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모칠라’라는 가방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뜨개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콜롬비아 와유족이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이 가방은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무늬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연예인들이 많이 메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모칠라 사진을 보여주며 혹시 만들 수 있으면 재료비와 공임도 충분히 줄 테니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조심스레 부탁해 왔다. 언니가 고른 건 무늬가 없는 단색 모칠라였고, 한 달쯤 걸려도 괜찮다고 하니 기간도 넉넉했다. 나는 뜨개를 순전히 취미로 하는 것이라 돈을 받고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거의 거절하는 편인데, 그날은 갑자기 뭐에 씌었는지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치솟았다. 아.. 나는 그때 몰랐다. ‘모칠라’가 ‘미칠라’가 된다는 뜨개인들의 간증과 같은 말을.
무늬 있는 모칠라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만, 단색이라 덤볐던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처음엔 꽤 재미있었다. 옆면은 단색이지만 바닥면에는 무늬를 넣고 싶어서 적당한 도안을 찾아보고, 콧수와 단을 계산하며 바닥면을 떠가기 시작했다.
모칠라를 뜰 때에는 다른 기법은 필요 없고 짧은 뜨기만 계속하면 된다. 단순반복작업이라 잡생각도 사라지고 집중할 것이 생기니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사나흘 걸려 바닥을 완성하고 나니, 그 뒤로는 끝없는 짧은 뜨기의 연속이었다. 가방의 몸체가 어느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오는 동안은 정말 밤낮없이 뜨개만 했다. 무늬라도 있었더라면 실 배색하는 재미라도 있었을 텐데 한 가지 실로 주구장창 짧은 뜨기만 반복하다 보니 점점 지겨워졌다. 빨리 이 짧은 뜨기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이래서 다들 ‘미칠라’라고 하는구나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래도 부탁받은 일이니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다. 내 것이라면 대충 떠도 되겠지만, 남의 것이고 수고비도 받는 마당에 그만한 퀄리티는 있어야 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수고한 끝에 드디어 가방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뿌듯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가방 입구의 조임끈과 어깨끈. 처음 주문을 받을 때는 미처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막상 만들려고 보니 이 끈은 뜨개로 하는 게 아니라 ‘카드위빙’이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공예로 만들어야 했다. 일종의 매듭 같은 것인데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었고 만들기 위해서는 장비까지 필요했다. 가방은 완성했는데 끈에서 막히다니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한번 해보겠다고 덜컥 말해버린 내 입을 때리고 싶었다.
그래도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다. 국내 영상, 해외 영상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찾아보다가 마침내 장비 없이 모칠라 끈을 만드는 법을 찾아냈다. 오! 감사합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리고, 찾는 자에게 길이 보인다'더니 죽으란 법은 없네.
그런데 그 방법이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 끈 만드는 것에 비하면 가방 뜨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며칠 밤을 잠을 못 자며 시도하고 또 시도한 끝에 결국 직접 끈을 만들어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무슨 정신으로 완성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다른 쉬운 방법도 있었다. 뜨개로 끈을 떠서 달거나 판매하는 끈을 사서 대신해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만들다 보니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든 내 손으로 직접 다 만들어서 시중에 판매되는 모칠라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끈 때문에 며칠을 고생하긴 했지만 언니한테는 내색하지 않고 마침내 완성된 가방을 무사히 전해주었다.
그때의 성취감이란. 몇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내 뜨개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다시 만든다고 해도 그때만큼의 정성과 열정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칠라는 뜨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르는 것을 여기저기 찾아가며 배우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연구하고, 손에 익을 때까지 반복하고 연습했다. 뜨개 실력뿐만 아니라 내 마음가짐도 조금 더 성장한 느낌이었다. 이후에 다른 어려운 뜨개 작품을 봐도 '모칠라도 떴는데 이것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도 얻었다. 이런 태도는 뜨개를 넘어 내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단순한 취미라고 생각했던 뜨개가 이렇게 내 삶의 태도까지 변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가끔 그때 모칠라를 만들며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꺼내어 본다. 그러면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과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의지가 솟아난다.
정말이지, 뜨개를 취미로 삼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