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 깊이 숨은 소금 도시 찾기
인터넷에 "비엘리츠카"를 검색하니
"비엘리츠카 스톤솔트"가 나온다.
이게 그 비엘리츠카 맞나 싶어 클릭해봤더니,
그 비엘리츠카 맞다.
몇년전 폴란드그릇을 한국에서 파는 것에 놀랐는데,
비엘리츠카 산 소금까지 판매되는지는 몰랐다.
한국사람이 폴란드라는 나라를 잘 몰라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양국간에 교류가 있었던 거다.
공산정권 붕괴하고 1990년대 많은 한국 회사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대우가 폴란드에 진출했기 때문에
폴란드 사람들은 한국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는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난 사실
크라쿠프 근처에
비엘리츠카 소금 광산이 있다는 건
2008년 크라쿠프에 가서야 알았다.
이건 어떻게 보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나의 여행습관인데,
어느 순간부터 난 여행 갈 때
그 도시에 대한 정보를 미리 다 알고 가는게 아니라,
현지 사람들이 좋다는 곳에 우선 가서
뭐가 좋은지를
그곳에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다.
여행을 목적으로 외국에 가기 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갔다가
부수적으로 여행을 하게 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여행만을 목적으로
특별한 다른 이유 없이 낯선 곳으로 떠나더라도
여행 구력이 늘어갈수록
낯선 곳에 대한 기대나 두려움이 줄어들게 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잘 모르고 가서 만나게 되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에 크게 감탄하고,
실망할 겨를이 없이
거의 항상 만족을 느끼게 되는 건
그런 습관의 가장 큰 장점이고,
그래서
처음 가는 도시는 항상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여행 안내 책자에 쓰여 있는
남들 가는 데까지만 가서
"딱" 겉모습만 보고 오게 된다는 점,
그래서
뭔가 겉보기엔 아름답지 않지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가
거기 어딘가에 있었다는 걸 나중에 알고
'아, 거길 갔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게 되는 게
가장 큰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비엘리츠카(Wieliczka)는 크라쿠프 근교의 도시다.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크라쿠프 남동쪽에 그야말로 딱 붙어 있다.
크라쿠프 시내에서 10Km 거리라고 한다.
이런 크라쿠프 바로 옆에 붙은 근교 도시가
유명 관광지가 된 건,
2015년 현재 인구 약 22,000명의 작은 위성도시가
그 50배 정도가 되는
연간 약 백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게 된 건,
여기에 소금 광산(kopalnia soli, salt mine)이 있기 때문이다.
바다가 아닌
땅 속 깊숙한 곳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희귀한 구경거리인데다가
1978년에 이곳의 소금 광산이
UNESCO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고,
1994년에는 폴란드 정부로부터
비엘리츠카 도시 자체가
역사적 기념비(pomnik historii, historical monument)로 지정되어,
대내외 정책적으로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사실 이렇게 땅에서 소금이 나는 소금광산이
폴란드 비엘리츠카의 전유물은 아니다.
미국, 에티오피아, 파키스탄이나
루마니아, 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보스니아, 러시아 등 많은 유럽 국가에
소금광산이 있는데,
비엘리츠카는 중세시대부터 존재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 중 하나인데다가
(가장 오래된 건
폴란드 "보흐니아(Bochnia)"의 소금광산인데
이 또한 2013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역사적 가치로 인해
크라쿠프 구시가와 더불어
1978년 12개의
최초 UNESCO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되면서
일찍이 관광지로 개발될 명목을 얻고,
폴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관광도시인
크라쿠프의 근교라는 지리적 이점도 가지고 있어,
중요 관광지로 개발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엘리츠카에서 소금이 채취되었다는 기록은
9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그 때 이 곳의 거주자들은
슬라브족이 아니고 켈트족이었다고 한다.
당시 켈트족은 지금처럼
땅 속 깊숙이 들어가서 소금을 "캐낸" 것이 아니라
이곳의 물을 증류해 소금을"얻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곳에 슬라브인들이 점점 많이 유입되고,
11세기 크라쿠프가 폴란드의 수도가 되면서
더 많은 슬라브인들,
즉 폴란드인들이 이곳에 몰려와
본격적으로 폴란드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3세기 들어
땅 속에서 소금을 채굴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소금 광산"으로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와
최초의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타이틀로 인해,
오시비엥침(Oświęcim)과 더불어
크라쿠프의 관광객들이 한번쯤은 들르는 곳이
소금광산인데,
난 2008년에 방문했었고,
크라쿠프 시내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갔다.
그 때 어떻게 갔었는지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2016년 현재 자료에 따르면,
크라쿠프 "중앙역 서쪽(Dworzec Główny Zachód)"에서
304번 버스를 타고 가고,
20분만에 한 대씩 출발하며,
요금은 버스기사에게 4-6즈워티를 내게 되어 있다.
기차로도 갈 수 있는데 20분 정도 소요되며,
크라쿠프역에서 타고 Wieliczka역에서 내리면 되고,
1시간에 한 대꼴로 운행된다고 한다.
나는 그 때 혹시 몰라서 아침 일찍 갔는데,
밖에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더니
매표소엔 아침부터 줄이 꽤나 길었다.
소금 광산은 혼자 입장할 수 없고
반드시 가이드를 동반해야 하는데,
이에 따라 입장권은 크게 두 종류였다.
폴란드어 가이드와 그밖의 외국어(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가이드.
2016년 자료를 보니
외국어 가이드 중에 스페인어도 추가되어 있다.
