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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현 Apr 06. 2024

지혜의 사소한 인턴십

흔히 <인턴십>이라고 하면,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들이 기업에 정규채용되기 위해 거치는 수습과정 또는 <스펙형성 과정>을 떠올린다. 알만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은 공식적으로 인턴십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다른 환경과 상황의 청년들이, 전혀 다른 목적으로 하게 되는 <인턴십>도 있다.



삶의 변화를 위한 인턴십


1년 전 찾아왔던 지혜(가명, 23세 여성)는, 밤마다 PC방에서 일해 생활하는 생계형 알바(아르바이트) 청년이었다. 가족 없이 혼자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1인 가구 청년의 삶이기에, 지혜에게 그곳은 ‘알바’라기 보다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지혜는 10대 후반부터 몇년째, 늦은 오후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불안정한 알바를 겨우 이어갈 뿐 미래를 준비하고 지속가능한 직업을 구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새로운 걸 배워보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고 해도 알겠다고 할 뿐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별다른 변화 없는 진로상담이 1년째 이어지면서, 뭐라도 시도해보도록 잠깐이라도 사무직 일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인턴십 기간동안 지혜에게 지급할 인턴십활동비 예산을 먼저 확보했다. 기업에서 급여를 부담하려 하지 않을테고, 인턴십 기간동안 돈을 벌지 않을수도 없으니 우리 기관에서 인턴십급여를 지원해야 했다.

무엇보다 인턴십 프로그램을 맡아줄 ‘착한 회사’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기초적인 문서작성 경험도 없는 청년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경험의 기회를 주고 조언을 해주는 순수한 회사를 찾아야 했다.

여러 곳에서 거절당한 끝에, 사회적기업 A에서 겨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혜가 한 달을 잘 견뎌낼까?’하는 고민도 작지 않았다. 매일 오후 늦게까지 잠들어 있다가, 겨우 일어나 PC방 알바만 반복해 온 지혜가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출근할 수는 있을까.

걱정했던 대로 첫 2주 동안, 지혜는 거의 매일 지각을 했다. 한 달만 예정된 인턴십 때문에 기존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어서, 인턴십 퇴근 후에는 PC방에서 밤11시까지 야간 알바도 지속해야 했기에 지각이 반복되고 무단결근이 발생했다. 지혜의 노력과 의지가 없으니 인턴십을 중단하자는 회사를 설득해 겨우겨우 인턴십을 이어갔다.



사실 지혜는 인턴십을 잘 하기 위해 많은 것을 견디고 노력하고 있었다. 
밤늦게 퇴근하는 알바로 인한 피로감,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낯선 생활패턴, 회사에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불안감. 이런 문제들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지혜의 커다란 노력이었다.

어떻게든 한 달은 버텨보도록 하자는 마음에,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지혜 출근시키기 프로젝트.’ 담당 선생님을 붙여서 매일 아침마다 지혜를 깨워 출근을 도왔다. 하지만 지혜가 아예 깊게 잠들어 버리는 날에는 그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지혜가 갑자기 스스로 일어나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 일주일’을 계기로 지혜는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믿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변화하고 싶은 마음, 노력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 인턴십 중단을 바라던 회사는, 생활을 개선하고 노력하는 지혜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는지 인턴십을 4주 더 연장하자고 했다. 회사에서 지혜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말수가 늘어나고 스스로 일을 찾아 하는 모습도 보였다. 회사 직원들이 지혜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지혜는 회사에서 웃기 시작했다.


지혜는 왜, 어떻게 변화했을까. ‘기대하는 사람들’과 ‘소속감’이 그것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아침마다 시간 맞춰 출근하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면서, 지혜는 자신의 익숙했던 ‘실패의 패턴’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회사가 지혜에게 보여주었을 때 지혜는 언제 그만둬야 할 지 모르는 그 동안의 알바노동과는 다른 ‘소속감’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것을 처음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회사는 지혜에게 한 번 더 손을 내밀었다. 두 달 간의 인턴십 뒤에, 사무보조원으로 계속 일할 기회를 주었다. 지혜는 두 달 만에, 아침 출근도 힘겨워하는 지각생 인턴에서 사무보조 직원으로 변화했다.


‘일-노동’이란 단순한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실현해가는 과정일 수 있고, 소속감과 사회관계를 형성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떤 일-기업들에서는 이런 일의 가치들이 철저히 배제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과 ‘가치’를 중하게 여기는 회사도, 사람도 있다. 지금도 이런 따뜻한 회사들이, 이런 일경험들이, 흔들리는 청년들의 삶을 지탱하고 성장시키고 있다. 사회적기업 A에서 지혜는 또 다른 지각생 인턴들의 마음을 깨우고 변화를 이끄는 삶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이런 따뜻한 회사들이, 이런 일경험들이, 흔들리는 청년들의 삶을 지탱하고 성장시키고 있다. 사회적기업 A에서 지혜는 또 다른 지각생 인턴들의 마음을 깨우고 변화를 이끄는 삶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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