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맛만 본 유네스코 문화유산 구시가 섬
2018년 6월초 어느 주말,
아침 일찍 가서 담날 저녁 늦게 돌아오는,
꽉 찬 1박 2일로 시베니크(Šibenik)에 갔다.
처음 가는 도시니,
만약 지금 간다면,
최소 2박 3일, 3박 4일은 있다 왔을텐데,
당시엔 평일에 크로아티아어 수업 듣던 때라,
주말밖에 시간을 못 내서 어쩔 수 없이
1박 2일로 갔다
그런데 시베니크 왕복 버스티켓 예매하고 나서,
주변 다른 소도시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크로아티아 소도시들은
다들 아기자기 예쁘고,
작아서 금방 둘러 보는데다가,
달마티아 지방에 언제 또 갈지 모르니,
이왕 간 김에 들렀다 오고 싶었다.
그래서 검색해보니,
시베니크에서 프리모스텐과 트로기르가 가까워서,
둘다 버스로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그 중 버스로 30분밖에 안 걸리는
프리모스텐(Primosten)이 더 가깝긴 한데,
트로기르(Trogir)는
구시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니,
왠지 더 끌린다.
그래서 쉬베닉 도착 후 숙소 체크인하고 나와서
가장 일찍 출발하는 트로기르행 왕복버스표를 샀다.
2시 출발이었다.
“쉬베닉-트로기르” 왕복버스는 27+27쿠나여서
54쿠나(약 1만원)였는데,
나중에 인터넷 검색해보니,
인터넷에서 사는 게 좀 더 비싸다.
큰 차이는 없지만,
어떨 땐 인터넷이 더 싸고,
어떨 땐 또 직접 사는 게 더 싼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트로기르(Trogir)는 달마티아 중부,
시베니크와 스플리트 사이에 위치한
크로아티아 해안 도시다.
가장 가까운 도시 스플리트(Split)에선
버스로 30분 걸리고,
왕복 약 30쿠나(약 5,500원),
수도인 자그레브(Zagreb)에선
버스로 5-6시간 걸리고, 편도 20유로 내외다.
시베니크에서 트로기르 가는 버스 안에서,
‘1박2일이면 시베니크에만 있기에도 짧은 시간인데,
괜한 욕심을 냈나?’
‘차라리 가까운 프리모스텐 갈 걸.
괜히 길에서 시간을 버리나?’
생각했는데,
가뜩이나 빨리 가도 50분은 걸리는 거리를
버스가 중간에 멈춰서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오토바이족들에게
길을 내주는 바람에
1시간 3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예상보다 느린 버스에
처음엔 초조해하고,
그 다음엔 잘못된 선택이라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니 포기하고,
그래도 멋진 아드리아해를 보며 가니 좋다고,
“여행은 목적보다는 과정이 아니겠냐”며
합리화하게 되었다.
사실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방의 도시들은
해안가를 따라 형성되어 있고,
고속도로도 해안을 따라 이어져서,
특정한 도시를 방문하기 전후
그냥 그 해안도로를 달리기만 해도 좋다.
그렇게 멋진 바다 풍경을 보며 달려,
오후 늦게 트로기르에 도착하자마자
시베니크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봤는데,
가장 적합한 건
6시와 7시반 출발 버스인 것 같았다.
트로기르가 생각보다 커서 볼 게 많거나,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해서 오래 머물고 싶어지면,
7시 반 거 타고,
아님
6시 버스 타고 쉬베닉 가서 일몰을 봐야겠다 했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등
구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는,
그리고 이건 인근 헝가리에서도 그랬는데,
버스터미널에서 왕복표를 사면
가는 시간만 고정되어 있고,
돌아오는 시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버스시간표 보고 원하는 시간에 타면 되는데,
세르비아에선 먼저 예약을 하게 했지만,
보통은 그냥 탈 때 왕복표를 보여주면 된다.
