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니크 관광포인트 3&4:오르락내리락 구시가와 오르락오르락 요새
시베니크 숙소 체크인 후,
주인이 지도를 펼치고 건물을 짚어가며,
어디 어디 가라고 설명하고 있었는데,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나타나 덧붙인 말이
“여긴 계단 오르락내리락 하면 다 봐요.(Možete sve vidjeti ako hodate stepenicama).”
였다.
언뜻 지금까지의 설명을 무효화하는 말처럼 들려,
순간 난 웃고 말았는데,
생각해보니,
그의 말에서 중요한 건 "다 봐요"가 아니라
“계단”이었고,
정말 1박 2일간
난 여러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했다.
그러고보면 시베니크가
언뜻 비슷해보이는
다른 달마티아 도시들과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오르락내리락 해야 다 볼 수 있는 구시가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에도 계단은 있지만,
그래도 중앙의 낮은 평지에 커다란 광장이 있고,
낮은 언덕을 가득 채운 집들로 오르는 계단이
그 양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데 반해,
시베니크 구시가는 광장들도
낮은 언덕 위 구시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갈 수 있고,
가장 큰 광장도 구시가 중심이 아니라,
구시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즉, 중심에서 사방으로 확장되는 구조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확장되는 구조다.
언덕 위에 흩어져 있는
시베니크 구시가의 계단 가장 밑에는
해변 산책로가 있고,
언덕 꼭대기에는 외적의 침략에 대비해서 만든
세 개의 요새가 있다.
시베니크 구시가는 다음과 같은 모양이다.
지도 북쪽으로 갈려면 계단을 한참 올라야한다.
인터넷에 검색되는 지도 중에는 젤 나은
위 지도의 번호가 너무 작아서
좀 더 큰 글씨로 번호를 따로 붙인
지도를 덧붙인다.
이 번호를 따라가며
시베니크 구시가를 둘러보겠다.
시베니크 버스터미널 [위 지도 0번]에서
서쪽으로 2-3분 걸어가면,
바다 건너 시베니크 구시가가 눈 앞에 나타난다.
스플리트(Split), 자다르(Zadar)랑 비교하면,
정말 건물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바닷가엔 이국적인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페타르 크레시미르 4세는
11세기 크로아티아 왕으로
자다르의 성 마리아 베네딕트 수도원에
보내는 서류에서 시베니크를 처음 언급해서,
이 도시의 설립자로 취급되고,
시베니크는
크레시미르의 도시(Krešimirov grad)라 불린다.
시베니크 구시가 동남쪽 입구에
그의 동상이 서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는 시베니크뿐 아니라 많은 달마티아 도시들을
크로아티아 왕국의 영토에 편입시키고,
대륙의 “슬라보니아(Slavonia)” 지역을
크로아티아의 일부로 만드는 등,
크로아티아 확장에 크게 공헌한,
크로아티아 왕국 최전성기의 왕이다.
페타르 크레시미르 4세 동상 뒤로
자그마한 "로베르트 비사이니 공원"이 있다.
로베르트 비사이니는 19세기 유명 식물학자로
시베니크 출신인데,
19세기에 구시가 성벽을 제거한 자리에
그의 이름을 딴 공원을 만들었다.
시베니크엔 총 24개의 성당이 있고,
그 중 12개가
원래의 종교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단다.
그러한 12개 성당 중 하나인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14세기 후반 건설된 고딕양식 성당이다.
성당 옆엔 수도원과 박물관도 있는데,
1375년 경 라틴어로 쓰여진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적
“시베니크 기도문(Šibenska molitva)”이
이 성당에 보관되어 있고,
17세기 만들어진 성당 안 오르간도
크로아티아인들 사이에선 매우 유명한,
달마티아 지방에서
가장 인기있는 성당 중 하나란다.
마침 일요일을 끼고 시베니크에 간 나는
일욜 아침 대성당 미사에 갔다가 오는 길에
이 성당에 잠깐 들렀는데,
크기는 대성당보다 작고,
내부장식은 덜 화려했지만,
미사 분위기는 꽤 좋았다.
구시가의 동북쪽 성벽 자리에 19세기 만들어진
로베르트 비사이니 공원 동쪽에 있는
“성벽 밖 성모 성당”은
원래 공동묘지였던 곳에
18세기 중반 세운 성당이며,
19세기 초까지도 그 주변은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현재 그 주변 지역은
낡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선 흔한 시가가 되었다.
