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인싸 관광지인 “그림" 같은 유럽 마을
할슈타트(Hallstatt)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건 몇 년 전이다.
지인이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여행했는데,
할슈타트가 너무 예뻤다고 했다.
난 예전 유럽배낭여행 갈 때
오스트리아에서 빈과 잘츠부르크만 가서,
할슈타트는 몰랐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알프스 산맥의 그림 같은 마을”이었다.
나중에 기회 되면 가봐야겠다 막연히 생각하고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2018년 상반기 자그레브에 있을 때 생각이 났다.
4-5개월간 크로아티아어 배우면서,
가고 싶은 데가 생각날 때마다
“유럽에 온 김에 나중에 수업 끝나고 가봐야지”
하면서 위시리스트에 여행지를 차곡차곡 담았는데,
6월 초 한 학기 크로아티아어 수업 끝나자마자
오스트리아 빈에 갔을 땐,
할슈타트가 빈에서 좀 먼 곳인 데다가,
필하모니에, 박물관에,
빈만 보는데도 시간이 부족해서,
할슈타트까지 갈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한 번은 가보고 싶어서,
2018년 6월 말
그라츠(Graz)라는 오스트리아 남부 도시 가면서,
할슈타트도 들르기로 했다.
영어 블로그 글은 많이 없고,
한국 블로그의 “할슈타트” 방문기를 보면,
당일치기 아니면 1박 2일이던데,
호텔 숙박비도 비싼 것 같고,
1박 2일 체류 후기를 보면
하루에 다 둘러볼 수 있는 루트이겠길래,
(이미 당시 나는 짧게 하는 여행에 길들어 있었다)
난 그냥 그라츠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할슈타트(Hallstatt)에서
Hall은 현대 독일어에선 “큰 방”을 일컫지만,
어원적으로는 “소금”과 관련되어 있단다.
그래서 할슈타트는 “소금이 나는 장소”라는 의미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잘츠부르크(Salzburg)도
“소금 도시”라는 뜻인 걸 보면,
할슈타트 뿐 아니라
이 근방 지역에 소금이 많이 났던 것 같다.
실제로 잘츠부르크와 할슈타트를 포함하는,
“소금 지역”이라는 의미의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굿(Salzkammergut) 지역은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로 인해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소금 광산이 있던 할슈타트는
그 소금을 바탕으로 해서
유럽 철기시대의 문을 연
고대 할슈타트 문명을 꽃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큰 도시로 발전하지 못하고,
로마제국과 중세시대 그리고 근현대까지
오랫동안 소금이 나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시골마을로 남았다.
아마도 그건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지형 때문인 것 같은데,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한 자원으로
취급받지 못하게 된 이후에는
바로 그 산과 호수 덕분에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할슈타트(Hallstatt)는 아래 지도에서 보듯,
오스트리아 중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인 빈(Wien)에서는 기차로 4시간 정도,
가장 가까운 대도시 잘츠부르크(Salzburg)에선
기차로 2-3시간 정도,
내가 갔던 방법인
남부 도시 그라츠(Graz)에서 가면
기차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오스트리아가 큰 나라는 아닌데,
산이 많아서
지도로는 가까워도
도시 간 대중교통편이 빠르진 않다.
만약 “할슈타트”가 목적이라면
모차르트 출생지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인
잘츠부르크 들렀다가 거기서 가는 게
교통편도 가장 많고,
시간도 적게 걸리는
가장 좋은 루트다.
오스트리아 기차 티켓은
ÖBB 홈페이지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한 후,
기차역에 가서 티켓으로 교환하면 된다.
(그냥 예약만 하면 안 되고,
꼭 티켓으로 교환을 해야 한다.)
그라츠(Graz)에서 할슈타트 오가는 기차는
하루에 5대가 있는데,
비용은 기차 운행 시간마다 다르고,
또 시즌에 따라 또 다른 것 같고,
또 일찍 예매하면 좀 더 싸게 살 수 있다.