그렇게 들어가서 아무 자리나 앉으면 되는데,
혹시나 빈자리가 없으면 자리 날 때까지 서서 간다
트로기르(Trogir)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이 거주해서,
45000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도구가 발견되었단다.
하지만 역사에 처음 등장한 건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인들이 트라구리온[Τραγύριον]이라는 이름의 도시를 이곳에 세우고 난 다음부터다.
“트라구리온”은
알바니아어로 “세 개의 돌”이란 의미다.
‘그리스 도시에 웬 알바니아어?’
싶긴 하지만,
“트로기르가 세 개의 돌 위에 세워졌다”는,
이 지방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속설이 있어서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근데 2와 3은
여러 문화에서 “근원”을 이루는 숫자가 되는데다가
크로아티아어로도 “트로(tro-)”는 3을 의미하니,
그 "세 개의 돌" 속설은
3이라는 숫자에 기반해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스어로 “숫염소”를 의미하는 tragos와
“언덕”을 의미하는 oros가 합쳐진 거란 설도 있다.
트로기르엔 “숫염소”라는 의미의
코지약(Kozjak) 산이 있는데다가,
실제로 염소 방목으로 유명한 곳이라,
또 그리스 도시로 역사에 등장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 설명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고대 그리스, 고대로마와 비잔틴의 지배 이후,
11세기부턴 베네치아 공화국의 강한 영향을 받았고,
15세기부터 18세기말까지는 직접적 지배를 받아,
베네치아 스타일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당시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건물들,
로마네스크 성당들이 가진
역사적, 건축적 가치로 인해
1997년 구시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다.
18세기 말부터 제1차세계대전 전까지
합스부르그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그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2차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병합되고,
1944년 이후 공산 유고슬라비아 연방,
1991년 이후엔 독립 크로아티아의 일부가 되었다.
즉, 대부분의 달마티아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현재는 행정적으론 크로아티아에 속하지만,
오랜 지배와 강한 문화적 영향으로
여러가지 면에서 이탈리아적인 도시다.
트로기르 버스터미널은 바다 바로 옆에 있어서,
버스를 내리면,
구시가 앞 바다와 멀리 치오보(Čiovo)섬이 보인다.
버스터미널을 빠져나오면,
구시가로 건너가는 다리가 나온다.
트로기르 구시가는 섬인데,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가 북쪽에 두 개,
치오보 섬과 연결되는 다리가 남쪽에 하나 있다.
트로기르의 구시가는 아담해서,
한번 둘러 보는데 1-2시간이면 충분하다.
달마티아의 구시가는 워낙 다들 비슷하지만,
트로기르 구시가는 유난히
스플리트 구시가와 비슷해보인다.
우선 구시가가 평지고,
(두브로브니크, 시베니크는 언덕이 있다)
골목이 좁고,
흰색 3-4층 건물들이
그 좁은 골목 양옆을 채우고 있고,
(자다르처럼)
시가지가 커지고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들어선
다양한 시대, 다양한 모습의 건물이
섞여있지 않고,
비슷한 시대에 건축된 비슷한 모습의
오래된 건물들이 집약된
관광객을 위한 전시 공간이다.
트로기르를 크로아티아인들은
“도시 박물관(grad muzej)”이라 묘사하는데,
정말 그 말대로 구시가는
마치 15-18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을 재현한 박물관 같다.
그래서 내겐 “작은 스플리트”인 트로기르는
통상적으로는 “작은 베니스(Mala Venecija, Little Venice)”라 불린다.
베니스를 안 가본 나는
트로기르가 베니스와 얼마나 비슷한지
평가할 수 없는데,
1969년 오손 웰즈의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영화의 촬영장소이기도 했다니,
꽤 비슷하긴 한가보다.
트로기르는 지도 북쪽의 꽤 넓은 육지 영역,
지도 남쪽의 꽤 큰 치오보(Čiovo)섬도 포함하는
꽤 넓은 지역인데,
크로아티아 국내외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은
주로 아담한 구시가 섬이다.
