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기다려주는 것이 참 힘든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만 도와주면 그 단계를 넘어 그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걸 지켜보는 부모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몸이 들썩들썩거린다.
아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부모의 입장에서 그냥 지켜만 보는 게 쉽지만은 않다.
남의 아이는 다 하는 걸 우리 아이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걸 기다려주는 것은 도를 닦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온갖 걱정과 염려에 휘둘리기도 한다.
이때쯤이면 영어 문법은 이미 끝나 있어야 하고, 이때쯤이면 수학은 고등과정을 선행에 들어가야 하고, 방학이면 단기로라도 외국에 나가 영어 스피킹 실력도 키워야 하고, 문해력을 위해 논술학원이나 독서토론도 필수이며, 한자도 배우는 게 좋고, 역사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운동이나 악기도 한 가지씩은 해야 한다고......
주변 엄마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갑자기 나는 아이의 나이에 맞춰 교육을 설계해 주지 못한 무능한 부모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다른 아이들은 정말로 저렇게 다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심도 든다. 물론 부모의 완벽하고 장기적인 교육 계획 아래서 순종적으로 착실하게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가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아니다.
큰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모든 학원을 거부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도 시키는 대로 곧잘 하고 피아노며 댄스며 미술이며 하고 싶은 것도 많아 보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공부에 의지도 재능도 없어 보였고 다른 것들에도 흥미를 잃은 듯 보였다. 초등학교와 달리 즐거울 것도 신나는 것도 없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보내야 하는 아이는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이 들다가도, 어른들은 재미로 흥미로 일하는 줄 아느냐, 먹고살려면 하기 싫은 일도 힘든 일도 해야 하는 거다, 그래도 기본은 해야지, 엄마가 일등을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 잔소리를 퍼부었다. 나는 아이와 지겹도록 많이 싸웠고 서로 악을 쓰며 팽팽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생각하는 그놈의 기본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건지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것이 나의 기준이고 나의 욕심이라는 걸. 그리고 그냥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이가 무엇이든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그러자 아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눈빛도 순해지고 말도 부드러워졌다. 나도 욕심을 버리니 조급해하며 전전긍긍하던 마음도 사라졌다. 물론 아직도 학교 수업에 충실해라, 공부도 때가 있는 법이라는 잔소리는 가끔 하지만 말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마흔에도 쉰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본다. 지금 공부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부족한 부분부터 채워나가면 된다. 남들보다 그 시기가 조금 늦어지기는 하겠지만 길고 긴 인생에서 꼭 남들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빠르게만 달리다가 지쳐 포기하는 사람보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길을 꾸준히 걷는 사람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나 기다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도대체 우리 아이는 언제쯤 공부할 마음이 생길까? 언제쯤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스스로 하게 될까? 그래도 종종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조금씩 아이의 마음과 생각이 자라고 있다는 걸 느낀다. 사춘기의 아이는 얼마나 미래가 불안하고 마음이 복잡할까, 혼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자라 가는 것이겠지. 대신해 줄 수 없는 고민과 생각의 시기를 거쳐가는 아이를 나는 그저 지켜보며 믿고 기다린다.
OO야, 엄마가 다른 건 잘 못할지도 모르지만 널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일은 끝까지 해볼게.
넌 뭐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너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