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시오!!!

by 수정

코바늘을 뜨다 보면, 한참 단이 올라간 후에야 저 아랫단에서 잘못 뜬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첫째, 모른 척하고 그냥 진행한다.

둘째, 푸르시오. 말 그대로, 잘못 뜬 부분까지 실을 다시 풀어내는 것이다.

실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완성해 버렸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이미 잘못된 부분을 발견한 이상 그냥 넘어가는 건 찝찝하다. 그냥 내 성격이 그렇다. 결국 나는 잘못된 부분까지 다시 푸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뜰 땐 그렇게 오래 걸리던 것이 풀 땐 한순간이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풀리듯, 술술, 아주 신나게 풀려버린다.


처음에는 이런 실수들이 짜증이 났다.

"하... 어떻게 여기까지 떴는데..."

"다시 뜨려면 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혼자 푸념하며 이런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을 탓했다.

처음부터 잘 떴으면 다시 푸는 일도 없을 텐데, 차리라 틀린 걸 발견하지나 말던지, 그럼 '푸르시오'는 하지 않고 끝냈을 텐데. 어떤 때는 의욕이 딱 사라져 그냥 풀어버리고 코바늘을 멈춘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년 전에 완성했던 그래니스퀘어백이 눈에 띄었다. 유행도 지났고, 바닥이 사각형이라 물건 넣기도 불편해 자주 들지 않고 수납장 속에 모셔두었던 가방이었다.

그대로 두긴 아까워 실을 모두 풀고 뜨고 싶었던 헤링본 무늬 가방으로 다시 만들었다. 새로 만든 것은 꽤 마음에 들어서 그 해 겨울 내내 잘 들고 다녔었다.

왼쪽이 그래니스퀘어백, 오른쪽이 그걸 풀어서 만든 헤링본무늬 가방.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다시 풀어서 고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다시 만들 수 있는 게 뜨개의 매력 아닌가?

얼마나 유연하고 너그러운 뜨개의 세계인가! 뜨개의 장점이었던 것을 단점으로 생각하고 혼자 툴툴거리고 있었다니. 반대로 생각하면 틀려서 푸는 것에 전혀 짜증 낼 필요가 없는, 너무나도 다행인 일인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 즉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취미로 하는 건데 틀리면 어떻고 다시 풀면 어떤가.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 취미이니 무언가를 뜨는 것 자체로 즐거우면 된 것이다. 실수를 발견하면 다시 풀어서 고칠 수도 있고 맘에 안 드는 건 풀어서 새로운 다른 것을 뜰 수도 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다. 우리 삶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살아볼 수도, 이번 생이 망했다고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데 뜨개는 이 모든 게 가능하다. '푸르시오'는 전혀 짜증을 낼 일이 아니다. 실패가 아닌 기회이고 새로운 시작점이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 같은 이 사소한 생각의 전환이 나의 취미생활을 한층 더 자유롭고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취미는 말 그대로 취미이니까.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실수를 발견하더라도 짜증내거나 낙심하지 말고 신나게, 후루룩, 푸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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