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성공이 담긴 화이팅을 떠나 보내며
연말에 독서 여행 갔다가 혼자 왕산 해변을 걷고 있었다. 추운 날이라 한산한데 뭔가 어색한 분위기의 대여섯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아마도 안 친한 팀원들이 놀러 온 듯) 하나, 둘... 하는 순간 다들 자동적으로 주먹을 쥐면서 '화이팅'을 하는 게 보였다. 순간, 평생 한 번도 안 든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파이팅'이 가장 중요한, 그래서 '파이팅'에 생존과 성공이 달려 있던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구나... 그래서 저렇게 기회만 있으면 무의식 중에 주먹이 나오고 화이팅을 외치는 사람들이 되었구나...
뭐 그깟 구호를 가지고 시비를 하냐고 하실지 모르겠다. 그런데 난 그 순간, 뭔가 '화이팅'이 이끌어 오고, '화이팅'을 밑천 삼고, 또 '화이팅'을 DNA로 살아온 우리네 삶에서 이제는 이 원자적 태도를 버려야 하지 않겠냐는 강한 의구심을 느꼈다. 남들이 스포츠를 즐길 때 우리는 피 흘리고 붕대 감고 날아다니던 모습에 정신 승리적 오르가즘을 느끼던 그 모습이 이제는 살벌한 무관중 경기에서 우리 선수를 죽일 듯 '혁명적으로' 달려드는 북한 축구 선수들에게서 겹쳐 보인 다면 무리한 상상일까. 국회가 욕설판이고 나라가 두 쪽 날 정도로 격렬히 부딪치고,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새우등이 터지는 게 과연 '화이팅'이 부족해서 일까.
뭔가 '그렇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그 반대다'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오히려 '화이팅'이 과해서 생긴 문제라고. 왜 수험생은 꼭 4시간 자고 공부를 해야 하며 (운동을 해야 수학 점수가 오른다는 그 유명한 실험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왜 광고 회사는 꼭 주말 근무에 밤샘이 필수이며, 왜 청년들은 지쳐 쓰러질 정도로 노력을 해야 하는가. 왜 가만히 숙고하고 칼을 갈아 몇 번 찍지 않고 나무를 벨 연구를 하지 않고 미친놈처럼 마구 나무에 도끼질을 하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바꾸기로 했다. 구호를. 사진을 찍을 때 뭔가 구호가 필요하다면, 촬영을 나가는 팀에게 뭔가 격려를
날리려면, 클라이언트와 약속이 잡혔다면 우리 회사에서 서로에게 날리는 멘트를
Thinking!으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어색해 할 줄 알았던 직원들이 연초부터 모두 이 '띵킹!'을 잘 외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냥 구호일 뿐인데 이 말을 할 때마다 진짜 한 번 더 Thingking 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열심히' 하자는 추진력보다는
'어디로' 가냐고 하는 추진의 '방향' 과 '방법'을 더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러분께도 새 인사말로 권하고 싶다.
2020 띵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