나는 그라츠-할슈타트 아침 기차(한번 환승)와
할슈타트-그라츠 저녁 기차(두 번 환승) 티켓을
48.10유로 주고 예매했다.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중요 관광지라
ÖBB 홈페이지에서
왕복 기차표, 왕복 배편, 산으로 오르는 푸니쿨라, 소금광산 입장권 등을 모두 합친
패키지 티켓도 판매한다.
당시 난 소금광산을 갈지 안 갈지 결정하지 못해서
그 패키지 티켓은 사지 않았는데,
따로따로 티켓을 사는 것보다
많이는 아니고 몇 유로 더 쌌었던 걸로 기억한다.
(할슈타트 패키지 티켓)
난 그라츠에서 아침 7시 45분 출발해서,
할슈타트에 10시 30분 도착하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탄 기차는
같은 기차가
앞부분은 남부 도시 Linz로,
뒷부분은 북부 도시 Salzburg로 가는 거였다.
그래서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은 5번이었는데,
전광판에 두 도시 모두 종착지로 나와 있고,
Linz는 5-A-C,
Salzburg는 5-DE라고 쓰여 있었다.
중간에 다른 도시로 가지 않으려면
잘 보고 타서,
자기 자리 잘 찾아 앉아 있어야 했다.
기차는 정시에 출발했는데,
가뜩이나 새벽부터 일어나서 잠도 부족한 데다가,
생전 처음 만나는 복잡한 시스템의 기차를
2시간쯤 후 Stainach-Irdning에서 갈아타야 해서,
잔뜩 긴장하면서 역마다 체크했다.
8:29 Leoben Hbf
8:38 St. Michael
9:12 Selzthel에 도착했고,
9:20 기관차를 바꾼 듯
기차가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이후
9:25 Liezen을 거쳐
9:38 환승역인 Stainach-Irdning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환승할 기차가 서 있었는데,
거기서 기차 갈아타는 사람은
거의 다 아시아인들,
특히 한국, 일본, 중국 사람이다.
뭔가 내가 모르는 유명한 방송이나 영화를
할슈타트에서 찍었나 보다.
9:40 환승 기차가 출발했고,
예정된 시간인
10:30 Hallstatt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릴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못 봤고,
돌아가는 기차 탈 때는 저녁이어서 그런지,
아님 원래 없는 건진 모르겠는데,
매우 작은 할슈타트 기차역엔 직원이 없었고,
안쪽의 티켓 자판기에서 표를 구매할 수 있다.
물론 여기는 다들 작정하고 오는 관광지라,
승객은 거의 다 미리 티켓을 예매한 것 같았다.
나도 그래서 티켓 구매엔 문제가 없었는데,
기차에 대해 질문하고 싶을 때,
직원이 없는 건 답답했다.
할슈타트 마을은 호수 건너에 있기 때문에
기차역에서 할슈타트 마을까지 갈려면
배를 타야 한다.
(할슈타트 페리 시간표)
http://www.hallstattschifffahrt.at/en/timetable/timetable.html
이렇게 생긴, 생각보다 좀 작은 배다.
매표소가 아닌 배 안에서 왕복 5유로 지불했고,
원래 10:35 출발인 배가 10:38에 출발했다.
완벽하게 정각에 출발하는 건 아니고
기차 승객이 다 타면 출발해서
몇 분 정도의 오차는 있는 것 같다.
5-10분 정도 배를 탔던 것 같은데,
할슈타트 페리 선착장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호수 위엔 안개가 가득하고,
호수 위엔 백조들이 노닐고 있었다.
선착장엔 기차 시간과 배 시간이 적힌
이런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시간표 옆에 붙어있는, 그리고 벤치에도 붙어있던
혼잡스러운 관광지를 인증하는,
“소매치기 조심” 경고문과
얼마나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지
짐작하게 하는
한국어, 중국어 안내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그 경고문을 보면서,
할슈타트가 내가 예상했던,
그리고 첫인상에서 느껴지는,
그냥 그림 같이 예쁜 한적한 시골 마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슈타트는 아래 지도처럼 생겼다.
