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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Nov 05. 2016

폴란드 대표 관광지 크라쿠프(Kraków)

모든 이의 관광지에서 나의 크라쿠프를 찾다.


크라쿠프는 폴란드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바르샤바에서 기차를 타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지도출처:http://natropieweuropie.blogspot.kr/2014/08/krakow-czyli-jedna-z-pere-polski.html)


영어로 Cracow라고 써서

한국 사람들 중에도

'크라코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의 수도를

영어 화자가 "쏘울",

프랑스어 화자가 "쎄울"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쏘울"이나 "쎄울"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니듯,


Kraków를 "크라쿠프" 혹은 "끄라꾸프"라고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 우리가

굳이

"크라코우"라고 부를 필요는 없어보인다.


크라쿠프(Kraków)라는 이름은

크라쿠프를 세운 "크라크(Krak)"에서 나왔다.


폴란드어 어미 -ów는 "-(들)의"라는 뜻이므로,

단어의 내적 형식만으로는

"Krak(들)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크라크의 전설은 다른 포스트에서 언급했다.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크라쿠프에 대한 첫 기록은 10세기이며,


1038년부터 1795년까지

약 750년 간

폴란드왕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수도였다.

(중간에 잠깐 Płock, Poznań이 수도가 된 적도 있었다)


즉, 현재 폴란드 수도는 바르샤바지만,

가장 오랫동안 폴란드 수도였던 곳이 크라쿠프다.


폴란드 역사가 시작된 게 9세기 후반이니까,

폴란드 역사의 약 2/3동안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 셈이다.

 

따라서

폴란드의 오랜 역사와 얼이 듬뿍 담겨있고,

외견상으로도 가장 폴란드적인 도시다.


약 120년간

폴란드가 세계 지도에서 사라져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되었을 때,

크라쿠프는

오스트리아 혹은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았는데,


당시 독일(프로이센)과 러시아가

폴란드 문화를 억압하며 간섭했다면,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는

폴란드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무시했던 건지,

아니면 담대한 대국의 품격을 보여준 것이었는지,

폴란드 문화 발전을 억압하거나

무언가를 금지하거나 방해하거나 하지 않고,

규제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고 한다.


폴란드를 해방시켜줄거라 기대했던 나폴레옹이

전쟁에 패배하여 물러나고 나서

전승한 오스트리아가

다시 찾은 크라쿠프에

자유도시(Free, Independent, and Strictly Neutral City of Kracow/ Wolne, Niepodległe i Ściśle Neutralne Miasto Kraków z Okręgiem)의 지위를 주기도 해서,

명칭은 '도시'였지만,

거의 독립된 '공화국'이나 마찬가지의 지위를

약 30년간(1815-1846)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폴란드인들은

1846년 봉기를 일으켰고,

(완벽한 자유와 주권이 아니라면

사실 그건 자유도 주권도 아니니

폴란드인들의 이런 시도는 당연하다)

그게 실패해서

다시 오스트리아의 일부가 됐는데,

그 때도 크라쿠프의 명칭은

크라쿠프 대공국(Grand Duchy of Cracow / Großherzogtum Krakau/ Wielkie Księstwo Krakowskie)이었다.


이름에서부터 오스트리아가 크라쿠프를 어떻게 대했는지가 드러난다.


그래서 당시 폴란드의 유명 문화계 인사들이

크라쿠프로 몰려들었다고 하고,

사실 그  때뿐 아니라 20세기에도

크라쿠프에는 중요 문화계 인사들이 많이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폴란드 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Sławomir Mrożek)와

가장 좋아하는 폴란드 가수

그줴고쥐 투르나우(Grzegorz Turnau)도

크라쿠프 출신이다.


당시 폴란드를 삼분해서 통치했던 세 나라 중

러시아는 그 억압이 가장 심해서

심지어 폴란드어를 억압하고

교육기관에서 폴란드어 대신 러시아어를 교육하고,

폴란드어로 된 책도 불태우고 했다.


뭔가 한국의 근대사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당시에 러시아의 지배 하에 놓였던

대표적 도시가 바르샤바다.


그래서 퀴리부인과 같은

그 당시 바르샤바인들은

폴란드어에 대한 애착을 유독 많이 드러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바르샤바가

독일에 대항해서 싸우다가

결국 보복 공습으로 완벽한 폐허가 된 것에 반해

크라쿠프에는 그런 근현대사도 없다.


물론 크라쿠프에

수난과 저항의 역사가 없었다는 건 아니다.


20세기에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크라쿠프 근처에

아우슈비츠 같은 수용소가 세워질 정도로

전세계가 다 아는 수준의 지독한 수난도 겪었고,


물론 "폴란드인답게"

크라쿠프인들도 저항하기도 했지만,

바르샤바인들처럼

거국적으로 크게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히 대대적인 보복 폭격은 안 당했다.


따라서

옛날 크라쿠프 유적은 거의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그래서

관광객이 가서 볼 게 많다.


