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가 인기 관광지가 된 건 170여년 전이다.
크로아티아로 떠나기 전에도 그랬고,
다녀와서도 자주 느끼는 건데,
한국사람들은 대체로 크로아티아를 잘 모르고,
또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 중 내가 가장 자주 접하는
크로아티아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가
"크로아티아가 최근에 유명 여행지가 되었다"
는 생각이다.
하지만
크로아티아가 유명 관광지 된 거 최근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유명 관광지가 된 시점이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최근일 뿐이다.
직업 탓인지, 성격 탓인지
누군가 잘못 알고 있는 걸
그냥 보고 있지 못하는 난,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크로아티아 최근에 인기 관광지된 거 아니예요.
유럽 사람들은 예전부터 다 아는 관광지였어요."
라고 반박 아닌 반박을 하게 된다.
크로아티아 가기 전에는 그것에 대한 논거로
"저 "몇년 전" 러시아 있을 때도
크로아티아 관광상품 많이 봤어요."
라고 덧붙였다면,
크로아티아 다녀와서는
"100년 전에도" 사람들이 요양하러 가고 그랬어요"
로 크로아티아가 인기 관광지가 된 기간이
좀 더 길어졌다.
나도 크로아티아 가기 전엔
아름다운 바다를 가진 크로아티아가
당연히 내가 알기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의 인기 관광지였을거라 막연히 생각했지,
정확히 얼마나 오래됐는지는 몰랐다가,
100년도 전에 국제적 관광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좀 놀랐었다.
자그마치 100년전에도,
좀 더 정확히는 170여년 전에도
사람들이 요양하러 가던
그 크로아티아의 첫 휴양지가 바로
“크로아티아 관광산업의 요람(Kolijevka turizma)”
이라 불리는
오파티야(Opatija)다.
내가 크로아티아어를 배웠던 학교는
대학교 수업이랑 같이 시작하고 같이 끝나는,
두 개의 정규학기와
여름과 겨울의 인텐시브 코스로 수업을 운영하는데,
정규학기 중간에 한 번
모든 레벨의 수강생이 커다란 버스를 타고
다른 크로아티아 도시로
당일치기 소풍(ekskursija)을 간다.
그 전학기엔 자그레브 북쪽의
크라피나와 트라코슈찬에 갔다고 하는데,
2018년 봄학기(크로아티아식으론 여름학기)엔
자그레브 서쪽 이스트라 반도의
리예카(Rijeka)와 오파티아(Opatija)를 갔다.
아침 7시 15분에 학교 앞에서 집합해서
리예카와 오파티야를 둘러보고,
저녁 9시쯤 자그레브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하루에 두 도시를 간다는 게
처음엔 의아했는데,
크로아티아 제3의 도시 리예카는 항구도시고,
오파티야는 휴양지라
두 도시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 반복적이지 않고,
두 도시간 거리가 아주 가까워서,
하루에 둘러보는 게 어렵지 않다.
우리는 두 대의 대형버스에 나눠타고 갔는데,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리예카에서 오파티야까지는 버스로 20분,
비용은 편도 17-28쿠나(약 3천-5천원)이다.
수도 자그레브(Zagreb)에서 오파티야까지는
버스로 3시간 내외가 걸리고,
비용은 편도 110-120쿠나(약 2만원)다.
우리 단체여행은
버스에서 가이드와 선생님이 개략적인 설명을 하고,
버스에서 내려 중요한 관광지를 함께 방문한 후,
자유시간 2-3시간씩을 갖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오파티야엔 오후 3시쯤 도착해서
“관광업 박물관(Muzej turizma)”를 함께 둘러보고,
3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오파티야는 아드리아해 북부
이스트라(Istra)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이스트라 반도는
크로아티아 서쪽 해안 달마티아 지방과 마찬가지로
수세기동안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고,
18세기 후반부터 1차세계대전 때까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19세기초에 짧게 나폴레옹의
프랑스령 일리리아(Illyria) 지방이 되기도 했다.
