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내성적인 아이였다.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발표를 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선생님이 발표를 시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 수업시간 내내 서 있던 적도 있었다. 또래보다 키가 컸던 나는 혹시라도 큰 키 때문에 주목을 받을까 봐 항상 어깨를 수그리고 다녔다.
가끔은 내가 투명인간이기를 바랐다. 아무도 나를 눈치채지 못하고 나에게 관심 갖지 않기를, 그냥 나를 가만히 놔두기를.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도 모를 교실의 화분처럼, 배경처럼 자리 잡아 색이 눈에 띄지 않는 방안의 벽지처럼, 나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듯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일이 책을 읽을 때 이뤄지다니! 나는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책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덕분에 집 안에는 항상 책이 많았다. 어릴 때는 다락방이 있던 2층 집에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다락방은 조금 어둡긴 했지만 여름에도 시원하고 조용해서 책 읽기에 너무나 좋은 장소였다. 나는 그곳에는 메리 포핀스의 우산을 타고, 설레는 맘으로 키다리 아저씨의 편지도 읽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토끼도 만났었다. 지금은 제목도 줄거리도 흐릿한 책들이 더 많지만, 엄마가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부르기 전까지 다락방에서 혼자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현실 세계로부터 잠시 떠나 있는 기분으로, 일종의 도피처럼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책 속에 빠져들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여러 인물들과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며 그들과 함께 울기도 웃기도 했었다. 현실에서는 한 번뿐인 삶이지만 책을 통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여러 삶의 모양을 만날 수 있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어서 낯가림도 심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나에게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은 너무나도 큰 자산이 되었다.
자라면서 한 때는 시와 소설에, 또 어떤 때는 추리물과 무협지에, 한동안은 자기 계발서에 빠져있었다. 누군가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책만 주구장창 읽기도 했다. 아이가 생기면서는 육아서도 많이 읽었다. 인생의 한 부분에서는 잠시 독서에서 멀어졌던 시기도 있었지만, 여전히 독서는 나에게 가장 오래되고 좋아하는 취미이다.
취미는 즐거워야 오래 지속된다. 그래서 내 독서는 순전히 재미가 목적이다. 억지로 읽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고 재밌다고 생각되는 책을 주로 읽는다. 그러다 보니 어려운 책은 안 읽는다. 아니, 못 읽는다. 아무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 해도, 살면서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라 해도 재미가 없으면 책장이 넘어가질 않는다. '내 취미니까 내 마음대로 읽어도 되는 거 아닌가?' 막 이러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편식하는 아이처럼 편독의 습관이 있다. 요즘에는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시작은 도피였지만, 지금 나의 정서와 인격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취미생활인 독서에 대해 몇 주간 써볼 계획이다. 내향인의 취미생활 독서 편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