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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Jul 24. 2022

암, 거 별 거 아니군

 암 환자 = 비극의 주인공?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로 쓰이는 병 중에 하나는 암. 그중에서도 백혈병이다.

 청순한 여주인공이 비극적으로 죽을 때 많이 쓰이는데, 주인공이 암에 걸리면 주변 인물들은 곧 죽을 사람처럼 주인공을 대하고, 실제로 곧 죽는다.


 매체를 통한 암의 이미지는 '죽을병'이다. 한국 사망원인 1위가 암이니 이게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암에 걸렸다고 곧 죽을 사람인 마냥 굴 필요가 있을까?


 조직 검사 결과지(비인두 암으로 판정)를 들고 암 치료를 받기 위해 대학 병원에 접수를 하러 갔는데 첫날 병원에서 든 생각은 '무슨 환자가 이리 많아?'였다.

 환자가 많으니 답답하거나 짜증 날 일이  많이 생겼다. 우선 이동하는 자체가 어렵고, 출입문을 통과할 때, 접수나 수납할 때 대기 시간이 길었다. 진료 대기의 경우 1시간은 기본이었다.

 조금 놀랐다. 우리 사회에 아픈 사람이 이리 많았단 말인가? 

 동시에 상급 병원 진료비를 올리려는 정부의 대책도 이해가 갔다. 멀쩡히 걸어 다니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다수는 동네 병원에서 진료받아도 될 것 같았다.(남들이 보기엔 나도 멀쩡히 걸어 다니니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멀쩡히 걸어 다니는 저 무리들이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나 같은 암 환자는 좀 더 길고 밀도 있는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2달여간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내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암이 질병들 중 심각한 질병은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일까? 아닌 것 같았다. 거동이 불편해 이동형 침대에 누운 채로 이동하는 환자들. 수액을 맞느라 팔에 주렁주렁 무언가를 한 묶음 달고 다니는 환자들. 고통에 초점을 잃은 채 생기 없이 이동하는 환자들, 부축 없이는 걷기 어려운 환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상태를 보니 암이냐 아니냐는 환자 상태의 심각성과는 무관해 보였다. 그렇다면 멀쩡히 걸을 수 있는 암환자인 내 가 멀쩡히 걸을 수 있는 타 질병의 환자보다 상급병원에서 진료받을 우선권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다른 환자들의 병이 심각하네 안 심각하네 판단하려 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암이 무서운 질병인 건 맞지만 우리는 암에 대해 과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실제로 암의 생존율은 수십 년 전에 비해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우리의 인식은 그대로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어떤 암에 걸렸는지, 병기(암이 얼마나 퍼졌는지)가 어느 단계인지, 내 몸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심각성은 달라지니 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자신을 비극적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우리는 주인공이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 승리하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가? 암 5년 생존율이 70%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설령 암에 걸렸다 할지라도 암에 걸려 죽기 직전인 비극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씩씩하게 시련을 이겨낸 주인공으로 자신을 생각해보자.


 무섭기만 한 암 치료 과정이 한결 편해지고, 우울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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