1차세계대전 이후 1919년부터 1947년까지는
이탈리아의 영토이다가,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 사이에 영토 재분배가 이루어져
대부분은 유고슬라비아,
일부는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던 이스트라 지역은
1991년 크로아티아가 되었다.
opatija[오파티야]는 크로아티아어로
“수도원”이라는 의미다.
이탈리아어 Abbazia도 “수도원”이라는 뜻이고,
독일어로는 Sankt Jakobi라고 한다.
모두다 15세기 중반 역사에 등장하는
성 야고보 수도원(Abbazia st. Jacobi al Palo)을
중심으로 마을이 확장한 데서 기인하는 이름이다.
그저 조용한 작은 어촌이었던 오파티야가
크로아티아 최초의 관광지가 된 건,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1844년 리예카 출신 부유한 상인
이지니오 스카르파(Iginio Scarpa)가
이곳에 저택을 짓고
오스트리아 황제와
크로아티아 지역 수장인 반(ban) 등
초고위층 인사를 손님으로 받아들이면서부터인데,
그로 인해 유명해진 오파티야를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40년 후인 1882년
아드리아 연안 최초의 호텔이 문을 열었고,
요양소로 각광을 받아,
19-20세기 많은 유명인들이 이곳에서 휴양을 했다.
1844년 크로아티아 관광업이 시작된
안졸리나 저택(Villa Angiolina) 근처에 있는 벽에
오파티야를 방문한 유명인들의 얼굴
그래피티가 있다.
그래피티에는 그들의 이름도 적혀있는데,
그 중엔 얼굴만 보면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이름을 봐야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이름을 봐도 알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래 사진 가장 왼쪽의 연두색 바탕의 인물은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셉 1세인데,
그 다음 중간의 네 명은 이름을 봐도
누군지 모르겠다.
아래 사진에선 왼쪽부터
"율리시즈"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
"롤리타"의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
영화배우 커크 더글러스,
그리고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다.
아래 사진은 왼쪽부터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다.
그 중 정치적으로 커다란 중량감을 가진 인물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셉 1세(Franz Josef I)
[제1차세계대전을 유발한 암살의 피해자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삼촌이다]는
겨울에 몇 달씩 오파티아에서 지내곤 했고,
1894년엔 독일 황제 빌헬름 II(Wilhelm II)와
이 곳에서 회동하기도 했다.
같은 해 오파티야에서 휴양한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은
(체홉은 폐병으로 고생했었다)
이듬해인 1895년 "아리아드나(Ариадна)"라는
단편소설을 집필하는데,
그 작품에서 "아바치야(Аббация)"라는
이탈리아 이름으로 오파티야가 등장한다.
1901년과 1905년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가
오파티아에 머물며
4번 교향곡과 6번 교향곡 작업을 했다.
1902년 이사도라 던컨이 오파티야에 방문하는데,
오파티야의 야자수의 움직임에서
자기 무용작품의 팔 움직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나중에 자서전에서 밝히기도 했다.
1903년 러시아 혁명을 꿈꾸던 블라디미르 레닌은
가명으로 오파티아에서 13일을 보낸다.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1904년 여름을 오파티야에서 보내는데,
1936년 발표된 러시아어 단편소설
"피알타의 봄(Spring in Fialta, Весна в Фиальте)"
속 가상의 아드리아해 연안 마을 "피알타"가
오파티아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한다.
1918년 체코슬라비아 최초의 대통령이 되는
토마슈 마사릭이
1911년 오파티아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참고)
이후 1차세계대전 때 참전국이자 패전국인
오스트리아의 영토,
2차세계대전의 참전국이자 패전국인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가,
이후 공산 유고슬라비아의 영토가 된
오파티야는
한 때 프랑스 니스(Nice)에 비교되던
세계적인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20세기 중후반에는
오파티야를 방문하는 세계적 유명인들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크로아티아인들과
크로아티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인기 휴가지여서,
유명 관광지로서 오파티야의 명성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음은 오파티야 지도인데,
역사가 오래된 관광도시 답게
해안가를 중심으로 자리잡은 거주지에
해변을 따라 호텔이 많이 보인다.
