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드리드 미술관 투어 part1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우리는 미리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해 두었다. 가이드님과의 약속 시간이 11시라서 오전에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숙소에서 프라도 미술관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여서 산책 겸 걸으며 일찍 미술관 근처로 이동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미술관 앞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미술관 주변의 산책길도 여유롭게 둘러보고, 고야, 벨라스케스, 무리요의 동상도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모두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들이다. 약속 시간 전까지 근처 카페에서 아침식사로 커피와 빵을 먹으며 오늘 만나게 될 가이드는 어떤 분이실지 기대해 보았다. 이름만 알고 있어서 성별도 나이도 추측하기 어려웠다.
온라인으로 예매한 티켓을 매표소에서 교환한 후, 약속 장소인 고야 동상 앞에 서 있었다. 아까는 한가했던 미술관 앞은 어느새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상인들이 판매용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다. 한국인 같은 사람이 보이면 혹시 저분이 가이드일까, 아니면 저분인가 고개를 기웃기웃 거리다가 마침내 만나게 된 가이드분은 스페인처럼 밝고 활기찬 분위기의 여성분이었다. 스페인의 미술에 매료되어서 마드리드에 정착하게 되었고 미술과 사진 관련 일을 하신다고 하셨다. 미술관 투어는 소수로만 운영하고 있어서 오늘은 우리 셋 뿐이었고, 거의 일대일 과외를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미술관을 관람하는 내내 최대한 쉽고 지루하지 않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세계 3대 미술관답게 관람객들이 어마어마했다. 여기서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주의를 들었다. 어디나 사람이 많은 곳은 소매치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나 보다. 아쉽게도 미술관 내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작품들은 눈과 귀로만 감상해야 했다. 가이드분의 안내에 따라 미술관의 여러 작품들을 감상했는데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인상에 남았던 몇 작품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벨라스케스《시녀들》
이 그림은 어느 TV프로그램에서 설명해 주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림 속 여러 인물들이 배치와 시선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들어준다. 액자 밖의 공간까지도 그림의 일부로 확장시켜 감상할 수 있도록 한 벨라스케스의 천재성에 놀랐다.
그 모든 요소들이 철저히 의도되고 계획된 것이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왕실 화가가 될 정도였으니 남들과는 뭔가 다르긴 달랐겠지. 그 당시의 최고의 화가였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보스《쾌락의 정원》
세 폭으로 구성된 이 그림은 좌측에는 천국을, 우측은 지옥을, 가운데 부분은 인간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좌우 날개 부분을 접으면 안쪽이 화려한 그림과는 대비를 이루는 무채색의 지구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갖 모양의 생명체들이 나오는데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며 살펴보니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한 폭의 그림 안에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우리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처럼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림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프라 안젤리코《수태고지》
수태고지는 유럽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미술관이나 성당 어느 곳을 가더라도 수태고지에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종교가 없는 나 역시도 이 그림 역시 보는 순간 고요한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로 신비롭고 인상적이었다.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고 파란색이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알람브라 궁전을 관람할 때 파란색 염료가 가장 비싸고 색이 오래 유지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앙심과 사랑이 그림에서도 느껴졌다.
틴토레토《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그리스도》
이 작품 또한 굉장히 놀라웠는데, 가운데서 그림을 볼 때와 가장자리에서 그림을 볼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착시효과를 그림에 이용해 공간과 시점을 변화시키다니 화가들은 다 천재인가 보다. 가이드님의 설명에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그림을 보니 같은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책을 읽다가 놀라운 반전을 만난 것처럼 정말 화들짝 놀랐다. 미술은 어렵고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다 보니 재미있고 조금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겼다. 그동안 읽어보지 않았던 미술 관련 책들도 관심을 갖고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고야의《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가장 유명한 작품인 옷을 입은 마하와 옷을 벗은 마하는 보지 못했지만 고야의 다른 작품들과 후기 작품들을 따로 모아놓은 전시관은 둘러볼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의 작품들과는 달리 굉장히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였다. 이때 그린 작품들을 일컬어 블랙 페인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당시의 어지러운 시대 상황과 정신적 불안, 질병등으로 말년의 고야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 그림을 통해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다른 여러 작품들과 스페인 왕가에 관련된 그림들을 보며 미술사의 시대적 흐름이나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배워볼 수 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유익해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훌쩍 지나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프라도 미술관을 다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가이드님의 설명 덕분에 미술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조금은 사라진 듯했다. 엄마도 즐거운 관람이었고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하셨다. 가이드님은 여러 번 프라도 미술관에 방문했음에도 올 때마다 새롭고 여전히 좋다고 하셨다. 조금 더 여유롭게 관람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관람객들도 워낙 많고 이후에는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에 갈 예정이어서 잠시 휴식을 갖기로 했다.
가이드님과는 점심 식사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추천해 주신 식당으로 이동했다. 오징어튀김 샌드위치로 유명한 곳이라는데, 바게트 빵과 오징어튀김의 조합이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만나게 될 피카소와 달리, 호안 미로의 작품들 또한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