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은 위험해>를 위한 빼고 더하기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상 커플, 가상 가족의 모습에서 '리얼리티'를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진짜 커플, 진짜 가족이다. 바야흐로 관찰 예능의 시대. 더 리얼한 재미를 전달하기 위해 설정은 최소화된다. 제작진도, 시청자도 바라보기만 한다. 상황을 던져줄 뿐 그 다음을 알려주진 않는다. 다큐멘터리가 예능으로 넘어온 걸까.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우리는 공감하고, 위로받고, 재미를 느낀다.
이번엔 집돌이 관찰하기
여기 또 하나의 관찰 예능이 있다. '집돌이들의 공동 휴가'를 콘셉트로 하는 <이불 밖은 위험해>. 집돌이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쉬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최근, 우리는 보는 것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낀다. 브이 로그, 먹방이 대세인 이유다. 집돌이들이 쉬는 모습을 바라보며 일상을 관찰하는 재미, 휴가에 대한 대리만족을 기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차별성도 있다. 많은 예능이 해외로 나가 버스킹을 하고, 음식점을 차리고, 오지를 탐방하고 있다. 모두가 '밖으로!'를 외칠 때, 집에만 있으려는 예능이라니! 같은 집순이로서 매우 흥미롭고 반갑지 아니할 수가.
그래서 파일럿인 <이불 밖은 위험해>를 봤다. 강다니엘이 젤리 먹는 모습도 귀엽고, 시우민이 VR 게임에 빠져있는 것도 귀여웠다. 이런 귀여운 모습을 더 볼 수 있다면 정규편성도 환영하는 마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파일럿임에도 화제성이 대단했다. 현재 정규로 편성되어 7화까지 방영하였다. (글을 쓸 때는 7화까지 였는데, 탈고하는 날 8화가 방영되었다!)
이게 바로 파일럿과 정규 프로그램의 차이인 걸까
기다리던 시우민이 6회 만에 방송에 나왔다. 시우민은 귀여웠고, 내용은 심심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다. 그래서 '집돌이들의 공동 휴가'를 콘셉트로 잡은 거였구먼. 처음에는 '집돌이들이 휴가를 간다고? 밖에 나간다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여기서 프로그램의 많은 고민이 느껴졌다. 왜 많은 프로그램이 결국 해외로 나갈까. 텍스트가 없어도 그 배경 자체가 그림인데. 매번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니 다양한 장면이 만들어진다. <이불 밖>도 지루한 패턴을 극복하기 위해 잠깐 이불 밖으로의 외출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다. '집돌이'로서 집 밖에 나가길 꺼려하는 점과 '공동 휴가'를 가는 점. 둘 사이의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모순처럼 보일 저 둘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무엇을 빼고 더하면 좋을까?
집돌이들을 위한 빼고 더하기
너와 나의 연결고리, 우리 모두 같은 이름!?
<삼시 세 끼>(tvN)도 보면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아침 먹고 낚시 가고, 점심 먹고 낮잠 자고, 저녁 먹고 잠에 든다. <이불 밖>과 상황은 비슷한 것 같은데도 계속 볼 수 있는 이유는 캐릭터 때문이다. <삼시 세 끼>에서는 차승원-엄마, 유해진-아버지라는 캐릭터가 뚜렷이 잡혀있다.
<이불 밖>은 여행지마다 출연자 구성이 바뀌기 때문에 관계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를 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 어느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또 그 인물이 사라져 있다. 물론 나름의 고정 멤버들이 있다. 고정멤버가 있고 그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방식이라 시간이 지나면 고정 멤버들 사이의 관계가 생길진 모르겠다. 문제는 새로운 멤버의 출연과 그게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다.