위 지도의 오른쪽 하단 끝 작은 반도에
1844년 건설된 크로아티아 관광업의 출발점
안졸리나 저택이 자리잡고 있다.
"Angiolina"라는 이름은 당시 저택의 주인이던
이지니오 스카르파(Iginio Scarpa)의
먼저 사망한 아내의 이름이다.
오스트리아의 지배기에 건설되어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유행하던,
실용성을 강조한,
비더마이어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오파티야는 오스트리아보다
이탈리아의 지배를 더 오래 받았고,
대외적으로도 이탈리아어 Abbazia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관광도시 오파티야는
오스트리아 지배기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건물들이 이탈리아적이기보다는
오스트리아적이다.
내가 보기엔 그게 오파티야가 외적으로
달마티아와 이스트라 반도의 다른 도시들과
가장 많이 변별되는 점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현재 바다가 없는 오스트리아는
예전에 거대한 합스부르그 제국일 때도
달마티아와 이스트라를 병합하기 전에는
바다가 없었다.
그런 오스트리아인들에게
달마티아보다는
비엔나에서 좀 더 가까운
이스트라 반도의 오파티야가
좀 더 좋은 휴양지였을 것이고,
그래서 오스트리아 황제도
겨울에 몇 달씩 오파티야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서
오파티야가 관광지로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의 오파티야가
오스트리아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안졸리나 저택"은 현재
크로아티아 관광 박물관(Hrvatski muzej turizma)
으로 사용된다.
안졸리나 저택 뒤에 위치한 또다른 박물관 건물인
스위스 하우스(Švicarska kuća)와 안졸리나 저택
모두를 입장하는 입장권은
일반 15쿠나(약 2,700원), 할인 7쿠나,
안졸리나 저택만 입장하는 입장권은
일반 10쿠나(약 1,800원), 할인 5쿠나,
입장시간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크로아티아 관광 박물관 홈페이지)
안졸리나 저택 양 옆에는
거대한 목련 나무가 서 있고,
안졸리나 저택 앞에는
잘 가꿔진 작은 정원과
그 정원 너머 바다가 있다.
비록 등받이가 없어 오래 앉아 있진 못했지만,
저택 앞 계단의 나무그늘 속에 앉아
바다와 정원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안젤리나 저택 주변으로
커다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공원 나무 사이 길을 걷는 것도 기분 좋다.
안졸리나 저택 옆에는
오파티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체코 출신 바이올린 연주자
얀 쿠벨릭(Jan Kubelík)의 동상도 있다.
(동영상 1: 오파티야 바다1)
"안졸리나 저택"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면,
"오파티야"라는 이름의 근원이 되는
성 야고보 수도원의 성당이 보인다.
성 야고보 성당에서 좀 더 서쪽으로 가면,
오파티야에서 가장 유명한 동상이자,
오파티야의 상징인
"갈매기 곁 소녀(Djevojka s galebom, The Girl with the Seagull)"동상이
눈 앞에 나타난다.
"갈매기 곁 소녀" 동상 자리엔 원래,
19세기 후반 오파티야 앞 바다의
폭풍 속에서 사망한
어떤 백작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의 가족들이 세운 성모상이 서 있었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게 된 성모상이
제거된 자리에
1956년 지금의 동상을 세우게 됐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여자의 동상이
바위 섬과 너른 바다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려서,
이제 크로아티아인들은
오파티야 하면 무엇보다도 이 동상을 떠올린다.
소녀의 팔 위의 갈매기는 예전에 도난당했다가
다시 찾은 것이라고 한다.
"갈매기 곁 소녀" 동상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가면
2012년에 세워진
바르카욜(barkajol, the boatman) 동상이 있다.
크로아티아어 Barkajol은
그냥 단순한 뱃사공, boatman이 아니라,
사람들을 여기저기로 실어나르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아드리아해 연안에선 3000년도 더 된 직업이란다.