그런데 스페인어 가이드와 함께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라
하루에 한번 혹은 두 번이고,
비성수기엔 그나마도 아예 없다.
전세계적으로 스페인어 사용인구가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의외다.
요금은 폴란드어 가이드가 좀 많이 싸다.
2016년 현재
폴란드어 가이드 일반 55(약 15,000원), 할인 39즈워티(약 12,000원),
외국어 가이드 일반 84(약 24,000원), 할인 64 즈워티(약 18,000원)인데,
2008년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리고 2008년 여름엔 그런 규정이 없었는데,
한국사람들의 블로그에 보니,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기 위해선 10즈워티(약 3,000원 정도)를 추가로 내야 한다고 써 있고,
"비엘리츠카 소금 광산" 공식홈페이지에도
어김 없이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
폴란드 여행지에서
그런 규정이 있는 곳에 들어가보면
방문객의 신체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사진 찍을 수 있는 허가권 같은 것을 붙이게 하고,
그게 없는 사람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면
직원들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못 찍게 한다.
그러니 사진을 찍고 싶으면
미리 사진비를 내고 들어가는 게 나을 거다.
개장 시간은 동절기 8:00-17:00,
하절기 07:30-19:30이다.
다음은 "비엘리츠카 소금 광산" 공식홈페이지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엘리츠카 소금 광산"이 매우 중요한 관광지라
크라쿠프 시내 곳곳의 여행사에
어김 없이 Wieliczka가 쓰여있고,
관광안내센터에서도 그곳으로 가는 법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니,
크라쿠프 현지의 관광안내센터나 여행사에 문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당시에 폴란드어 가이드 쪽을 선택했었다.
물론 폴란드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알아들었겠지만,
폴란드어 가이드가
가격도 싸고,
시간대도 더 많고,
어차피 가이드가 말하는 내용을
100% 알아 들을 필요는 없는데다가,
그 쪽이 더 금방 사람들이 모여서
더 금방 들어갈 수 있어 보였다.
가이드의 언어를 선택해서
표를 사고 줄을 서 있으면
안전모를 쓴 담당가이드가
20명 정도를 이끌고 광산으로 들어간다.
가이드를 따라
어두운 계단을 타고 한참을 걸어내려가다보면
정말 소금 광산이 나온다.
그 계단이 전부 9층 정도 깊이란다.
지하 깊숙이 들어가다 보니
지상이 땡볕이 쬐는 한여름이어도
그 아래는 기온이 낮다.
여름에도 무언가 걸칠 수 있는
긴팔 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지금도 소금이 나오는 광산이라고 하는데,
(물론 그러니까 비엘리츠카 스톤솔트 같은 상품의 판매가 가능할거다)
여러 개의 방들이 연결되어
소금으로 된 지하도시를 형성하고,
그 방마다 광부들이 만든 소금 동상을 세우거나
광부들이 채굴할 때 쓰던 기구들을 전시하거나
그 밖에 다른 볼거리를 만들어 놓아서,
그런 흔치 않은 구경거리를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소금광산 투어의 하일라이트는
역시나 성녀 킹가(Kinga) 성당인데,
소금광산의 광부들이 사용하던 도구와 기계들,
그리고 소소한 소금 조각들을 보며
감탄하다가
거의 마지막에
성녀 킹가 성당에 도착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운동장처럼 혹은 무도회장처럼 드넓은 공간에
어딘지 모르게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화려한 대형 샹들리에가 몇 개씩 걸려있고,
소금벽에는
여러가지 종교적인 소금부조와 소금조각들이
장식되어 있다.
그 깊은 곳에 그런 걸 만들 생각을
도대체 누가 한 걸까?
킹가 성녀(St. KInga)는 13세기 헝가리 공주로
폴란드 왕과 결혼했는데,
왕비로 있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왔고,
남편이 죽자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선행과 성스러운 행보로 인해
17세기에 성녀가 되었다.
킹가 성녀에 대한 유명한 전설 중 하나가
그녀가 헝가리의 한 소금 광산에서
약혼 반지를 버렸는데,
그걸 폴란드의 비엘리츠카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음 소금 조각이 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비엘리츠카의 광부가
그녀에게 반지를 전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가이드를 따라 약 3시간 정도
[정확히 얼마정도 걸렸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는데,
안내 책자를 보니 3시간이란다]
소금 광산을 다 돌아보고 나면
영화에서 새까만 얼굴의 광산 인부들이
타고 오르락내리락했던
그 엘리베이터와 똑같이 생긴
2층짜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기대했던 것보다 볼거리는 많았지만,
난 사실 지하 공간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 9층 깊이의 지하에 3시간 동안 있는게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어릴 적 영화에서
광산이 무너지는 장면을 본 기억 때문인지,
내 머리 속에는 무슨 영화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영화의 한 장면이 자꾸 떠올랐고,
매우 안전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다.
그래도 특이한 경험이었고,
당시에는 그 투어가 꽤나 만족스러웠는데,
나의 개인적인 공간적 취향과 기억 때문인지
그 다음에 또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었다.
그냥 한 번 정도 가면 좋을만한 장소다 싶었다.
그래서 2016년에 크라코프에 두번째로 갔을 때도
Wieliczka를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전혀 아쉬움이 없었는데,
이 포스트 올리면서
사진도 다시 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하다보니
소금 광산 투어를
한 번 더 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때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아는 지금은
더 많은 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쩜
요새 내 생활이 너무
일상의 연속이라
어딘가 아무데나 떠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려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이상하게도 현재에 의해 쉽게 재편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투어는
꽤 특별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