성벽 밖 성모 성당 서쪽에 있는
“유라이 쉬쥬고리치” 시립 도서관은
1922년 개관한 오래된 도서관이지만,
2005년 현재의 현대적 건물로 이관해서
생긴지 얼마 안 된 새 도서관처럼 보인다.
"유라이 쉬쥬고리치"는
시베니크 출신의 15-16세기 시인으로,
가장 오래된 크로아티아 시집의 저자다.
새 도서관 건물을 이곳에 건설하면서
아마도 원래 있던 성벽 혹은 건물 일부분을
그대로 살린 것 같은데,
그래서 매우 특별한 건물이 되었다.
시베니크 국립극장은
국가나 시의 재정으로 지은 게 아니라,
시민들의 재정적 후원으로 1870년 건설했고,
극장 천장에 후원자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단다.
외부는 장식이 절제된 고딕양식에,
내부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은 지역답게
베니스 Teatro Fenice 극장을 모델로 삼았다 한다.
국립극장에서 북쪽으로 가면
요새로 가는 길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면 구시가의
자그레브 길(Zagrebačka ul.)이 나온다.
17세기 건설된 “성령 성당”은
좁은 골목 안 아주 작은 광장에 있는
아담한 성당이다.
성당 전면의 커다란 바로크 양식 로제트(rozette)가
인상적이다.
"새 성당"은 좁은 골목에 있는 낡고 높은 성당이다.
15-16세기에 건설된 르네상스 건축이라고 하는데,
좁은 골목에 있는데다가
따로 관리되지 않아
다른 건물들 사이에서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건축 당시엔 가장 새 성당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사실 그런 작명법이라면,
모든 건물은 "새 건물"이 되어야 할거다.
그 이후 지어진 성당이 있는데다가,
더 오래된 성당들보다도 더 낡아 보여서,
외관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고
지금은 새 성당과 거리가 멀다.
골목이 좁아서 성당을 찍기 어려웠다.
그 골목은 이렇게 생겼다.
성 요한 성당은
15세기 “성삼위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건축된
고딕-르네상스 양식 성당이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과 천사 장식,
(이걸 찍은 줄 알았는데 없다)
창문의 양 장식이
르네상스 건축 요소로 아기자기하다.
종탑엔 원래 지붕이 있었는데,
19세기 지진 때 떨어졌단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인
성 크리소고노 성당은
시베니크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당이 아닌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은
최근 100여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2007년 재정비해서 “중세식 정원”이라는 컨셉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입구엔 카페가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아주 작고 소박한 분수가 있고
그 주변에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심어져 있는
아주 작은 정원이다.
“중세 정원”이 뭔가 싶었다가
특별한 걸 못 발견한 난
그냥 쓱 둘러보고 금방 나왔는데,
내 친구 라우라는
여기가 시베니크에서 젤 좋았단다.
여기를 “중세 수도원 정원”이라고 부르는 건,
다양한 허브, 약초와 많은 식물이 있기 때문인데,
그런 걸 잘 모르는 나에겐
그냥 작은 정원일 뿐이었다.
성 야고보 대성당은
시베니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상징적인 건축으로,
200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성당 이름의 성 야고보는
예수의 제자였던,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다.
원래 성당이 있던 자리에
15세기 초반 새 대성당을 짓기 시작해서
100년이 지난 16세기 초반에 완공했다.
후기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건축이다.
대성당에 가기 위해선
바닷가 길에서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계단을 올라서 바라보는 바다풍경도 근사하다.
대성당이 있는 곳은
공화국 광장(Trg Republike Hrvatske)인데,
시베니크 구시가에서 가장 크고
가장 접근성이 좋은 광장이다.
광장 한 구석에는 유라이 달마티나츠(Juraj Dalmatinac) 동상이 대성당을 향해 서 있다.
"달마티아인 유라이"라는 의미의
유라이 달마티나츠는 이탈리아어로
Giorgio da Sebenico, 즉 “시베니크의 조르지오”
라 불리는 시베니크 출신 15세기 건축가다.
그는 100년동안 건설된 시베니크 대성당의
초기 건축가였는데,
목재나 철재 등 다른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이스트라(Istra) 반도와 브라치(Brač)섬의
석회암만으로
이 대성당 건물을 만들었다.
대성당의 지붕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성당을 모델로 했다.
정문 장식은 15세기 말-16세기 초
이탈리아 건축가의 르네상스 양식 작품이다.