(위 지도의 화살표)
그 중에서도 아래 지도에 번호가 붙은,
입체적으로 묘사된 장소들이 중요한 유적이다.
이제 그 유적을 하나씩 둘러볼텐데,
각 장소에는 아래 지도의 번호를 그대로 붙인다.
버스터미널에서 다리를 건너면 가장 먼저 보이는
도시 북문(Severna gradska vrata, Porta terrae fermae, The Northern Town Gate)은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다리 위 동상은 트로기르의 수호성인인
11-12세기 트로기르의 주교, 성 요한인데,
원래는 그 옆에 사자가 있었다고 한다.
성경을 한 손에 든, 날개 달린 “성 마르코의 사자”
(Leone di San Marco)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였던
트로기르에도 사자 상이 많이 있었는데,
2차세계대전 당시 트로기르를 점령한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대한 반감 때문에 제거됐다,
식민지배를 당한 역사가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심정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문화유산이 그렇게 사라졌다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결국 베네치아 공화국의 건축적 유산 덕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등재되고,
많은 관광객도 유치하는,
관광이 중요한 산업인 도시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징을 애써 제거했다는 게
참 역사의 아이러니다 싶기도 하다.
관광객들에게는 트로기르 구시가의 관문인 북문이
트로기르 주민들에게는
가장 선호하는 약속 장소란다.
그래서그런지 북문 근처엔 항상 사람들이 많았고,
그 근처에는 카페도 많았다.
북문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구시가가 시작되는데,
동쪽에 보이는 뾰족한 붉은 지붕을 따라가면,
트로기르 구시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에 도착한다.
트로기르 구시가에서 가장 큰 광장인
요한 바오로 2세 광장(Trg Ivana Pavla II, John Paul 2nd Square)에는
대성당, 시청, 로지아, 궁전 등
문화적, 건축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트로기르의 성 라우렌시오 대성당 자리에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부터 성당이 있었지만,
12세기에 사라센, 즉 아랍인에 의해 파괴되었다.
지금 대성당은 13세기에 짓기 시작해서,
4세기 후인 17세기에 완성되었다.
수세기의 건설 기간 동안 여러 건축양식을 수용해,
처음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되었지만,
천정이나 옆에 있는 3층 종탑은
고딕양식의 요소도 가지고 있다.
대성당 입구의 문은 라도반 문(Radovanov portal, Radovan portal)이라 불리는데,
13세기 크로아티아 건축가 라도반(Radovan)과 그의 제자들이 만들어낸 로마네스크 장식으로,
사자 두 마리와 아담과 이브가 양쪽에 세워져 있고,
신약성경의 주요 장면들을 부조로 새겨 넣었다.
어떻게 보면 일관성이 없고 산만해보이고,
또 다르게 보면 개성있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이다.
난 마음에 들었다.
나에겐 이 문 자체가 많은 걸 담은 이야기이자,
특별한 예술품이었다.
대성당과 종탑은 유료 입장인데,
2018년 현재 입장료는 25쿠나(약 4500원),
입장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성당 서쪽의 오벨리스크는
보카니치 오벨리스크(Bokanićev obelisk)인데,
1600년 대성당 앞 광장의 공공 건물을 없애고,
광장을 확장한 걸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오벨리스크에 새긴 라틴어 문장 안에
1600년 당시 시장 이름이 쓰여있던 것 같은데,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오벨리스크는 아닌 것 같다.
대성당 건너편 대 치피코 궁전은
15C 인문학자이자 작가인 치피코가 작업했던
고딕 양식의 건물이고,
소 치피코 궁전은 15세기 르네상스 건물이다.
아기자기한 장식과 고풍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지만,
대 치피코 궁전은 대성당과 너무 가깝고,
소 치피코 궁전 앞엔 카페가 있어서,
사진 찍기엔 건물 앞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대성당 남쪽
푸르스름한 바탕에 금색 바늘이 달린 시계탑과
그 옆에 있는 로지아는 15세기에 만들어졌다.