할슈타트란 이름의 호수 뒤에 낮은 산이 있고,
그 산기슭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지도 가운데 폭포가 호수랑 만나는 곳 근처에
페리가 정박한다.
페리에서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성모승천 가톨릭 성당(Parish church of St Mary of the Assumption, Katholische Kirche St. Mariä Himmelfahrt)이다.
이 자리에는 11-12세기부터 성당이 있었지만,
지금 성당은 16세기에 건축된 고딕건물이고,
납골당으로 유명한 오른쪽의 장식 없는 하얀색
성 미카엘 예배당(chapel of St. Michael)은
12세기 초 성당의 흔적이란다.
성당 입구의 프레스코도 16세기 작품이라는데,
그렇게 오래된 것 치고는 보전이 꽤 잘 된 상태다.
내가 할슈타트에 간다고 했더니,
헝가리 친구 라우라가
"거기 무덤이 특이한 데 아니냐?"고 했다.
라우라의 이야기를 듣고,
이 성당에 있는 묘지를 유심히 봤는데,
무덤이 좀 작고 예쁘다.
인구는 계속 증가했지만,
지형상 묘지를 확장하기 어려워서,
무덤을 작게 만들고,
심지어 2층으로 매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할슈타트 묘지가 유명한 건 아니고,
이 성당의 납골당(Beinhaus, Ossuary)이 유명하다.
무덤으로 쓸 자리가 부족해서,
매장 후 10-20년 후에 관에서 해골과 뼈를 빼서
햇볕에 말리고 이름을 쓰고 그림을 그린 후
납골당에 보관하는 오래된 관습이 있단다.
이 성당의 납골당은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고,
2018년 현재 입장료는 일반 2유로다.
그 성당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따뜻한 느낌의 색과 디테일이 사랑스러운
목조 건물 가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호수와 산이 보인다.
성모승천 가톨릭 성당 남쪽으로 가면
뾰쪽한 첨탑의 교회 하나가 더 눈에 들어온다.
그 뾰족한 첨탑의 건축은
복음주의 교회(Evangelical Church, Evangelischen Pfarrgemeinde),
즉 프로테스탄트 교회다.
16세기 초 독일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같은 독일어권인 오스트리아에서도
신교도들이 증가했는데,
반종교개혁적 가톨릭 세력에게
오랫동안 종교적 탄압을 받았다.
19세기 후반에 가서야 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교도와 동일한 권리를 인정받았고,
광부를 중심으로 신교도 세력이 확대되었던
할슈타트에서도 그제서야 처음으로
이 신고딕양식 복음주의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이 교회 안에 들어가 보니,
루터의 종교개혁 및 프로테스탄티즘에
관련된 글과 전시가 있었는데,
난 그냥 2017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라
그게 2018년까지 남아있는 건 줄 알았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세계 종교사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인들의 역사에서 그리고
이 교회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
몇 주년인지 관계없이 상시전을 할 것 같기도 하다.
2018년 현재 오스트리아인의 약 57%가 가톨릭,
3%가 프로테스탄트다.
이 교회 남쪽으로
본격적인 할슈타트 마을이 시작된다.
작은 시골마을이라
구시가광장(Market Square, Marktplatz)도 작은데,
중세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광장을
예쁜 석조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작아도 아주 예쁘다.
광장 중간엔 18세기 중반 세웠다는,
소박한 삼위일체 동상이 있다.
금빛 아우라를 내뿜는 최상위 존재는 성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성자,
그 아래 비둘기가 성령인 것 같다.
삼위일체 동상 둘레에는 돌벤치가 있고,
동상 뒤에는 식수가 나오는,
역시나 소박한 작은 분수가 있어서
할슈타트의 중요한 휴식 장소라는데,
내가 간 날은 비가 와서,
그냥 쓰-윽 둘러보기만 했다.
하지만 할슈타트 구시가는
그냥 쓰-윽 둘러보기만 해도 좋다.