"최후의 심판"을 형상화한 거라는데,
입구의 아치 양쪽엔 열두제자,
그리고 가장 위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렇게 서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성당문을 지나는 사람들을 구원해주는건가보다.
돔 꼭대기엔 황금색 천사가
돔 바로 아래엔
정면을 뺀 삼면에 동상이 서 있는데,
북쪽엔 성 미카엘, 즉 미카엘 대천사가
성 미카엘 요새[지도 17번]를 향해 서 있고,
성당 뒤쪽인 동쪽엔 성 야고보,
그리고 내가 미처 찍지 못한 남쪽엔
성 마르코 동상이 있다.
북쪽 입구에 있는
사자 두마리, 그리고 아담과 이브 상은
트로기르 대성당 입구에 있는 조각과
매우 비슷하다.
언뜻 같은 조각가의 작품인가 했는데,
아니다.
아무래도 13세기 작품인
트로기르 대성당의 장식을 모방한 것 같다.
당시 교회건축에선 새로운 시도보다는
전통을 따르는 방식을 택했을테니,
“모방”이라기 보다는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담과 이브 위에 있는 동상은
예수의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다.
대성당 북동쪽엔
15세기 건축 당시 시베니크 시민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워낙 규모가 크고
장식이 많은 시베니크 대성당은
이런 숨겨진 디테일을 찾는 재미가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대성당 내부를 보려면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검색해보니 25쿠나(약 4,500원),
입장시간은 9:30-18:30이라 나오는데,
입장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입장료는 또 인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난 토욜에 갔을 땐
마침 결혼식 중이라 문이 열려 있었고,
일요일 아침 미사를 보러갔을 때도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성당 내부도 매우 크고 화려한데,
그냥 눈으로만 보고,
미사 중엔 물론이고,
미사 끝나고도 사진은 찍지 않았다.
"공화국 광장"엔 대성당 이외에도
다른 흥미로운 건축이 많다.
그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공화국 광장” 북쪽벽에 지도가 붙어 있길래,
그냥 단순히 구시가 지도인 줄 알았는데,
크로아티아어를 읽어보니,
1991-199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군과의 전쟁에서
공격 당한 구시가 지역을 표시한 지도였다.
그 지도에 따르면 “공화국 광장”도
1991년 공격을 당했다.
그 “슬픈 지도”가 있는 벽 뒤쪽으로 걸어올라가면,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고,
그 뒤로 중세시대에 급수원이었다는
우물 4개가 보인다.
공화국 광장 북쪽엔 시청도 있다.
16세기 초에 건설된 르네상스 건축으로
1층의 로지아(loggia)가 특징적이다.
시청 건물을 지나 동쪽의 좁은 골목을 따라가면,
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15세기 초 고딕 건축인
성 바르바라 성당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성 니콜라 성당은 17세기에 건설된,
정말 장미모양에 가까운 로제트가 특징적인,
아담한 바로크 양식 건축이다.
구시가 남쪽의 니콜라 성당은 작은 골목에 있는데,
그 뒤쪽 현대적 건물의 바다 쪽으로 난 통로에
“54회 국제 어린이 페스티벌” 이라는 글씨와 함께
알록달록 벽그림을 만날 수 있다.
16세기 초반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은 성당인데,
20세기 이후 고딕양식으로 변화되었단다.
그래서 지금은 장식이 거의 없다.
그래도 구시가 서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이다.
원래는 수도원이 딸려 있었는데,
전쟁 중 폭격으로 무너졌다.
성 그레고리오 성당은 14세기에 건축된
로마네스크-고딕 성당으로,
유라이 달마티나츠 거리(Ulica Jurja Dalmatinca)라는
시베니크에서 가장 오래된
좁은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위에 새겨진 십자가가 아니었으면
성당인지도 몰랐을 아주 작은 건물이다.
그 옆에는
“유라이 달마티나츠”가 길 이름에 들어간 이유였을,
르네상스 양식의
유라이 달마티나츠의 집(Kuća Jurja Dalmatinca)이 있다.
현재는 성당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유라이 달마티나츠에 대한 전시 공간이라는데,
난 그 전시회는 못 봤다.
단지
어느 집에서인가 맑디 맑은 플룻 연주가 들려오고,
서쪽으로는 멀리 바다가 보이는,
이 작고 오래된,
하지만 여전히 현재성을 가진
그 길이 너무 맘에 들어서,
한참을 거기에 머물렀다.