시계탑 건물은 원래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St. Sebastian Church, Crkva sv. Sebastijana)이었다는데,
지금은 성당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
“세바스티아노 성당”답게
세바스티안 조각이 벽에 붙어있다.
로지아는 한옥의 마루처럼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열린 공간인데,
상업적 거래가 이뤄지거나
위정자가 연설을 하기도 하고.,
또 재판을 하고,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수용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쪽 벽엔 오스만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16세기 트로기르 공후 페타르 베리슬라치
(Petar Berislavić)의 부조가 있고,
로지아 정면 벽에는 “정의”라는 제목의
부조가 걸려 있다.
원래 “성 마르코의 사자”도 있었는데,
제2차세계대전 때 제거되었다.
광장 동쪽엔 시청이 있는데,
15-16세기에 건설된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트로기르 공후의 궁전으로
오랫동안 정치적 논의를 하던 장소로 기능했고,
또 극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흰색 건물에 흰색 문장이 붙어 있었는데다가
낮이라서
너무 밝아 사진 찍기가 어려웠는데,
인터넷에서 본 다른 사진들도
하나같이 햇살이 가득한 모습이다.
시청 동쪽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가면
바다가 나오는데,
그 해안가에 세례자 요한 성당이 있다.
대성당에 부속된 수도원 같은 건물이다가,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12세기 사라센에 파괴되어,
13세기에 다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성당에서 남쪽으로 가면,
지도에는 특별하게 표기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우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아기자기한 장식이 르네상스 양식인 것 같은
흰색 건물들이 계속 연결되며,
구시가 섬의 남동쪽 코너가 나온다.
1997년 트로기르 구시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됐음을 알리는 석판도 보인다
보통은 구시가 동서남북에 문이 있기 마련인데,
섬인 트로기르 구시가는
육지와 가까운 곳에 북문 혹은 육지문,
치오보(Čiovo)섬과 가까운 곳에 남문 혹은 바다문,
이렇게 두 개의 문이 있다.
섬의 동쪽과 서쪽은 그냥 바다인데,
이탈리아에 가까운 서쪽엔 요새가 있다.
남문은 16세기에 만들어진 르네상스양식 건축인데,
문의 석조 테두리만 있는 게 아니라,
수세기전에 만들어진 나무문이 아직도
양쪽에 달려있다.
남문 동쪽에는 소 로지아(Mala loža)가 있다.
(아래 사진의 붉은 지붕)
예전엔 밤에 남문이 닫혔을 때,
문 열릴 때까지 기다리며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데,
이후엔 시장이 되었다가,
지금은 그냥 기념품 파는 곳이 되었다.
성 니콜라 성당은 11세기
트로기르 주교 성 요한에 의해 세워졌고,
종탑은 16세기에 덧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성당이 중요한 건
그런 가톨릭 성인과의 연관성이나 건축적 가치보다
이 성당 수도원에 보관된 서적과 예술품 때문인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카이로스(Kairos) 조각이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카이로스의 머리를 잡으면 평생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카이로스는 바람보다 빠른데다가,
뒷머리가 대머리라
그의 머리카락을 잡기는 매우 어렵다.
즉, 카이로스는 “기회” 또는 “행운”의 알레고리인데,
트로기르의 성 니콜라 성당 수도원에는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카이로스의 조각이 있다.
입장료는 25쿠나(약 4500원),
입장 시간은 8-13, 15-19시.
(이 동네의 입장료와 시간은 매우 유동적이니,
일찍 방문하거나 미리 가서 확인하는 게 좋다)
난 이 카이로스 이야기와
그 카이로스가 트로기르에 있다는 걸,
트로기르 다녀온 후 1달 후에야 알게 되었다.