집들도 예쁘고, 골목도 아늑하고,
작은 골목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시시때때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호수쪽에는 목조건물이 많은데,
구시가 안쪽에는 석조건물이 많다.
크게 불이 난 적이 있다던데,
아마 구시가는 대체로 그 이후에 형성됐나 보다.
구시가엔 19세기 초중반 할슈타트 광산에서
철기 시대 묘지를 발굴한 광산 관리인
람사우어(Johann Georg Ramsauer)의 동상도 있다.
아직 고고학적 방법론이 정립되지 않았던 당시,
그는 발굴 현장과 발굴물을 세심하게 다루고,
수채화로 기록을 남겨서,
"할슈타트 문명" 연구에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커다란 체스판도 있다.
구시가에서 나와 남쪽의 호숫가로 걸어가면,
제에슈트라세(Seestraße), 즉 호숫가 길을 따라,
사진으로 본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여기에 이렇게 목조 건물들이 층층이 지어진 건,
주민들이 다들 호숫가를 선호했기 때문이라는데,
덕분에 특별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이 호숫가 차로는 19세기 말에 생겼는데,
그전에 여기에 길이 없을 때는
집에서 배를 타고 직접 호수에 진입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이 곳에 있는 집의 1층은
생활공간이 아닌, 배를 보관하는 창고였단다.
지금 배들은 별도의 목조 수상가옥 안에
따로 보관하는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뤄 자연스러운,
이런 이국적인 선착장도 있다.
호숫가 길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이런 풍경이다.
(동영상: 할슈타트 호수 근처)
(동영상: 할슈타트 호수 근처)
호숫가 길 남쪽 끝에 다다르면
"소금 산"이라는 뜻의 잘츠베르크(Salzberg)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거기에 그 유명한 소금광산이 있다.
소금광산이 멀지 않음을 알리는 듯한
소금광산 광부 동상 근처에
여행안내소와 공중화장실이 있어서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할슈타트에 도착해서도 난
아직 소금광산을 갈지 안 갈지 결정 못하고 있었다.
오래전에 폴란드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에 다녀와서,
할슈타트에서는 가지 말자 싶기도 하고,
할슈타트라는 마을의 정체성이자,
할슈타트 관광의 정수가 바로 소금광산이라,
안 가면 또 안 될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할슈타트 소금광산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푸니쿨라를 타고 3분 만에 정상에 오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시간 정도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다.
12월부터 3월까진 소금광산이 문을 닫고,
1-2월은 푸니쿨라도 운행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수기와 비수기에 마감시간이 다르다.
비용은 2019년 현재 일반 기준으로
소금광산과 푸니쿨라 왕복 € 34.00,
소금광산 € 24.00,
푸니쿨라 왕복 € 18.00,
푸니쿨라 편도 € 10.00다.
작년에 메모해둔 걸 보니,
비용이 그새 좀 더 오른 것 같다.
(할슈타트 푸니쿨라 & 소금광산 개장시간& 비용)
소금광산 광부 동상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푸니쿨라를 타는 곳이 나온다.
멀리서도 푸니쿨라가 보이고,
그 앞에 안내 입간판도 있어서 찾기 쉽다.
난 아직 결정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냥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푸니쿨라 역 오른쪽에 있는 길로
걸어 올라가면 된다.
천천히 둘러보며,
안내문 다 읽으면서 올라갔던 나는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그냥 걷기만 하면 1시간 정도면 될 것 같다.
내려올 때는 40분 정도 걸렸다.
중간에 뮐바흐 폭포(Mill Creek Waterfall, Mühlbach Wasserfall)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산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무척 빠른 속도로 물이 흘러내려간다.
(동영상: 뮐바흐 폭포)
소금광산까지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어서,
그냥 꼬불꼬불 난 그 길을 올라가면 된다.
중간중간에 관광객을 위한 안내문도 있고,
역사적 기념비들과 건물들도 있다.
올라가다 보니 구시가가 보이는데,
비가 오고 안개가 많은 날이라
시야가 선명하진 않다.
