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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리필름 Jun 12. 2019

낄낄빠빠

중년과 청년이 조화롭게 일하는 법

군계일옹 

난 우리 사무실의 유일한 중(노)년이다. 나이 차이가 25년에서 많게는 30년이나 나는 직원들과 일을 하다 보면 어른을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젊은 사람 쪽에선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도 괜히 제 발 저린 노인정 출신이 몸 둘 바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회식 자리에서도 괜히 구석에 앉게 되고 (나 신경 써서 못 떠들까 봐서) 실무에 대해 코멘트를 할 때도 하고 싶은 말을 움찔움찔 참게 된다. 그래도 우리 직원들이야 뭐 내가 얼마나 철 안든 사람인지 대체로 파악하고 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일한다. 문제는 거래처다. 우리 사무실 '군계일옹'은 우리 사정이지만, 20~30대 클라이언트를 '모신' 테이블에서 혼자 늙수그레한 것에 신경이 안 쓰인다면 그건 완전한 구라다. (이 업계는 갑이라 해도 나이대가 다 그렇다) 





동그란 눈이 끄덕일 때 

'아니, 대표님께서 직접 오셨...?' 하는 소리를 매일 여러 번씩 듣는 내가 '아니, 근처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온 김에 들렀….'이라고 대답하기는 뭔가 군색하다. 뭐 밖으로 나다닐 영업 사원이 달랑 나와 공동창업자인 횰피디 밖에 없는 입장인데 (요즘 병아리 사원이 새로 들어오기는 했다) 솔직히 '회사가 작아서 제가 다 뜁니다'라고 하기는 더 군색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귀착한 대답이 '중요한 거래처는 제가 직접 오거든요…. (빵긋)'이다. 우리에 대한 믿음을 처음부터 시험대에 올리는 것도 잠시, 이야기는 바로 어떻게 광고하고, 어떻게 유튜브 채널을 세팅하고, 어떻게 브랜딩 할 것인가 하는 쪽으로 이어지고 클라이언트 회사의 깊은 속사정까지 다 듣고 나서 상대방이 기업으로서 정체성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쓸 만한 전향적 대안을 제시할 때쯤 되면 (모든 회사는 크든 작든 다 과정상 정체성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처음의 그 동그랗게 떴던 눈은(겉으로 드러내진 않았겠지만) 서서히 끄덕임으로 전환되고, 실무 이야기를 꺼내려는 데 중노인이 와서 턱 하니 버티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담도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다. 매개체는 역시 '인간에 대한 이해'다. 

그저 중·노년이라 가질 수 있는 복 중 하나인 그것, 

열두번쯤 덧칠해 멋있게 말하면 ‘경륜’쯤 되겠다. 




낄낄빠빠 

큰 틀의 브랜딩 전략이 잡히고 나면, 슬슬 빠져야 한다. 디테일은 백번 생각해도 청년이 발군이다. 내가 젊은 척한다고 젊나. 젊은이에게 팔 것은 젊은이가 그 디테일을 그려가야 한다. 모든 것이 다 정해져서 안정된 느낌 폴폴 풍기는 세대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배우자로부터 확실한 커리어, 더 나아가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확실히 결정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카오스 덩어리인 젊은이들이 복수로 부딪치고 교차할 때 생기는 그 스파크와 창조의 장을 그들만이 고스란히 누릴 수 있게 잠시 문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들만이 만들 수 있는 원시 우주의 화학 쇼를 흐뭇하게 관람한다. 낄 땐 껴야 하고 빠질 땐 빠져야 한다. 중년과 청년이 함께 일하는 사다리필름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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