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당신과 당신의 회사를 규정하는가
8년 전, 좋은 메시지가 있는 단편(단열 영상)을 자원봉사 아마추어들 스텝, 배우들과 함께 힘을 합쳐 페북에 올리던 시절, 조연출로 일하던 스태프가 나에게 울상이 되어서 왔다. 업무상 지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런 영상에 대해 자랑했더니, ‘그런 걸 뭐 하려 하냐‘고 대놓고 핀잔을 들었다는 거다. 돈도 안 되고, 봐 주는 사람도 없는걸 아마추어끼리 모여서, 뭐 하려 하냐. 인생 낭비한다...는 이야기였겠지. 마음이 단단히 상한 얼굴로 내게 사연을 털어놓는 이유는 아마 본인도 ‘진짜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라는 의구심이 불쑥 올라와서 였으리라. 그가 내 반응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 대답은 ‘조건 없이 주는 행동이, 10년 뒤에 어떤 결과를 낳는지 두고 보라고 해요’였다. 뭐 말이 고상해서 그렇지 ‘두고 보자’였다. 오기다. 이 악물고, 선한 오기.
그의 이름은 윤창용이다. 그렇게 나와 함께 자원봉사 영상을 하다가 상업 영상의 세계에 나보다 먼저 뛰어 들어서 독립에 성공하고, 이제는 장가가서 가족을 잘 부양하며 프로덕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멋진 프로가 되어서 말이다. 더욱이 흐뭇한 것은 1년 전쯤, 그가 ‘조건 없이 세상에 주는 영상'을 만들던 일이 그리워서 다시 그 일을 개인적으로 시작했다고 찾아온 것이다. 열심히 돈도 벌고 가족도 이뤘으나 ‘보람‘이 그리웠다고, 남은 인생엔 그런 활동을 꼭 지속 시키고 싶다고 했다. 병충해에 위태위태하던 8년 전 새싹(?)이 확실한 생존 기술뿐 아니라 ‘철학‘으로 가지 무장하고 건장히 익은 벼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런 걸 보람이 아니면 다른 무엇이 보람일까. 그는 그 후 업무적으로도 사다리필름과 함께 지금까지 무수한 작품을 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잠시 쉬고 있지만 16회를 이어가던 ‘홍보 격차 해소 세미나‘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돈도 안 받고 이런 걸 왜 하냐?’는 의문, 냉소, 무시... 등등. 하지만 아실랑가? 내가 고등학교 때 입시 공부를 위한 보충 학습을 거부하고 하교 후 바로 외국인 학교 근방으로 뛰어가 미국인들에게 날마다 말을 걸며 영어를 익힐 때에도 똑같이 들었던 말이 바로 ‘그런 걸 왜 하냐’ 였다는 사실을. 이상한(?) 결과를 내는 일은 반드시 이상한 행동이 그 뿌리에 있다. 모두가 눈앞에 이익만 보고 그쪽으로 향할 때 자신만의 정열을 향해 (그것이 공부가 되었던, 봉사가 되었던, 취미가 되었던) 뛰었던 그 시간만큼 인생은 오롯이 나에게 그것을 돌려준다는 사실을 좀 일찍 알았던 것일까? ‘비웃음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꿈이 아니다’라는 믿음은 일찍부터 내 안에 회심의 미소를 띤 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무슨 자서전 같은 느끼한 멘트는 잠시만 참아 주시라) 그것이 내가 인생의 데쓰 벨리를 비틀거리며 통과할 때마다 나에게 살 힘을 부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또 그것을 청년들에게 심어 주는 것을 내 사명 삼아 지난 20년을 조용히 노력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난 윤창용 군의 장성함이 눈물겹다. 참고로 ‘홍보 격차 해소 세미나‘는 사다리필름에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돌려주었다. 어느 날, 기자가 조용히 취재를 해 갔는데 기사 조회가 200만이 넘었고, 그 후 사다리는 광고 없이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다.
은퇴하고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말은 조폭도 한다. 돈 벌면 가난한 사람 돕고 싶은 마음은 아파트 정문의 폭탄머리 노숙자분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이다. 단언컨대,'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돈 벌어도 아무것도 안 할 사람‘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나 돈 벌었다‘고 자족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제1의 재벌은 왜 세계 제1이 되려고 저렇게 사람들을 갈아 넣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런데 중요한 지점은,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요즘 사람은 품질과 가성비는 관심이 없다. 그건 중국제에도, 과테말라제에도 다 기본으로 있으니까. 그래서 ‘없는 것‘을 찾는 데, 그게 ‘지성, 감성, 도덕성, 사회성, 예술성, 인격성‘같은 거다 (필립 코틀러) 여기서 잠깐, 응? 사람들이 기업에게 저런 걸 요구한다고? 저거 어디서 많이 듣던 조건 아닌가? 그렇다. 저건 사람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미덕이다. (음... 특히 배우자에게!) 자알 생각해 보자. 이 시대의 진정한 챔피언인 기업들을. (탐욕의 공룡들 말고,오뚜기 같은...) 장사하면서 존경까지 받는 기업들 말이다. 진정성이 마케팅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그런 시대가 왔다. 그리고 개인과 기업의 진정성은 그들이 그런 이상을 위해서 돈! 을 얼마나 손해! 보는지로만 드러 난다. ‘쓸 데 없는 짓‘에 말이다.
‘쓸 데 없는 짓’이 당신과 당신의 기업을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