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세비야!

by 수정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우리의 여행도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만의 아침 루틴도 생겼는데, 전날 미리 사두었던 사과를 먹고 동네 산책을 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었다. 사과는 카르프 매장이나 동네 가게에서 사곤 했는데 종류가 꽤 많았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사 먹어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Pink Lady 사과가 가장 맛있어 나중에는 그것만 사 먹었다.

론다를 떠나는 날 아침도 우리는 사과를 먹고, 전날 봐두었던 ‘Alameda del Tajo’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이른 아침이라 공원은 한산했고, 갑자기 거세진 바람 때문에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맑은 공기와 탁 트인 경치 덕분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헤밍웨이도 론다를 매우 사랑했고, 론다에 머무는 동안 이 공원을 자주 산책했다고 한다. 공원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한 바퀴를 돌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광장 앞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과 내리쬐는 아침 햇살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오늘은 세비야로 이동하는 날이다. 짐을 꾸려 론다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시골 버스터미널처럼 작고 정겨운 곳이었다. 작은 가게 하나, 의자 몇 개, 그리고 화장실이 전부였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유료 화장실을 만났다. 분명 숙소에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아침에 마신 커피 때문인지 용무가 급해 어쩔 수 없이 유료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비용은 0.5유로, 한화로 7~8백 원 정도였다. 돈을 내고 화장실을 쓰게 될 줄이야. 하지만 정말 급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세상모르게 잠들었다가 깨어 보니 어느새 세비야에 도착해 있었다. 10월의 스페인 날씨는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다고 해서 긴팔 위주로 준비했는데, 세비야의 기온은 낮에 30도를 웃돌 정도로 더웠다. 세비야에서 머물 숙소는 ‘Hotel Alcantara’였는데, 이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호텔 옆 1층 공연장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해 체크인을 한 뒤, 세비야 대성당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이전에 들렀던 도시 론다는 자연 속에 어우러진 작은 마을이었다면, 세비야는 훨씬 더 규모가 큰 도심처럼 느껴졌고 유럽적인 분위기와 활기찬 기운이 더 강했다. 세비야 대성당이 먼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성당에서 뻗어 나간 여러 골목길에는 식당과 작은 상점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큰 길가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말마차와 버스, 트램이 동시에 오가는 광경을 마주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시골에서 도시로 막 상경한 사람들처럼 상기된 얼굴로 세비야 탐방을 시작했다.

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답게 그 규모부터 압도적이었고, 내부에는 수많은 미술 작품과 거대한 오르간, 콜럼버스의 무덤과 오렌지 정원 등 볼거리가 가득했다. 원래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었으나 지금은 성당의 종탑이 된 히랄다 탑 역시 놓칠 수 없는 명소였다. 그 명성만큼이나 성당 안과 밖, 그리고 주변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입장객들의 옷차림에도 제한이 있었는데, 민소매나 짧은 하의, 슬리퍼 차림은 입장을 제지당할 수 있다. 우리 앞에 서 있던 한 외국인 커플은 민소매 차림으로 있다가 직원의 주의를 받고, 가방에서 긴팔 옷을 꺼내 덧입은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관람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신비로운 분위기와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으로 인상 깊었다면, 세비아 대성당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은 공간과 웅장함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할 정도였다. 한국어 안내서와 오디오 가이드가 있긴 했지만 우리의 궁금증을 충분히 채워 주지는 못했다. 미리 공부라도 좀 하고 올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쉬운 대로 챗지피티를 가이드 삼아 중요한 장소 위주로 관람했다. 여행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았던 콜럼버스의 관을 직접 눈으로 보고, 돔형 천장과 무리요의 그림으로 유명한 카피툴라르 홀도 둘러보았다. 성당 내부에 있는 오렌지 정원에서 사진도 찍고 히랄다 탑에도 올라갔다.

히랄다 탑은 계단이 아니라 비스듬한 경사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말을 타고 오르내릴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한 바퀴를 돌아 올라갈 때마다 벽에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사전 정보 없이 오르게 되어 정상이 몇 층인지 알 수 없었다. 길게 이어진 관람객들의 행렬을 따라 올라가며 숫자를 하나씩 확인하는데 생각보다 꽤 높았다. 10, 20, 30… 어디까지 올라가는 걸까 싶을 때 만난 마지막 숫자는 34였다. 오르다 보면 언제나 끝은 있다.

어디가 끝인지 모른 채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꼭대기에는 크고 작은 종들과 아름다운 전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을 찍기 쉽지는 않았지만, 요리조리 인파를 피해 인증샷도 남겼다. 이제 올라온 만큼 내려갈 차례. 급할 것 없는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내려오며 탑 사이에 난 창으로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잠시 앉아 쉬기도 했다.

이슬람 건축물 위에 덧입혀진 가톨릭 성당의 종탑이라니. 혼합된 건축 양식과 서로 다른 종교적 색채가 섞여있는 모습이 부자연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독특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성당이 워낙 넓다보니 아직 다 보지 못한 곳이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좀 더 머물다 가고 싶었지만,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식당은 어디나 사람이 많아서 지나가다 자리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스페인 사람들과 관광객 대부분은 바깥 테라스에서 식사를 즐겼지만 우리는 실내가 좋아 안쪽 자리에 앉았다. 가지튀김, 돼지고기 감자 요리, 참치 샐러드 같은 타파스와 식사마다 빠질 수 없는 와인도 주문했다. 가지튀김이 특히 맛있었다.

숙소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다가, 저녁에 있을 플라멩코 공연 전까지 잠시 쉬기로 했다. 스페인에 왔으면 플라멩코 공연은 봐줘야지. (그런데 플라밍고랑 플라멩코를 헷갈리는 건 나뿐인가? 흠흠…) 난생처음 보게 될 플라멩코 공연은 과연 어떨까. 낯설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 약간의 긴장감을 안은 채 우리는 공연의 시작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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