유서깊은 관광도시 오파티야에선
해상 투어도 해주면서,
관광객의 시중을 드는 바르카욜이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그래서 이렇게 동상도 세운거다.
그 길에서 계속 서쪽으로 가면,
러시아의 지배 하에 있는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러시아와 싸운 폴란드 영웅
유제프 피우수드스키가
그 전쟁 전에
이 곳에 머물렀다는 설명이 쓰인 명패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벽에 붙어 있다.
피우수드스키 장군은
러시아를 폴란드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받았다던데,
아마도 그러면서 오스트리아 땅이었던
오파티야에도 왔었나보다.
이제 좀 더 서쪽으로 가서
슬라티나(Slatina) 해변에 이르면,
20세기 크로아티아 작가인
미로슬라브 크를레쟈(Miroslav Krleža)의
동상이 보인다.
자그레브 구시가 서쪽에 있는 동상과
똑같이 생겼다.
나는 그의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는데,
자그레브에 있는 뚱한 표정의 이 동상을 좋아해서
이 동상이 괜히 반가웠다.
좀 더 서쪽엔
"크로아티아 명예의 거리(The Croatian Walk of Fame)"가 있다.
헐리웃의 Walk of Fame을 본따서
2005년에 만든 것으로,
과학, 문화,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크로아티아인을 투표로 선정하여
길 위에 그 이름을 새겼다.
그 중 내가 아는 사람은 니콜라 테슬라
(그의 아버지는 세르비아인이고,
그는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국적은 국제적 논쟁거리다.)와
오파티야 출신 유명가수라고
버스 안에서 선생님이 설명해 준
이보 로비치 밖에 없었지만,
뭐 그래도 이런 시도 재미있는 것 같다.
그 밖에 오파티야엔 고풍스러운 느낌의 호텔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바다 옆으로 난 산책로가
끝도 없이 길게 펼쳐진다.
결국 난 그 산책로 끝까지 걷지 못하고
가던 중간에 돌아와 버스 타러 돌아가야 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자그마치
그 바다옆 산책로가 12km라고 한다.
그리고 그 12km 중간 중간에,
혹은 그 바깥에 해변이 여러 개 있는데,
다들 파랑 깃발(Blue flag) 상을 받은
깨끗하고 맑은 바다를 자랑한다.
걷는 게 좋은 사람은 걷고,
해수욕이 좋은 사람은 해수욕을 할 수 있는
맑고 푸른 바다와 예쁜 해변이
아마도 예나 지금이나
오파티야의 가장 큰 경쟁력일거다.
(동영상2: 오파티야 바닷가2)
(동영상3: 오파티야 바닷가 3)
(동영상 4: 오파티야 바닷가 4)
크로아티아어 학교에서
리예카와 오파티야에 단체여행 떠난 게
5월초였는데,
그 얼마전에 터키 친구가 리예카를 다녀왔다길래,
어땠냐고 물었더니,
“리예카는 볼 게 없다. 오파티야가 훨씬 낫다”
그랬다.
소풍 같이 갔던 친구들도
다들 해변 없이 삭막한 리예카보다는
오파티야가 낫다고 했었다.
난 터키 친구의 평가를 듣고,
리예카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오파티야에는 좀 기대를 하고 떠나서 그런지,
아니면 휴양보다 문화적인 여행을
선호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좀 단조로운 감이 있는 오파티야보다는
생기 넘치고 다양한 것이 공존하는
리예카가 더 좋았다.
하지만 오파티야엔
170여년의 두터운 시간에서 묻어나는,
그리고 그 옛날
오스트리아 황제가 사랑했던 관광지로서의
기품과 고급스러움이 있다.
여기저기 호텔과 카페가 있는
전형적인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요란스럽지 않고,
해변이 깊지 않고 길어서 그런지
붐비는 느낌도 없고,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휴양지다.
그리고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은
맑고 푸른 바다가
계속 보이고 또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