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드리드 미술관 투어 part2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관람 전에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간 곳은 ‘Bar El Brillante’
아토차역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근처에 있는 오징어 튀김 샌드위치(보까디요 데 깔라마레스)로 유명한 곳이다.
식당 안은 사람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다. 역 근처이다 보니 유동 인구도 많고 열차 타기 전에 간단히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앉아서 먹을 수 있는 바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고 서서 먹는 곳도 자리가 없어서 자리가 날 때까지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주문받은 메뉴를 크게 외치는 직원들의 목소리,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내는 주방의 손놀림, 들고 나는 손님들, 모든 게 분주하고 요란했지만 생동감이 느껴졌다. 식당은 마드리드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다행히 금방 자리가 났다. 우리는 오징어 샌드위치와 맥주를 주문했다. 바게트 빵 사이에 오징어 튀김이 들어있는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라 별 기대 없이 먹어 보았는데, 부드럽고 짭조름한 오징어와 고소하고 담백한 바게트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으니 더 좋았다.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마치고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앞에서 가이드님과 다시 만났다.
프라도는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전형적인 미술관 같은 분위기였다면, 레이나소피아는 좀 더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의 미술관이었다. 병원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정말 큰 종합병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고 작품들도 많았다. 기존에 보아오던 그림과는 다른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현대 미술 작품들이 공간과 어우러져 한층 더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누가 뭐래도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을 꼽자면 피카소의 ‘게르니카’ 일 것이다.
미술관 여기저기를 관람하다가 마침내 마주하게 된 게르니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림을 처음 마주한 순간, 전시관 한 면을 가득 채운 압도적인 규모에 놀랐고, 무채색 화면 속에서 생생하게 전해지는 공포와 절규, 슬픔에 숨이 막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이런 게 아닐까. 가이드님이 그림의 여러 부분이 상징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해 주셨지만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세계 여러 곳을 돌고 돌아 스페인에 이 그림이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전쟁과 독재, 정치적 상황들로 인한 희생이 이어져 왔을까. 게르니카는 단순한 그림 하나가 아니라, 그 이상의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공감할 수 있었다. 많은 말보다 그림에서 전해지는 감정이 더 강렬하고 뚜렷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달리의 작품들 또한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꿈속의 풍경처럼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특유한 분위기가 그림마다 녹아있었다.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츄파춥스의 그 콧수염 달린 아저씨라니! 괴짜 같은 그의 말과 행동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가진 천재적인 예술가라는 것에는 누구나 이견이 없을 것이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는 그의 초기 작품들도 함께 관람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어서 같은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달리의 그림들을 시대별로 관람하면서 그림에 투영된 그의 삶을 압축해서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림은 말이 없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들려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그림들 중에서도 나는 특히 후안그리스의 ‘조셋그리스의 초상’이라는 작품이 가장 좋았다. 쪼개진 조각들을 이어 붙인 것 같은, 절제된 색감에 심심해 보이기까지 한 이 그림에서 나는 묘하게도 단정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 미술관에 있는 그림 중 하나를 우리 집에 걸어놓을 수 있다면 이걸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개인적으로 끌리는 그림이었다.
이렇게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분해하고 재구성해 그리는 방식을 ‘큐비즘’이라고 하는데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는 큐비즘 관이 따로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남들이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흩트려 놓고 다양한 방식과 질감으로 표현을 했는데도 질서와 조화로움이 느껴진다는 것이 새롭고 신선했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여러 조각들을 이어 붙여 완성해 가는 과정이겠지. 이 여행도 각자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조각으로 남기를 바라본다.
마지막까지 알차고 유익했던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간단히 소감을 나누며 가이드님과는 인사를 나누었다.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화가들과 작품들에 대해 설명해 주신 가이드님이 너무 고마웠고, 덕분에 우리도 오랜만에 학생 모드로 돌아가 눈을 반짝이고 귀를 기울이며 집중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동안의 만남이었지만 금세 정이 들어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미술관 주변을 한참 더 걷다가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아 미술관 앞 광장을 바라보며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 보았다.
여행을 준비하며 설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내일이면 벌써 우리의 여행이 끝난다니.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의 여행은 여기서 끝이 아닐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