사실 그거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아마 내가 트로기르에서 “카이로스”를 만났다면,
비록 그의 머리채를 잡지 못했다 해도
그 “카이로스” 때문에
트로기르가 내게 특별한 공간이 되었을거다.
그래서 그 뒤늦게 알게 된 정보에
정말 안타까워 했는데,
유명한 카이로스 조각을 볼 “기회”를 놓친 내가
딱 그 그리스 알레고리 속
빠르게 지나가는 카이로스를 잡지못한 사람임을 깨닫는다.
그런 내 입장에선
트로기르에서 카이로스를 본 사람들이
카이로스를 잡은 사람들인데,
아마 그들은
자기가 카이로스를 “잡은 걸” 모를 것 같다.
어쩜 나도
내 손에 쥔 카이로스 머리칼이
카이로스 것인 걸 모르고,
남이 잡은 카이로스만 부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트로기르 구시가와 치오보 섬 사이에 있는 다리는
정확하게 언제 만든 것인지 검색이 안 되지만,
100년전 사진이 있는 걸로 봐서,
적어도 100년은 넘은 다리인데,
그 100여년 동안 치오보 섬과 트로기르 구시가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여서,
심한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내가 간 낮시간엔 아직 차가 많이 밀리진 않았는데,
오래된 다리라 그런지,
차가 지나가면 다리가 흔들린다.
다리 위에서 동영상을 찍다가 차가 지나가서 좀 흔들렸다.
(동영상: 트로기르-치오보 옛다리)
다리 하나로는 부족하니 하나 더 놓자는 이야기가
1960년대부터 나왔지만,
다리 건설은 오랫동안 실행되지 못하다가,
2015년에야 건설이 시작되어,
2018년 7월 17일에 완공되었다.
아래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다리가
옛날 다리 동쪽에 새로 만든 다리다.
2018년 6월초에 찍었으니,
아직 새 다리 개통전이다.
(동영상: 트로기르-치오보 새 다리와 주변 풍경)
트로기르 남쪽 해안가엔 야자수가 줄지어 서있고,
그 옆으론 언제, 어디서 봐도
한결같이 푸르고 맑은 아드리아해가 펼쳐진다.
(동영상: 트로기르 구시가 해안)
1909년에 세워진 초등학교도
트로기르 남쪽 바닷가에서 만날 수 있다.
트로기르 구시가에서
가장 최근에 지은 건물 중 하나일 듯 한데,
외벽이 흰색인데다가
창문도 르네상스 양식을 흉내내서
전혀 도드라지지 않고,
다른 건물들과 조화를 이룬다.
이 학교 다니는 애들은 아마
학교 창문으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게
당연한 줄 알 것 같다.
도미니코 성당은 14세기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으로,
수도원은 15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졌단다.
성 미카엘 수도원은 16세기 건축이었는데,
이탈리아의 일부였던 트로기르가
2차세계대전 때 폭격을 당하면서 파괴되어,
현재는 종탑만 남아 있다.
구시가 남서쪽 코너에 위치한
카메를렝고 요새는 14-15세기
베네치아 해군 기지로 건설되었다.
“카메를렝고”는 베네치아 공화국 고위 행정직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인데,
트로키아 공후의 궁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전형적인 중세 성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카메를렝고 요새는 유료입장이었는데,
유럽 중세 성 많이 봐서
이제 궁금하지 않던 나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인터넷에는 긍정적 평 부정적 평이 공존하는데,
대체로 이 요새에 대한 긍정적 평은
“전망이 좋다”는 거,
부정적 평은 “별로 특별한 게 없다”는 거다.
벌써 며칠 지나긴 했지만,
여름마다 Moondance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카메를렝고 요새 북쪽으로 올라가면,
마몽 장군의 정자가 나온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몇년간
달마티아를 점령했을 때,
달마티아를 관할했던 총독이 마몽 장군이었는데,
당시 그를 위해 만든 정자란다.
