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으로 향하는 발걸음. 겨울의 차가운 바람과 태양을 가린 회색 구름들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드는 것 같다.
겨울바람에 손은 주머니 속 깊숙이 들어갔고, 내 몸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위에 순응하기 위해 움츠러든 채 걷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내 안경 렌즈는 차가운 얼음이 되어 모든 세상을 겨울 속 회색 그림으로 보여주곤 하는데, 저 멀리서 20대 커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며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회색 바탕에 놓인 밝고 기운찬 봄의 색깔처럼 보였다. 20대 커플의 사랑스러운 행동과 얼굴에 피어난 웃음, 그리고 대화들. 그들의 목소리가 직접 들리지는 않았지만, 표정과 행동만으로도 무슨 말을 나누는지 다 들리는 듯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봄의 색깔은 내게 따스함을 전해주었고, 기억과 추억의 꽃병 속에서 시들어 있던 봄꽃을 다시 한번 환하게 피워내고 있었다.
환하게 피어난 봄꽃. 그 꽃은 아름답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아름다운 자태로 나를 반기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꽃이 어둠이 되어 다가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꽃들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저 커플의 행동과 표정은 잠시나마 나를 과거의 추억 속으로 데려갔고, 어느 순간 부러움의 대상은 '돈'이 아닌 '시간'과 '젊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과 젊음이라는 존재를 부러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러움의 대상이 변해가고 있었다.
다시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20대 때 지나던 그 길의 건물들은 그대로였지만, 가게의 간판과 사람들의 옷차림, 그리고 이 거리의 분위기는 그때와 다름을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길은 내게 말한다. 지금까지 내디딘 발걸음은 더 이상 현지인의 것이 아닌, 이방인의 발걸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