이제 이런 낡은 오두막이 보이면,
정상에 다 온 거다.
산정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루돌프저택(Rudolph’s Tower, Rudolfsturm)인데,
13세기에 한 공후가
소금광산 광부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건물을 짓고,
자기 아버지 Rudolf의 이름을 땄다.
그 후 수백 년간 소금광산 감독관의 관저였고,
1960년대부터는
멋진 뷰를 자랑하는 식당이 되었다.
그 옆으로 난 긴 다리를 건너 걸어가면,
소금광산이 나온다.
소금광산 가는 길엔 뭔가 작은 볼거리가 많다.
"이 계곡 아래에서 할슈타트 묘지와
초기 문명이 발견되었다"
고 쓰인 작은 급수대도 있다.
여기가 그 유명한 발굴 장소인가보다.
그 옆엔 광부의 수호성인인
성 바르바라(Saint Barbara)의 예배당이 있다.
이런 것들 말고도
뭔가 번호를 붙여놓은 설치물이 있는데,
그걸 읽으면서 번호를 따라 걸어가면,
멀리 할슈타트 소금광산(Hallstatt Salt Mine, Salzwelten)이 보인다.
할슈타트 소금광산은
최소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결국 소금광산에 들어갔다.
2019년 일반 24유로인 것 같은데,
2018년 6월엔 입장료로 22유로를 냈다.
거의 30분에 한 번 꼴로 투어가 있는 것 같은데,
가방과 겉옷을 맡기고,
소금광산에서 주는 작업복 같은 옷을 걸쳐야 한다.
티켓 샀을 때가 1시 35분인가였고,
언제 시작하냐니까 지금 시작한다길래,
서둘러 옷 갈아입고 들어갔는데,
한참을 기다렸다.
홈페이지에 보니 70분이 걸린다는데,
3시 30분이 다 되어 끝났다.
시간이 되면,
유니폼을 입은 투어 가이드가 등장해서,
영어와 독일어로 개괄적인 설명을 한다.
우리 가이드는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그녀의 안내에 따라 이런 통로를 지나서,
이런 광산에 들어가면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된다.
그렇게 가이드를 따라 한참 걸어가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 간 후,
좀 걷다가 또 좀 더 긴 미끄럼을 타고 내려간다.
일행 중에 아이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님 원래 여기 컨셉이 그런 건지,
마치 무슨 놀이동산의 기구를 타는 것 같은
놀이 분위기로 투어를 진행한다.
투어는 주로 멀티미디어를 통해 진행된다.
빨간색 소금은 이온(?)이,
노랑은 마그네슘,
흰색은 칼슘이 많이 들어있다는 식의
과학적인 설명을 해주었고,
할슈타트 광산의 역사도 설명해준다.
투어가 끝나면 마지막엔 기차를 타고 나온다.
예전에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갔을 땐,
걸어서 한참을 내려갔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었는데,
할슈타트 소금광산 투어는
그 시작과 끝도 투어의 연장선상에서
좀 더 놀이같이 만든 느낌이다.
예전에 갔던 폴란드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엔
소금으로 만든 동상도 있고,
커다란 홀과 샹들리에도 있어서,
좀 예술적이라면,
할슈타트는 멀티미디어 위주로
좀 더 교육적인 측면에 치중한 것 같다.
인문학도여서 그런지
난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투어가 더 맘에 든다.
투어가 끝나고 옷을 반납하면,
소금 하나씩을 나눠주고,
미끄럼 탈 때 찍은 사진을 5유로에 판매한다.
투어가 끝나고 보니,
이제 비가 그쳤다.
Skywalk라는,
루돌프 저택 옆에 있는 전망대에 갔다.
뭐 대강 아래 사진 같은 분위기로
사람들이 줄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제 할슈타트에서 더 해야 할 일도 없고,
전망도 좋고 해서,
그리고 한번 내려가면
다시 또 안 올라오게 될 것 같아서,
스카이워크 근처에 한참 서 있었다.
