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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리필름 Dec 07. 2020

"쓸 데 없는 짓의 쓸모"

무엇이 당신과 당신의 회사를 규정하는가



‘쓸 데 없는 짓‘이란


8년 전, 좋은 메시지가 있는 단편(단열 영상)을 자원봉사 아마추어들 스텝, 배우들과 함께 힘을 합쳐 페북에 올리던 시절, 조연출로 일하던 스태프가 나에게 울상이 되어서 왔다. 업무상 지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런 영상에 대해 자랑했더니, ‘그런 걸 뭐 하려 하냐‘고 대놓고 핀잔을 들었다는 거다. 돈도 안 되고, 봐 주는 사람도 없는걸 아마추어끼리 모여서, 뭐 하려 하냐. 인생 낭비한다...는 이야기였겠지. 마음이 단단히 상한 얼굴로 내게 사연을 털어놓는 이유는 아마 본인도 ‘진짜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라는 의구심이 불쑥 올라와서 였으리라. 그가 내 반응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 대답은 ‘조건 없이 주는 행동이, 10년 뒤에 어떤 결과를 낳는지 두고 보라고 해요’였다. 뭐 말이 고상해서 그렇지 ‘두고 보자’였다. 오기다. 이 악물고, 선한 오기.







크레용 프로덕션 대표님


그의 이름은 윤창용이다. 그렇게 나와 함께 자원봉사 영상을 하다가 상업 영상의 세계에 나보다 먼저 뛰어 들어서 독립에 성공하고, 이제는 장가가서 가족을 잘 부양하며 프로덕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멋진 프로가 되어서 말이다. 더욱이 흐뭇한 것은 1년 전쯤, 그가 ‘조건 없이 세상에 주는 영상'을 만들던 일이 그리워서 다시 그 일을 개인적으로 시작했다고 찾아온 것이다. 열심히 돈도 벌고 가족도 이뤘으나 ‘보람‘이 그리웠다고, 남은 인생엔 그런 활동을 꼭 지속 시키고 싶다고 했다. 병충해에 위태위태하던 8년 전 새싹(?)이 확실한 생존 기술뿐 아니라 ‘철학‘으로 가지 무장하고 건장히 익은 벼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런 걸 보람이 아니면 다른 무엇이 보람일까. 그는 그 후 업무적으로도 사다리필름과 함께 지금까지 무수한 작품을 내고 있는 중이다.







홍보 해소 격차 세미나의 운명


지금은 코로나로 잠시 쉬고 있지만 16회를 이어가던 ‘홍보 격차 해소 세미나‘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돈도 안 받고 이런 걸 왜 하냐?’는 의문, 냉소, 무시... 등등. 하지만 아실랑가? 내가 고등학교 때 입시 공부를 위한 보충 학습을 거부하고 하교 후 바로 외국인 학교 근방으로 뛰어가 미국인들에게 날마다 말을 걸며 영어를 익힐 때에도 똑같이 들었던 말이 바로 ‘그런 걸 왜 하냐’ 였다는 사실을. 이상한(?) 결과를 내는 일은 반드시 이상한 행동이 그 뿌리에 있다. 모두가 눈앞에 이익만 보고 그쪽으로 향할 때 자신만의 정열을 향해 (그것이 공부가 되었던, 봉사가 되었던, 취미가 되었던) 뛰었던 그 시간만큼 인생은 오롯이 나에게 그것을 돌려준다는 사실을 좀 일찍 알았던 것일까? ‘비웃음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꿈이 아니다’라는 믿음은 일찍부터 내 안에 회심의 미소를 띤 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무슨 자서전 같은 느끼한 멘트는 잠시만 참아 주시라) 그것이 내가 인생의 데쓰 벨리를 비틀거리며 통과할 때마다 나에게 살 힘을 부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또 그것을 청년들에게 심어 주는 것을 내 사명 삼아 지난 20년을 조용히 노력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난 윤창용 군의 장성함이 눈물겹다. 참고로 ‘홍보 격차 해소 세미나‘는 사다리필름에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돌려주었다. 어느 날, 기자가 조용히 취재를 해 갔는데 기사 조회가 200만이 넘었고, 그 후 사다리는 광고 없이 지금까지 먹고살고 있다.








차카게 살자?


은퇴하고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말은 조폭도 한다. 돈 벌면 가난한 사람 돕고 싶은 마음은 아파트 정문의 폭탄머리 노숙자분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이다. 단언컨대,'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돈 벌어도 아무것도 안 할 사람‘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나 돈 벌었다‘고 자족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 제1의 재벌은 왜 세계 제1이 되려고 저렇게 사람들을 갈아 넣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런데 중요한 지점은,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요즘 사람은 품질과 가성비는 관심이 없다. 그건 중국제에도, 과테말라제에도 다 기본으로 있으니까. 그래서 ‘없는 것‘을 찾는 데, 그게 ‘지성, 감성, 도덕성, 사회성, 예술성, 인격성‘같은 거다 (필립 코틀러) 여기서 잠깐, 응? 사람들이 기업에게 저런 걸 요구한다고? 저거 어디서 많이 듣던 조건 아닌가? 그렇다. 저건 사람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미덕이다. (음... 특히 배우자에게!) 자알 생각해 보자. 이 시대의 진정한 챔피언인 기업들을. (탐욕의 공룡들 말고,오뚜기 같은...) 장사하면서 존경까지 받는 기업들 말이다. 진정성이 마케팅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그런 시대가 왔다. 그리고 개인과 기업의 진정성은 그들이 그런 이상을 위해서 돈! 을 얼마나 손해! 보는지로만 드러 난다. ‘쓸 데 없는 짓‘에 말이다. 





‘쓸 데 없는 짓’이 당신과 당신의 기업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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