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있는 '영업'의 길
서른 즈음 처음으로 뛰어든 벤처의 세계는 뜻밖에도 ‘영업’에 좌우되었다. 교육 콘텐츠를 기업체에 팔아야 하는데 언제나 그 통로는 술자리였고 그곳은 술 체력과 연기력이 능력의 모두였다. 상대방에게 굽실거리는 시늉이 잘 안 되면 술부터 마셨다. 그러는 젊은 놈을 닳을 대로 닳은 갑들은 잘도 요리했다. 매출이 늘수록 피폐해져 갔다. 이 땅은 진정한 벤처가 있을 곳이 못 된다는 확신이 커져 갔다. 사업을 그만둘 때쯤에는 다시는 ‘굽실거리는’ 업종으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바윗돌 같아졌다.
부르는 곳에 가서 영어나 가르치는 소극적이며 상대적으로 곱상한 (군사부일체의 한국 문화 속에서 적어도 선생이라고 불리는 직업은 실속은 없을지 몰라도 뽀다구는 제일 아름다운 쪽에 속한다고 본다) 쪽에서 20년 이상 일하다가 난 또 이 ‘영업’이라는 걸 하는 쪽으로 들어와 있는 걸 발견한다. 그런데 확연히 더 이상 비굴해지고
있지는 않은 것을 자각하면서 안 그러겠다는 내 결심 이외에 옛날과 무엇이 다른가 문득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영업은, 무조건 잘한다 자신 있다 싸다를 외치는 것이었다. 지금은 닥치고 듣는 것부터 시작한다. 영상을 달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케팅을 물어보고 있는 것이고, 경영 고충을 토로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생을 고민하는 거라는 것까지 다 듣고 나야 비로소 입을 연다. 당연히 울림이 있다. 대체로는 동그란 눈을 한다.
얼마를 주면서 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것인지 외의 문제까지 관심을 가져주는 업체는 처음 봤을 테니까.
두 가지 경우에 칭찬은 매우 위험하다. 매일 들을 것 같은 칭찬, 그리고 마음에 없는 칭찬이다. 누구나 칭찬을 받는 구석이 있고 하루를 멀다 하고 듣는 사실이 있다. 언젠가 어떤 사람에게 ‘귀엽다’고 했다가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바람에 당황한 이유로 난 진짜 귀여운 사람에겐 귀엽다는 말을 삼가게 되었다. 정우성에게 ‘멋있어요~’한다고, 봉준호에게 ‘재능있어요~’한다고 무슨 유의미한 인상을 남기겠는가. 그냥 시시한 사람 취급만 당한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입에 발린 칭찬이다. 사람이 바본가. 얼굴에 있는 표정근 중에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라고 한다. 다른 모든 근육이 내 말이 턱도 없는 거짓말이면서 그저 물건을 팔기 위한 것이라고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칭찬하고 싶을 땐 진짜만,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불친절할 필요도 없다. 존엄한 친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왕으로 대접하는 것이 필요했다면 나의 클라이언트는 룸살롱으로 가는 게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상 제작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휴지를 사러 마트에 들르는 사람과도, 여행을 준비하며 들뜬 마음으로 여행사를 찾는 사람과도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모두 깊은 고민에 잠긴 사람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깊은 시름에 잠겨있다고 하는 게 맞다.
그 부분에 전문적이고 진정성 있는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면 족하다. ‘비굴한 을의 시대’는 가고 있다고 믿는다.
사다리필름이 ‘영업’을 시작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영업용 술자리’는 없었다고 자부한다. 나도 변했고, 회사도 변했고, 사회도 변하고 있다. 희망이 오고 있다. 비굴한 술의 밤이 없는 대한민국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