혹시나 해가 나지 않을까 기다렸는데,
비가 그쳐도 결국 해는 안 났다.
그래서 인생샷 못 찍고 4시 정도에 산을 내려왔다.
(동영상: 할슈타트 전경)
산에서 내려와서
마을 좀 더 둘러보고
6시 15분 출발하는 막배를 타러 갔다.
6시에 갔는데, 이미 줄이 길다.
정각에 배가 출발했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직 선착장에 많이 남아 있다.
1박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거나,
버스나 다른 교통편으로 돌아갈 사람들인가 보다.
이제 안개가 많이 걷혀서,
할슈타트 풍경이 좀 더 선명해졌다.
떠나기가 더더욱 아쉽다.
(동영상: 배에서 본 할슈타트)
(동영상:배에서 본 할슈타트 2)
배에서 내려서 기차를 기다렸다.
할슈타트 기차역에서 6시 48분 기차를 탔다.
올 때처럼 Stainach-Irdning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Obertraum까지만 가는 기차였다.
다들 내리고 나만 앉아 있는 걸 깨닫고,
깜짝 놀라 허겁지겁 내려
역에 있는 직원분에게 물어보니,
그라츠 갈려면
거기서 7시 28분 기차를 타야 한단다.
그런데 순간 스마트폰 충전하려고
기차 안 전기플러그에 꽂아두고
그냥 나온 게 생각나서
부랴부랴 다시 들어가서 뽑아 들고 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기차는 어디론가 출발했다.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잠이 부족해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 실수를 했나 보다.
기차 탈 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았길래,
그 동네는 어떤가 둘러보러 갔다.
가까이에 호수는 없는 듯 보이지만,
역시나 목가적인 예쁜 시골마을이다.
사람도 별로 없고 조용하다.
멀리 가지 못하고,
기차역 근처를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좋다.
7시 28분에 무사히 기차를 탔고,
8시 15분쯤 Stainach-Irdning에 내려서,
바로 옆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8시 21분 기차를 타고 무사히 그라츠로 돌아왔다.
예전에 여길 다녀온 내 지인도 그랬었고,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한국어 글에는
감탄과 찬사 일색이던데,
난 솔직히 할슈타트가 그렇게까지 좋진 않았다.
물론 소문처럼 예쁘긴 했지만,
그냥 그게 다다.
일부러 거길 다시 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성공 후엔 모든 것이 다 성공의 이유가 되고,
실패 후엔 모든 것이 다 실패의 이유가 된다더니,
다들 좋다는 할슈타트가
난 왜 그냥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모든 게 다 그 이유가 된다.
그냥 가장 단순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할슈타트 가기 전에 너무 기대를 해서
실물이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잠을 많이 못 자
약간 맹한 상태라서
남들 다 느낀 걸 제대로 못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간 날 따라 날씨가 안 좋아서,
비가 계속 오고,
안개 때문에 산꼭대기에서 본
마을 전경이 선명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덜 아름다운 풍경을 봐서,
인생샷을 못 찍어서 그랬던 것도 같다.
그리고 바로 그 전주에
훨씬 더 큰 노르웨이 피오르드에 가서,
훨씬 더 오랫동안 질리도록 보고 와서,
할슈타트 호수가 너무 작아 보이고,
그림 같은 풍경에도 면역이 생겨 그랬는지 모른다.
아님 할슈타트가 오랫동안 머물러야 좋은 곳인데,
내가 너무 짧게 체류해서
진짜 매력을 못 느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쩜 할슈타트가
요새 내 여행패턴과 안 맞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예전엔 그냥 예쁜 거, 좋은 거 구경하려 하는
“관광을 위한 여행” 좋아했는데,
요새는 뭔가 다른 목적으로 가서
관광은 덤으로 하는 편이고,
관광객들이 가는 공간뿐 아니라,
여행안내 책자에 안 나오는
현지인의 공간을 둘러보는 걸,
남들이 다들 좋다고 하는 데 말고,
미처 예상치 못한 델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할슈타트는 보기에 너무 예쁜데,
볼 거, 할 거, 갈 데가 너무 딱 정해져 있어서,
거기서 벗어난 무언가를 하기 어렵고,
마을은 너무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라,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예쁜 테마파크에 입장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없고,
얼른 보고 떠나야만 할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그림 같은” 먼 풍경은 아름다운데,
가까이 다가갈 수 없으니,
내가 그 공간을 직접 누릴 수 없는 그 공간은
직접 봐도 여전히 그냥 “그림” 같았다.