시베니크는
뭔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 아니어도
그냥 보통의 골목도 참 좋다.
3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순교한 그리스 성녀 키리아키(Kyriaki)는
이름이 그리스어로 "일요일"이라는 의미여서,
이탈리아어에서 Dominika[도미니카],
불가리아어에서 Неделя[네델랴],
크로아티아어에서 Nediljica[네딜리차]와 같이
"일요일"이라는 단어 혹은 그 파생어로 번역한다.
근데 시베니크의 성 네딜리차 성당 홈페이지에서는
그 그리스 성녀에 대한 언급 없이,
"일요일" 혹은 가장 특별한 일요일 "부활절"로
그 이름의 기원을 설명한다.
구시가 성벽 서쪽 바깥에 자리잡은 이 성당은
15세기에 처음 역사에 등장하지만,
무너지고 다시 세우기를 여러번 반복한 후,
현재는 마치 새로 지은 성당 같아 보인다.
"성 미카엘 요새" 서쪽 성벽 바깥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인 이 성당은
바다까지 100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는데,
구시가 아래에서 "성 미카엘 요새"까지 가는 길도
최소 100개는 넘어보이는
엄청 많은 계단으로 연결된다.
시베니크 구시가 바깥에는 4개의 요새가 있다.
그 중 15세기에 건설된 성 니콜라 요새(St. Nicholas’ fortress, Tvrđava sv. Nikole)는
바다 위 작은 섬에 있는데,
1979년까지 해군의 요새로 활용되었고,
201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2012년부터는 보행로를 만들어
일반에게 개방했다.
아래 사진에서 가까이 보이는 하얀 세모 섬이
성 니콜라 요새,
멀리 보이는 붉은 점들이 시베니크 구시가다.
육지에 있는 3 요새는 서로 아주 가깝진 않아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그 중 두 요새는 일반에게 개방된다.
2018년 현재,
입장료는 일반 50쿠나(9000원),
할인 30쿠나 (약 5,000원)인데,
입장권 하나로 두 개의 요새,
즉, 성 미카엘 요새와 바로네 요새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현지인인 숙소주인이 추천한 곳이긴 한데,
난 이제 중세식 성채 많이 봐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갔는데,
예상대로 요새 자체에 특별한 점은 많지 않다.
하지만 성 미카엘 요새와 바로네 요새 모두
바다와 구시가를 아우르는
가장 멋진 시베니크 전망을 제공한다.
입장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홈페이지에서 먼저 체크하고 가는 게 좋다.
(성 미카엘 요새 홈페이지)
http://svmihovil.sibenik.hr/?stranice=information&id=11&lang=en
성 미카엘 요새의 입구는
서쪽과 동쪽에 두 개가 있는데,
두 곳 모두 한참을 올라가야 나타난다.
구시가 여기저기에 이정표가 있는데다가,
워낙 눈에 띄여서
찾기 어렵진 않을거다.
성 미카엘 요새는
1066년 문서에 시베니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존재했으며,
그 문서도 이 요새에서 서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카엘 대천사는 시베니크의 수호성인으로,
도시 곳곳에서 미카엘,
크로아티아어로는 Mihovil[미호빌]이라는 이름과
대천사의 형상을 만날 수 있다.
1066년 이전부터 존재했던
시베니크의 가장 오래된 요새로,
역사에 흐름에 따라 달마티아 지역에 등장한
다양한 외세에게 여러번 공격당했다.
그 군사적 기능을 잃고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리모델링되어
2014년 일반에 공개됐다.
(1) 성 미하일 요새 서쪽 풍경.
(2) 성 미카엘 요새 남쪽 풍경
(동영상1: 시베니크 남쪽 풍경)
(3) 성 미카엘 요새 동남쪽 풍경.
성 야고보 대성당[지도 11번]과
성 도미니코 성당[14]도 보인다.
새 성당[7]과 성 요한 성당[8]도 보인다.
(동영상 2: 시베니크 동남쪽 풍경)
(4) 성 미카엘 요새 내부엔
가장자리를 따라 길이 나 있고,
성벽엔 문장이 있고,
요새 한 가운데에는 야외 콘서트홀이 있다.
콘서트홀 아래엔 성 미카엘 요새와 관련된
멀티미디어 자료와 작은 전시실이 있다.
중세시대 대포알과 빵굽는 화덕도 있었다.
