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서의 첫날

by 수정

우리가 마드리드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어딘가를 관광하기에도 애매하고, 다음날 하루 종일 미술관 투어도 계획되어 있어서 첫날에는 간단히 숙소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드리드에서는 Hostal Marlasca에서 머물렀는데 근처 관광지와 거리가 가까워 어디든 걸어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프라도 미술관까지는 20분 정도는 걸어가야 하지만 그 정도는 우리에게 가까운 거리였다. 방 상태도 깔끔했고 직원들도 친절해서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우리 셋 다 잠자리에 크게 까다롭지 않고 숙소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여행지 여기저기 돌아보는 걸 더 선호해서 숙소에 많은 비용을 들이지는 않았다. 그보다 맛있는 걸 먹고, 아름다운 걸 보고,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여행지에서의 낯섦과 새로움을 느끼는데 더 비중을 두었다.

짐을 풀고 마요르 광장을 거쳐 Mesón del Champiñón(메손 델 챔피뇬) 식당에 도착했다. 예전에 '꽃보다 할배'에서 소개된 적이 있어 한국인들에게 꽤 유명한 식당이다. 버섯요리가 맛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는데 식사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식당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자리가 없어 조금 기다리다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양송이 구이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가게 한쪽에서 양송이 꼬치를 산처럼 쌓아두고 전담 직원이 쉴 새 없이 굽고 있었다.
우리도 양송이 꼬치와 고추튀김, 생선튀김을 주문했다. 물론 맥주와 와인도.

고추튀김이 맛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사람들이 먹는 걸 보고 비주얼이 그다지 당기지 않아 먹지 않았었는데 여기서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한입 먹자마자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우리가 허기진 상태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양송이 구이와 고추튀김은 정말 훌륭했다. 스페인에서 먹은 것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최고였다. 결국 양송이 구이를 한 접시 더 주문했고, 그것도 뚝딱 해치웠다. 어릴 때는 그렇게 싫어하던 버섯이 나이 드니 왜 이리 맛있는지.

배도 든든해졌고, 이제 슬슬 걸어 다니며 쇼핑을 좀 해볼까 싶어 그란비아 거리로 향했다. 높은 건물마다 온갖 브랜드 매장이 즐비했다. 나는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오로지 새 캐리어만 간절했다. 여행 첫날부터 바퀴가 부서져 여행 내내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여기까지 이고 지고 오느라 내 팔 근육을 키워준 애증의 캐리어. 바르셀로나에서도 캐리어를 사려고 프라이마크에 갔었는데 매장도 크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사지 못했었다. 그런데 마드리드의 프라이마크는 규모가 훨씬 크고 없는 것이 없었다. NC웨이브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느낌이랄까. 상품도 다양하고 품질도 좋아 보였다. 그런데도 가격이 저렴해서 50유로에 은색 캐리어를 득템 했다. 엄마와 동생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옷구경을 했는데 막상 입어보니 우리의 체형에는 뭔가 어색한 느낌이어서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왔다.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기념으로 한두 장씩 사던 엽서만 길거리 상점에서 샀다. 마드리드의 주요 관광지가 귀여운 그림체로 그려져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엽서를 볼 때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마드리드가 떠오르겠지.

좀 더 걷다가 발견한 야오야오 아이스크림가게. 우리나라의 요아정처럼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인데, 굉장히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사이즈를 선택한 후, 그 위에 얹을 소스와 토핑을 골라야 한다. 뭐가 맛있는지 몰라서 검색해 본 후에 가장 후기가 좋은 피스타치오 소스와 망고 그리고 알바생 추천으로 땅콩토핑을 선택했다. 잎사귀처럼 생긴 초록색 긴 숟가락을 함께 주는데 한번 쓰고 버리기 아까웠다. 개인적으로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정말 맛있어서 다음날 또 사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거리의 음악가들. 연주가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머물렀다. 공짜로 듣기 미안할 만큼 수준급이어서 악기함에 팁도 넣었다. 노을 진 거리에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과 그 앞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모여 있는 관객들, 거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공연장이 된 것만 같았다. 행복하다는 감정이 절로 떠올랐다.

솔 광장을 지나가다 만난 곰 동상.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유명한 동상이라는데, 생각보다 작고 아담해서 그냥 지나칠 뻔했다. 곰의 엉덩이를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어 우리도 모두 소원 빌고 곰 엉덩이 터치! 붐비는 시간에 가면 곰 엉덩이를 만지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높이가 꽤 높아서 까치발을 들어야 닿을 수 있는데 엉덩이에 손이 안 닿으면 발뒤꿈치를 만져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엉덩이와 발뒤꿈치만 반질반질하다.

그 와중에 엄마는 키가 안 닿아 발뒤꿈치를 만졌다며 내일 다시 와서 엉덩이를 만져야겠다고 했다. 엄마가 이렇게 곰 엉덩이에 진심을 줄은 몰랐는데. 소원이라 봤자 가족들 건강과 앞으로의 날들이 순탄하기를 바라는 것일 텐데. 다음날 나와 동생은 엄마의 소원성취를 위해 솔광장을 다시 방문했다.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엄마를 번쩍 안아 곰 엉덩이에 손이 닿게 해 드렸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활짝 웃으시는 우리 엄마. 그 모습이 귀여워 나와 동생도 웃음이 났다. 엄마의 소원이 꼭 이뤄지길.

숙소로 돌아와 새 캐리어에 짐을 옮기고 부서진 캐리와는 작별했다. 십 년 전에 우리 셋이 스위스로 여행 갈 때 샀던 캐리어인데 그 뒤로 몇 번 써보지도 못하고 이별이네. 새로 장만한 캐리어와는 좀 더 자주 여행 다닐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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