캐릭터를 뽑아낼 시간이 부족하다면 아예 공통점이 있는 출연자들로 출연시키는 건 어떨까. 최근 7화는 세 명의 김민석과 송민호가 출연했는데, '세 명의 김민석'이 동시 출연한다는 설정이 좋았다.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부딪히는 신이 많다 보니 관계를 통한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마구 쏟아졌다. 다른 회차에 비해 정말 '한 에피소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무엇을 느꼈느냐지
<이불 밖>은 휴가 장소에 따라 에피소드를 구분한다. 한 에피소드 안에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시간 순서로 나열되어 있다. 아쉬운 건, 하나를 느긋하게 보여주는 것 없이 여러 활동을 단편적으로 빠르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장면 전환이 빠르다. 시청자는 시간에 따라 바뀌는 장면을 숨 가쁘게 따라가야 한다.
이는 하루 동안 집돌이들이 뭘 하는지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래서 무엇을 느꼈는가'이다. 엄청난 교훈을 얻어가야 한다는 건 아니다. 쉬는 프로그램이니 때론 쉬는 것 자체만으로 하루의 기쁨이 될 수 있다. 그래도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려면 함께 깨닫는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효리네 민박 2>(jtbc)를 보면, 하루하루 새로운 민박객들이 찾아오고 비슷한 명소를 방문한다. 그런데 집중하는 것은 민박객들의 스토리이다.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대화하는 장면이 많이 담긴다. 한 번은 아픈 민박객이 제주도까지 와서 제대로 놀지 못하자, '쉬는 것도 노는 것'이라고 이효리가 얘기한다. 공감이 많이 가더라. 자는 것도 쉬는 것, 꼭 무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불 밖>에서도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그것보다 개인적인 활동에 많이 집중하는 느낌이다. 오늘 하루 이런 활동을 하고 어땠는지 얘기하는 부분을 더 주목해준다면 어떨까. 속마음 인터뷰에서 할 얘기를 멤버들이 함께 나눈다면 거기서 나오는 소소한 대화들에 공감하는 맛이 생길 것 같다.
자막, 이 컷에는 너로 정했다!
말이 없는 예능일수록 대사가 중요하다. 그래서 먹고 자고 유유자적하는 그림을 자막으로 풍성하게 만들어 보겠다는 노력이 보인다. 파스텔 색깔의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폰트도 집돌이들의 일상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정리가 필요하다. 안 그래도 장면 전환이 많은데 자막도 다양하니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막은 대사를 인용하거나, 연출자 의도를 보여주거나, 상황을 설명하거나, 의성/의태어를 보여주는 등 다양한 기능이 있다. <이불 밖> 속 자막은 기능에 의해 디자인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마치 한 장면에 어울리는 색과 폰트를 모두 시도해보는 것 같다. 자막 위치 (위치가 하단 중간에 있다가, 하단 오른쪽에 있다가 정신이 없다.)를 상황이나 기능에 따라 통일하면 어떨까. 상황 요약을 위한 자막을 모두 오른쪽으로 밀어버리고, 연출자의 해석과 대사의 인용은 하단 가운데로 정렬하든지 정리가 필요하다.
가끔 자막이 너무 커서 몰입에 방해가 될 때도 있었다. 카드 뉴스 같은 정적인 콘텐츠라면 큰 자막이 오히려 집중도와 전달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영상 콘텐츠는 콘텐츠 자체가 움직이고 있으므로 자막 크기가 움직일 필요는 없다. 자막 크기를 조금만 줄이면 그림도 자막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그래서 집순이 버전, 언제 나오나요?
볼 때마다 '집순이' 버전은 언제 나올지 궁금하다. 여성 시청자가 많은 만큼 집순이들의 모습이 시청자의 공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은 저렇게 쉬는구나' 또는 '다른 사람도 나와 같구나'. 여기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흥미가 발생한다.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 한혜진이 인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으면서도 우리와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모습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관찰 예능이 소소한 재미를 주면서도 계속 시청할 수 있는 데에는 때론 유익함이 한 몫 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참신한 취미활동을 알아가는 재미도 얻을 것이다. 집순이들이 네일 하는 모습, 요리하는 모습, 수다 떠는 모습을 통한 공감과 재미. 기대해볼 만하다.
다양하게 시도해보았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많다. 재미와 감동 때론 유익함까지. 집돌이라는 콘셉트는 버리기 너무 아까운 주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 안에, 심지어 방 안에 자발적으로 있겠다는 요즘. 그 재미를 예능에서도 알아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