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by 수정

손뜨개를 취미로 하다 보면, 취미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뜨태기'가 찾아온다. 한 작품을 완성하고 뜨태기가 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무언가를 뜨는 중에 뜨태기가 찾아오면 그 작품은 대부분 미완성이 된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뜨다 만 것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가는데, 또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면 다시 이어서 뜨기도 한다. 그래서 뜨개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어발 뜨기'를 한다. 문어발처럼 여러 개의 작품들을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그날의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구미가 당기는 것을 뜨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던 것을 완전히 마무리 짓고 다른 새로운 것을 뜨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문어발 뜨기는 지양하는 편이지만, 그놈의 뜨태기가 찾아오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냥 손이 놓아지는 것이다. 어디에 납품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만의 취미생활이니 완성을 하든 말든 크게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뜨태기가 반갑지만은 않다. 그래서 나만의 뜨태기 극복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다.

첫 번째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실 쇼핑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곱고 예쁜 실들이 얼마나 많은지. 계절 따라 유행 따라 섬유 회사에서는 뜨개인들을 마음을 뒤흔드는 다양한 촉감과 새로운 색상의 실들을 출시한다. 더불어 그 예쁜 실들로 뜨면 완벽할 작품들까지 사진과 함께 온라인 쇼핑몰에 올려준다. 구경하다 보면 뜨태기는 사라지고, 이걸 떠봐야겠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어느새 홀린 듯이 장바구니에 실을 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예쁜 실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실 창고에 정리되어 가는 실을 볼 때면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 쇼핑은 자칫하면 생각보다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뜨태기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또 다른 방법은 '함뜨'에 참여하는 것이다. 함뜨는 '함께 뜨기'의 줄임말이다. 말 그대로 일정 기간 여러 사람이 같은 작품을 떠서 완성하고 인증하는 것이다. 뜨개 관련 카페나 블로그에서 진행되며, 마감일까지 인증해야 한다는 약간의 강제성이 있어 자연스럽게 바늘을 움직이게 된다. 인증을 하지 않으면 다음 함뜨 참여가 제한되거나, 무료로 받은 도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무조건 완성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다 보면 뜨태기는 자연스럽게 극복된다.

나는 기회가 되면 종종 함뜨에 참여한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바늘을 움직이며 같은 작품을 뜨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묘한 동질감이 생긴다. 뜨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러면 친절한 뜨개인들이 사진까지 첨부하며 방법을 알려 주기도 한다. 그런 글을 마주할 때면 나는 또 마음이 따뜻해진다.

먼저 완성한 사람들이 인증글을 올릴 때면 그들의 작품을 보며 감탄하곤 한다. 같은 도안으로 같은 작품을 뜨지만, 사람마다 그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중에서도 일정하고 고른 땀으로 깔끔하게 완성된 작품은 더 눈에 띈다. 만나보지 않아도 그런 작품을 뜨신 분들은 분명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일 것이다. 직접 만나지 않고도, 한 공간에 모여 뜨지 않고도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따로이지만 또 같이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함뜨는 특별한 경험이다.

때로는 한없이 손을 놓고 뜨개를 쉬는 시기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뜨개이기도 하다. 뜨개의 매력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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