는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암에 대해 이것저것 알게 됐다 치자. 그렇다면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 포괄적이고 거창한 질문 같지만 암 환자가 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생각해보자. 암을 이기기 위해서는 건강해져야 하고(면역력 증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고, 잘 생각하면 된다.


 잘 자는 거나 잘 움직이는 것(규칙적 운동), 잘 생각하는 것(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은 사실 뻔하다. 그래서 본인이 노력하면 되는 것이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쟁이 없다.


 그런데 잘 먹는 것, 즉 음식에 대해서는 조금 복잡하다.  


 당장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암에 좋은 음식, 암을 유발하는 음식에 대한 다량의 기사를 볼 수 있다. 그중 암환자가 피해야 할 음식이 조금 더 중요한데 그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사실 암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피하는 것이 좋다.)


 술. 직화구이, 햄이나 소시지, 라면, 쌀밥, 튀긴 음식, 소금에 절인 음식, 과자류, 청량음료, 편의점 식품, 통조림, 아이스크림, 유제품, 옥수수, 붉은 고기


 일단 흰쌀밥이 안되니 현미밥을 먹어야 한다. 붉은 고기는 안되니 닭고기나 오리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또 훈제 요리는 안된다. 거기에 통조림이 안되니 참치도 안되고 햄이 안되니 여러 가지 반찬들이 제외된다. 그럼 야채+생선+닭고기 등등이 가능한데, 암 환자는 다른 질환으로 인해 이 음식조차도 못 먹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요산 수치(통풍)가 높아 고등어 같은 생선을 먹을 수 없었다.

 

 결국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 세 번 밥을 먹는데 식사 때마다 고민을 하고 걱정을 하는 게 정상일까?


 여기에 주변에서 사람들이 보조 식품을 권유하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보조식품은 비싸기도 할뿐더러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큰 비용을 들여 해당 제품을 사주시는 그 마음은 고맙지만 환자로서는 꽤 당황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내 결정은 무엇이었을까?


 '일반인처럼 골고루 먹자'였다.  

 여기에는 내 주치의 선생님의 블로그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은 상당히 상냥하신 편이다. 말투가 부드러워 편안한 진료 분위기를 만들어주시고 질문도 잘 받아주신다.(질문에 대해 핀잔을 주시는 의사 선생님도 꽤 많다.) 이렇게 친절한 선생님도 음식 관련 질문에는 고개를 도리도리 하신다.


 짧은 진료 시간을 뺏어먹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고, 특정 음식이 암에 유의미한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골고루 적당히 먹는다면 크게 문제 될 것 없다는 게 선생님의 지론이었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끊임없이 선생님에게 질문을 해댄다고 한다.


 "술 한 잔은 먹어도 되죠?"


 당연히 한 잔은 되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한 잔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안된다고 대답하신다고 한다.


 선생님의 블로그를 읽다 보니 나도 어느덧 답을 찾게 되었다.


 난 술과 직화 구이, 햄과 소시지는 피하지만 그 외의 음식들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적당히 소량 섭취한다. 이런 식습관이 나중에 내 몸 상태에 어떤 영향을 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지금 내 마음은 몹시 편안하다.


어제저녁 식탁엔 오랜만에 라면이 올라왔다. 밥맛이 없는지 아내가 라면을 끓인 것이다.


 "오빠도 한 입 먹을래? "


 보통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한 입만 먹는다는 건데, 나에게 한 입을 양보한다.


 "그래."


 맛있다. 몸에 안 좋은 음식이긴 하지만 맛있게 먹으니 내 몸에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맛있게 먹으면 0kcal 예요'의 암 환자 버전이다.)


 오늘도 인터넷 카페에는 '라면 먹어도 될까요?', '술 한잔도 마시면 안 될까요?', '저는 막걸리 한 잔씩 먹습니다.' 등등의 글들이 올라온다. 본인 인생이니 본인이 행동하고 책임져야겠지만 암 환자들이 음식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으면 좋겠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건강도 챙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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