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엄마는 점점 외국음식이 지겨운지 한식이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다음 여행 때는 꼭 햇반과 김과 김치를 싸와야겠다고 생각하며 구글맵에서 한식당을 검색해 봤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식, 일식, 동남아 음식점이 모여있는 곳이 있길래 엄마가 드실만한 음식을 포장해 오기로 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화려한 네온 조명이 우리를 반겼다.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라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옛날 오락실 느낌이 나는 푸드코트 같은 곳이었다. K-pop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고, 여러 가게들 중 ‘Akma Korea’라는 간판과 한글로 적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눈에 띄었다. 붉은 악마를 본떠서 만들 걸까? 신기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다양한 한식메뉴를 팔고 있었다. 조리하시는 분이 외국인이라 반신반의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잡채와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포장된 음식을 받아보니 양도 푸짐하고 제법 괜찮아 보였다. 엄마 입맛에 맞아야 할 텐데.
숙소로 돌아와 함께 음식을 먹어보았다. 나와 동생은 산미구엘 시장에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살짝 맛만 보았는데 잡채는 괜찮았지만 김치볶음밥은 이 맛도 저 맛도 아니었다.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퓨전식으로 만든 건지 매운맛은 하나도 없고 달달한 소스맛이 더 많이 났다. 엄마는 비행기에서 챙겨두었던 작은 고추장이 있다며 김치볶음밥에 고추장을 섞어 드셨다. 소중한 고추장, 챙겨두길 잘했네.
엄마가 쉬는 동안 나와 동생은 야시장투어에 나섰다. 흔히 생각하는 시장과는 달리, 멋들어진 건물 내부에 다양한 상점들이 모여 있었고, 생선, 고기, 튀김, 빵, 견과류, 과일, 술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전통적인 시장이라기보다는 관광지에 더 가까웠고 그래서인지 가격은 조금 사악했지만 타파스와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와인 가게에서 와인 한잔씩을 주문하고 들고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음식들을 하나씩 사서 먹어보았다. 처음 도전한 것은 순대꽂이 비슷하게 생긴 것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퍽퍽해서 그냥 so-so.
다음으로 들른 곳은 해산물 가게. 다양한 해산물이 한 접시 분량으로 담겨있고 원하는 걸 골라서 주문하면 바로 데워주신다. 비싸긴 했지만 너무 맛있었다. 와인 한잔씩 추가로 주문하고 구경 또 구경. 여기가 핫플레이스네.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다들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나와 동생도 기분이 좋아서인지 와인이 쭉쭉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베르뭇을 맛보기 위해 다른 가게로 이동했다. 베르뭇은 와인에 허브와 향료를 추가한 술인데 띤또 데 베르노 보다는 조금 덜 달고, 도수는 조금 더 높다. 은은한 약초향이 나서 술이지만 마시면 몸에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다들 올리브를 곁들여 먹길래 우리도 함께 먹었다. 올리브가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은근히 매력적이고 생각보다 맛있다. 나도 모르게 하나 둘 계속 집어먹게 된다. 우리가 김치나 나물에 막거리 먹는 것처럼 스페인 사람들은 올리브에 와인을 즐겨 먹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음주문화처럼 부어라 마셔라, 술이 술을 먹을 때까지 과하게 마시지 않고 기분 좋게 한잔씩 마시며 저녁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도 내일을 위해 너무 늦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일은 마드리드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인 미술관 투어가 있는 날이다. 그래도 유명한 화가와 작품들은 좀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벼락치기로 공부를 했다. TV에서나 사진으로 스치듯 보았던 작품들을 실제로 눈앞에서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림에는 문외한인 나조차도 이렇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걸 보니,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접하고 알아가는 기쁨이 참 크다는 걸 느낀다. 내일 마주하게 될 예술의 세계를 기대하며, 마드리드의 눈부신 밤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