할슈타트가 너무 잘 꾸며놓은 관광지인 것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왜 나 자신이 흔한 관광객 주제에
관광객이 많은 곳도 싫어하고,
관광객 취급받는 것도 싫어하는지 모르지만,
인공적으로 꾸며놓은 게 많은,
그리고 관광객이 너무 많은,
너무 대놓고 관광지인 데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할슈타트엔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인공적 설치물들이 가득하고,
(특히 기념사진 찍게 만들어 놓은 Skywalk가
그런 구조물의 클라이맥스였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서,
내가 외국에 여행을 온 건지,
한국에 돌아간 건지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난 한국인들한테 그렇게 유명한 곳이니,
당연히 할슈타트가
유럽인들에게 핫한 여행지겠거니 했는데,
이탈리아 친구 키아라도,
크로아티아어 선생 밀비야도,
헝가리 친구 라우라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나마 뭔가를 알고 있는 라우라가 한 반응은
“거기 무덤이 특이하다더라”
정도였다.
내가 할슈타트 간다고 했을 때
유럽 친구들이 그런 덤덤한 반응을 보인 건,
아마 그 정도의 경치는
할슈타트 말고도 유럽에 많기 때문에,
특별히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지 않고서야
유럽인들은
풍경을 보러 일부러 거길 가지는 않기 때문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슈타트가
오스트리아의 중요 관광명소가 된 건,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 소금광산 때문일 텐데,
난 예전에 폴란드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가봐서
그것도 별로 새롭지 않았고,
사실 좀 더 예술적인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이 더 마음에 들었다.
분명 이 알프스 산맥 근처엔
그런 멋진 전망의 예쁜 유럽 마을이 엄청 많을 텐데,
소금광산에 관심이 없고,
희한한 무덤에도 관심이 없고,
할슈타트의 역사적 가치에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 붐비는 곳에 가서
관광객에 부대끼며,
줄 서서 기다리며,
줄 서서 기념사진 찍고,
줄 서서 밥 먹으며,
시간과 체력을 허비하고,
정형화된 관광지용 서비스를 받고,
주변 동네보다
비싼 관광지 물가를 감당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크기나 생김새는 알프스 시골마을이지만,
실제로는 뭔가 익숙한 무언가인 할슈타트보다는
오히려 난
집에 오는 기차 갈아타면서 잠시 구경했던,
그 조금 덜 예쁜 "진짜" 시골마을을
조용히 천천히 한가하게 걸어 다니는 게 좋았다.
그리고 구불구불 산길을 천천히 가며,
멋진 자연을 보여주던,
조금은 복잡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던
느린 기차 여행이 좋았다.
가는 기차에서 동영상을 찍었는데,
뭐 그냥 대충 찍어도 이런 풍경이다.
(동영상: 할슈타트 가는 길 1)
(동영상:할슈타트 가는 길 2)
이건 할슈타트에서 본 기차 가는 모습이다.
대강 이런, 딱 구경하기 좋은 느긋한 속도다.
(동영상: 할슈타트 지나가는 기차)
그래서 난 할슈타트 주변 동네나
다른 오스트리아 시골마을은 어떨지가 궁금해졌다.
아마도
한 번도 주류이거나 인싸였던 적 없던 나에겐
멋진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인싸 여행지 할슈타트보다는
그냥 발음하기도 어려운 낯선 이름을 가진
좀 더 조용한 시골이 더 어울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