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꿈은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 길로 갈 수 있는 꿈이라는 미로

by 삐약이

어릴 때부터 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포켓몬, 디지몬, 짱구, 근육맨, 드래곤볼 등등… 여러 애니메이션을 성엽하면서 고등학생이 됐다. 그러자, 내 마음에서 성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성우가 되기 위해 방송 학과가 있는 대학과 연기 학원에 다닐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연기 학원에서는 참관 수업이라도 하려고 하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방송 학과가 있는 대학은 그 당시에 시각장애인을 받지 않아서 대학에 가는 것조차 되지 않아 좌절감이 밀려왔다. 서울에 있는 성우 학원에도 다니려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결국 학원에도 못 가고 성우를 접고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사회복지 학과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성우를 접은 건 아니었다. 계속 머릿속에 성우가 떠올랐고, 결국 성우가 될 결심을 하고 성우 학원에 전화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원에 가서 수업을 받고 열심히 한다면 성우가 될 줄 알았던 내게 성우는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다.


대본이야 파일로 받는다지만, 영상을 볼 수 없는 나는 더빙을 할 수 없었다. 더빙 뿐만 아니라 광고도, 나레이션도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라디오 연기나 오디오 드라마, 아니면 책 낭독이었다.


처음에는 화면 보는 걸 내려놓고 보지 않는 걸 하자고 마음 먹고 수업에 참여 했다. 그렇지만 눈이 안 보이는 나에게 있어 성우 시스템은 허들이 높았다. 학원 선생님들 중 한 분은 '시각장애인은 성우가 될 수 없다'고 하시면서 북나레이터가 되는 걸 생각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 역시 내가 성우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 하시며 유튜브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이 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 꿈만을 위해 여태 달려온 나에게는 성우를 내려놓는 게 마치 큰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연습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늘 주의력이 약한 탓에 연습하다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몸을 움직이고, 때로는 연습에 집중하지 못해 주변인들에게 자주 쓴 소리를 들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Adhd 증상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내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약을 먹어 어느정도 좋아졌지만, 그땐 약을 먹지 않아 상태가 더욱 더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결국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져 학원을 조금 쉬기로 하고 꾸준히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며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게 시각장애인은 성우가 될 수 없다고 했던 선생님께 의논할 게 있어 연락을 하게 됐다. 선생님은 나에게 성우가 되려면 순발력이 필요하고, 화면을 볼 일이 많은데 내 눈 상태를 알기에 될 수 없다고 다시 말씀 하셨다. 북나레이터 역시 나처럼 한 줄씩 읽어가며 하는 게 아닌 책 전체 내용을 눈에 담고 그 안에서 한 줄씩 읽어야 한다며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 해주셨다.


그러자, 예전에 남도형 성우님 강연에서 들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성우님이 내가 사는 지역에 와 강연을 하셨는데, 성우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성우가 되는 건 좋아요. 하지만 성우만을 보지 마세요. 만약 여러분이 성우가 되지 못했을 때, 크게 힘들 수 있어요."


그러면서 성우님은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셨는데, 그 말이 와 닿지 않았다. 성우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데 성우만을 보지 말라니, 그 말이 마치 모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와 통화한 선생님 역시 학원에 다닐 때 학생들에게 '성우만을 보지 말고 다른 길도 보라'고 말씀 하셨던 게 떠올랐다.


쉬는 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성우의 꿈을 접었다. 늘 연습을 해도 답답했고, 항상 심리적으로 시달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보이는 것에 대한 열등감과 스트레스가 컸던 것 같다. 학원을 그만 두고나니 어느정도 심리적인 안정감이 찾아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중 내가 하고 있는 글 쓰기가 머리를 스쳤다. 글 쓰기를 통해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과 전부터 좋아했던 웹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요동치게 했다. 그래서 웹소설 강의를 듣기 시작했고, 여러 웹소설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른 꿈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게 되자, 남도형 성우님의 말씀이 깨달아졌다. 성우만을 보지 말고 다른 길도 보라는 것. 그 말이 큰 울림이 되었다.

나는 현재 웹소설 강의를 다시 들으며 웹소설을 쓰고 웹소설을 보며, 브런치와 블로그를 한다. 성우만을 생각하며 오로지 한 길로만 돌진하던 내가 다른 길도 있다는 걸 받아 들이기 시작한 거다.


성우를 못하게 되면 큰 일 날 줄 알았는데, 막상 그만 두고보니 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길이 내 앞에 펼쳐질 수 있음을 배웠다..


지금 생각하면 학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내 눈 상태를 알고 진지하고 조언 해주신 선생님께 이 글을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만약 지금까지 내가 학원을 다녔다면 어땠을까? 약을 통해 차분해져 나아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우가 되지 못해 답답해 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수업을 하다 내 눈에 한계를 느껴 더 힘들어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꿈은 여러 가지가 있고, 그 길은 무한하다. 어쩌면 한 길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길은 여러 가지인데 그걸 보지 못하면 늘 힘겨워 하고 있을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현재의 꿈에 감사한다. 그 꿈을 통해 내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이 꿈 역시 성우의 꿈처럼 안 될 수도 있고 부딪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기에 더욱 더 노력해보려 한다.


더 많은 글을 읽고, 웹소설을 읽고, 글과 웹소설을 쓰면서 내 꿈을 찾고 싶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통해 유튜버가 되는 것도 포기하지 않은 꿈 중 하나다.


사람은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나에게도 그 힘이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아직은 먼 미래라고 해도 끝까지 나아 가다보면 길이 열릴 것을 믿는다.


더 이상 예전처럼 꿈은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꿈은 무한함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 꿈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꿈을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지만, 다른 길도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역시 꿈은 하나가 아님을, 다른 꿈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변화시킨 책 '인생은 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