(5) 성 미카엘 요새 동쪽엔,
성 미카엘 성당(St. Michael's Church, Crkva sv. Mihovila)이 있는데,
여기는 묘지가 유명하다.
시베니크 숙소 주인이 꼭 가보라고 추천했던
장소 중 하나였는데,
여름이라 늦게까지 개방하는 요새와 달리
성당묘지는 일찍 닫는지,
출입문이 잠겨 있어서 못 들어갔다.
(6) 성 미카엘 요새의 북쪽엔
성 요한 요새[19]와 바로네 요새[18]가 보인다.
(동영상 3: 시베니크 북쪽과 동쪽)
성 미카엘 요새를 다 둘러보고
바로네 요새로 걸어 올라갔다.
매표소에서는 걸어서 8분 걸린다고 했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같다.
언덕으로 계속 올라가야해서
심리적으로 더 멀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구시가와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너무 좋아서,
좀 올라가다 서서 풍경보고,
또 좀 올라가다 서서 풍경보고 하면서 가면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다.
바로네 요새는 17세기에 건설되었다.
16세기부터 시베니크 시민들은
당시 시베니크를 지배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에
새로운 요새 건축을 요청했지만,
그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46년 오스만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사이의
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요새 건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시베니크 시민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요새를 짓기 시작해서,
성 미카엘 요새 바깥쪽에
“바로네 요새”와 “성 요한 요새”를
두달 만에 건축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두 번 시베니크를 포위했으나,
도시 내로 들어오는데는 실패하고, 그냥 철수했다.
시베니크 사람들은 그것이
요새 덕분이라고 여기며,
자신들의 요새를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바로네 요새" 안에
요새를 설명하는 글들이 다 그런 내용이다.
바로네(barone)는 영어 baron과 마찬가지로
"남작"이라는 뜻인데,
오스만 제국 군대와 대치할 때,
이 요새의 지휘관이 독일 남작이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단다.
그런데 크로아티아어로도, 독일어로도 Baron인
"남작"이,
왜 이 요새명에선
Barone[바로네]가 되나 했더니,
이탈리아어로 '남작'이 barone다.
정말 이 동네엔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에
이탈리아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
요새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리모델링 후 2016년 일반에 개방되었다.
이건 "성 미카엘 요새"에서 바라본 바로네 요새다.
이건 요새 입구다.
입구 안쪽에 매표소에 표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요새 자체는 아주 작지만
요새 안에 카페도 있고
전망도 좋으니,
구경만 하고 나오기 좀 아쉬우면
카페에 잠깐 앉아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여기는 요새 북쪽.
이제 왜 시베니크가 "숲"을 지칭하는 단어에서
나온 이름일 것이라 사람들이 추론하는지,
그 이유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외적의 침입을 막아낸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곳답게,
당시의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성 미카엘 요새에 전시된 대포알은
진짜 돌이었는데,
여긴 그냥 크기만 알려주는
좀더 가벼워보이는 구가 놓여있다.
대포알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요새 남쪽 풍경.
성 미카엘 요새보다 좀 더 북쪽으로 올라오니,
바다가 좀 더 많이 보인다.
성 미카엘 요새도 보인다.
(동영상4: 바로네 요새에서 본 시베니크 풍경)
성 요한 요새는
17세기 바로네 요새와 함께,
오스만제국의 침입에 대비해서 만들어졌다.
현재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있으며,
2019년 일반에 개방될 계획이다.
하지만 그 근처까지 가서 주위를 산책하는 건
지금도 가능하다.
바로네 요새에서 서쪽으로 난 통로로 가면
5-10분만에 도달할 수 있다.
이건 성 미카엘 요새와 구시가에서 바라본
성 요한 요새다.
시베니크 현지인의 표현대로,
다녀보니
역시나 시베니크 구시가는 둘러보기 위해
계단 오르락내리락 하는 수고를 해야한다.
하지만 그 작은 노력이 전혀 헛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시베니크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역사를 만들어낸
세 개의 요새들로 오르락오르락할 때,
그 계단 오르는 수고와 그 재미도
최고치에 오른다.
정말 힘들게 힘들게 올라간 끝에,
봐도봐도 질릴 것 같지 않은
바다와 산,
그리고 예쁜 구시가가 눈 앞에 펼쳐지며,
그 모든 노력에
몇배로, 몇 십배로, 몇 백배를 되돌려준다.
그리고 매우 공정하게도,
수고한 자만이 그걸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