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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리필름 Jun 11. 2019

이력서의 종말

당신의 유리방은 어떤가요?


이력서로는 안돼?

클라이언트에게 모델 이력서와 프로필을 복수로 올렸다. '이 사람이 괜찮은 것 같은데, 인스타 주소링크 좀 부탁할게요...' 이미지와 이력은 맘에 드는데 어떤 사람인지 좀 살펴봐야겠다는 말이다. 이전 모델의 품행 때문에 손해 본적이 있어서라고도 덧붙였다. 결국 클라이언트는 그 모델 후보의 SNS를 검사(?)했고, 문제없다며 촬영에 그린 라이트를 줬다.  




이력서의 착각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 같은 '글'로 자기 자신이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 세상을 책과 글로만 온전히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매 일반이다. 누구라도 자기 집에 들어와 같이 동고동락하는 사람이 들어 오는데, 말마따나 저기서 한 사람의 인생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고, 그게 사실이라면 제일 먼저 들춰 보는 곳이 그 사람의 SNS일 것이다.



'무대 자아', 누구를 위한?

'실재 자아'가 존재하는가 하는 논의와는 별개로 적어도 SNS는 '무대 자아' 표출의 장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쳤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이 이미지와 스토리로 펼쳐지는 곳이다. 그 풍성한 자아의 성찬, 그 역대기와 캐릭터의 파편과 단면들, 취향과 미래의 소망이 펼쳐지는 곳. SNS는 사실상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이 드러난 곳이다. 기업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인재를 알기 위해 SNS를 엿보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고, 사실상 '엿보는' 것도 아니다. 비공개 계정이 아닌 이상 그곳은 개인을 들여다보는 '쇼윈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셀프디스?

자신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스스로 자신의 단점을 적어 놓고 자폭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SNS가 특히 구직하는 사람에게 본의 아니게 잠재적, 실재적 이력서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는 SNS로 원치 않는 자해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정적인 포스팅, 과격한 언사들이 구직자의 발목을 잡는다. 특히 전 직장에 대한 비난은 명확한 논리와 명분이 없는 경우에는, 그리고 감정적일수록 1차 배제 대상이 된다. (특히 사안에 대한 정제 되지 않은 감정적 표현은 메시지에 동의하는가와 별개로 그 과격성에 경계심을 갖게 한다)   





너 보라고 입은 거 아니거든?

보기에 이쁘다고 입은 미니스커트도,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쳐다보면 기분이 더러운 게 인지상정이다. 

우리의 모든 언행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면서도 보라고 하는 것인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SNS도 마찬가지, 꼭 당신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사람이 꼭 당신에 대해 알아야 할 순간에 볼 가능성이 있다면, 내 타임라인이라고 해서 밤에 술취해 휘갈긴 소리같은 포스팅을 그대로 두는 것은 백해 무익이다. 내 방에서 내가 무슨 짓을 못하냐고 말하고 싶다면 다시한번 말하고 싶다. 

니방인 건 맞다고, 그런데 그 방은 유리방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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