크로아티아인들은 나폴레옹의 지배기와
마몽 장군의 근대화 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인데,
달마티아에 얼마 안 되는,
그래서 "귀한" 프랑스 통치기 유적이다.
원래는 바다 위 섬처럼
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는데,
지금은 육지 위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성 마르코 탑은 오스만의 침입에 대비해서
15세기에 건설한 르네상스 양식의 탑이다.
당시에는 카메를렝고 요새와 성 마르코 탑이
높은 담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데,
현재는 두 건축물 사이에
바다가 보이는 잔디 축구장만 있다.
성 마르코 탑에서 동쪽으로 가면,
육지로 가는 아치형 나무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의 아치 위에 서면,
구시가는 보이지 않지만,
성 마르코 탑과 바다,
그리고 육지쪽의 낮은 산이 보이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서 좋았다.
내가 갔을 때도
사람들이 여기에서 기념사진을 많이 찍었고,
인터넷에도 여기서 찍은 기념사진이 많이 보인다.
유적은 아니지만 트로기르의 중요한 포토존이다.
(동영상)
아치형 다리에서 멀지 않은
구시가 북쪽에 위치한
카르멜 성모 성당은 17세기에 건설된 가톨릭 성당이다.
이 성당옆으로 난 길은 비교적 넓고,
구시가 남쪽 끝 도미니코 성당까지
곧바로 연결된다.
트로기르에선 지도에 따로 표시되지 않은
“보통”건물들에도 자세히 보면 특이한 장식이 있고,
특이한 장식이 없는 건물들도
여러개 모여 골목이 되면
그대로 그냥 그림이 된다.
난 중요한 건물 중심으로
트로기르 구시가를 한번 돌고,
그냥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구시가 골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또 두세번은 돌았나보다.
그 정도면 이제 더 볼 건 없을 것 같아서,
저녁 6시 출발 시베니크 행 버스를 타러
터미널에 갔다.
10분 정도 일찍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버스가 없고,
혹시 몰라서 매표소에 다시 물어봤더니,
9번 플랫폼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트로기르 터미널의 9번 플랫폼은
다른 플랫폼과 좀 떨어져있다.
그리고 거기 선 버스는 오래 멈추지 않고,
승객만 싣고 금방 출발하는 것 같았다.
트로기르 터미널에서는
버스 출발 플랫폼을 잘 체크해야 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6시에 9번 플랫폼에 도착한 버스에 오르며,
시베니크 가냐고 물으니 안 간다고 한다.
아마 반대방향인 스플리트행 버스였나보다.
6시 넘어도 버스가 안 나타나니,
혹시 내가 놓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옆에 여자분에게 혹시 쉬베닉행 버스 기다리냐니까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5분쯤 늦게
시베니크 행 버스가 도착했다.
트로기르 갈 때는 괜히 무리했나 했는데,
트로기르 구시가도 여러번 둘러보고,
가고 오는 길에 멋진 바다도 보고,
늦지 않게 시베니크의 일몰도 보고,
트로기르에 다녀와서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두달이 지난 지금도 그 때
트로기르에 다녀오길 잘 했단 생각엔 변함 없지만,
여전히 아쉬움도 크다.
나는 트로기르에 겨우 3시간 정도 머물렀다.
내가 트로기르를 선택한 건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구시가 때문이었는데,
정말 딱 "유네스코 문화유산"만 보고왔다.
좀 더 있으면서,
관광객들의 공간 너머,
유네스코 문화유산 바깥에 있는
현지인들의 공간에 가서,
무언가 트로기르적인 걸 만났으면 달랐겠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트로기르는
스플리크 구시가를 연상시키는
창백한 관광객의 도시였다.
어쩌면 ‘빨리 시베니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정을 안 붙이고,
“작은 스플리트”라고 쉽게 규정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다음에 혹시 “카이로스”의 머리채를 잡게 되서,
트로기르에 다시 가게 된다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좀 더 깊게,
그리고
유네스코 문화유산보다 좀 더 넓게
트로기르를 경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