원래 가진 게 많은데

별로 잃은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흔히 독일어로 "아우슈비츠(Auschwitz )"로 불리는

"오시비엥침(Oświęcim)"도 가깝고,

"소금광산(Wieliczka Salt Mine, Kopalnia soli Wieliczka)"도 가깝고,

자코파네(Zakopane)도 가깝다.


즉 크라쿠프에 가면

크라쿠프 시내 뿐 아니라

그 주변에도 "구경"할 것이 많고,

갈 데도 많다.


그러니 폴란드를 여행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만한 관광지가 없고,

한국에서 나오는 소위 "동유럽 일주" 여행 상품에도

(비록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인들은

스스로를 "중부유럽"으로 일컫지만)

폴란드 도시 중에선 크라쿠프가 대표로 들어간다.


폴란드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도 크라쿠프다.


만약 누군가가 2-3일 정도

폴란드를 들른텐데

어느 도시가 좋겠냐고

내게 물으면

나도 아마 "크라쿠프"라고 대답할거다.


여행 가성비가 가장 좋은 폴란드 도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에겐 크라쿠프가 별로 매력이 없었다.


싫다거나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 아니라,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마음이 가는 폴란드 도시는 아니란 거다.


크라쿠프는 여러모로

가장 폴란드적인 도시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이 좋아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냥 거긴

"관광객들의 도시"인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어디 가나 관광객이 붐비고,

다른 폴란드 도시에서는 많이 부딪히지 않는

동양인 관광객도 많다.


폴란드어도 어느 정도 하고,

폴란드도 어느 정도 아는

나는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 보러 온

그 수많은 관광객들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그들과 구별되고 싶은데,


크라쿠프에서는

나도 그냥 흔한 관광객이 되고,

사람들은 다른 흔한 관광객을 대하듯

나에게도 당연히 영어로 말을 건다.


[관광지 아닌 다른 폴란드 도시에선

내가 Dzień dobry라고 인사를 건네는 순간

그들도 폴란드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겉보기엔 똑같지만

적어도 속은 다르고 싶은 마음에

그 흔한 관광객들과 달리

난 크라쿠프에 마음을 다 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2008년에 처음 갔을 때 갔던

"오시비엥침(Oświęcim)"과 "소금광산(Wieliczka Salt Mine, Kopalnia soli Wieliczka)"이

인상깊긴 했는데,


서로 다른 이유에서

[이건 다음 포스트에서 좀 더 언급할 생각이다.]

두 군데 다

한번 갔다오니

별로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그냥 한 번이면 충분한 것 같다.


물론 크라쿠프 자체가

그 구시가가 매우 아름답긴 한데,

그 시각적 아름다움이

다음에 반드시 또 가봐야할 정도는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유럽 도시의 구시가는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다들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매우 이국적으로 다가와서

다들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쩜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지도 모르는데

나는 어느 도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좋아하거나

혹은 다시 가지는 않는다.


무언가가 "보기" 좋아서가 아니라

"살기" 좋고,

특별한 "느낌"이 있고,

"할 게" 있고,

"만날" 사람이 있고,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무언가 "정 붙일" 곳이 있어야

또다시 가게 되는데,

2008년 난 크라쿠프에서 그런 걸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바르샤바에서 5주 동안 있으면서

바르샤바에 너무 정이 많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쩜 내 생각엔 이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은데,

2008년에 2박 3일 동안 있으면서,

하루는 "오시비엥침(Oświęcim)",

하루는 "소금광산(Wieliczka Salt Mine, Kopalnia soli Wieliczka)" 가느라

정작 크라쿠프 자체와 친해질 여유가 별로 없어서 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2013년에 다시 폴란드 갔을 때는

크라쿠프에 가지 않았다.


한 번 간 도시이고,

딱히 정 붙일 곳도 없으니,

다시 거기에 가야만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그러다 2016년에 Zakopane를 가면서

다시 한 번 들르게 되었다.



자코파네(Zakopane) 관련 포스트에서

이미 쓴 것처럼

바르샤바에서 자코파네 가는 빠른 교통편이 없어서

크라쿠프에 들렀다 가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보통 난 여행가면

한 도시에서 2-3일 이상 머무르는 편인데,

자코파네 갔다 오는 길에 들르는 크라쿠프는

일정을 1박 2일로 잡았다.


그나마 자코파네에서 늦게 출발해서

크라쿠프에 밤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박 1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근데 이번에는 크라쿠프가 좋아져서

그 1박 1일 혹은 1박 2일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사람이 좋아지는 계기나 마찬가지로

크라쿠프라는 도시를 좀 더 좋아하게 된 건

사실 아주 작은 거였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그 계기가 아니고

다른 게 있었는데

내가 못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역시나

사람이 갑자기 좋아지는 계기나 마찬가지로 말이다.


우선 일차적으로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크라쿠프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크라쿠프에 도착한 저녁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는데,

비오는 밤에 만나는 크라쿠프 구시가가

해가 쨍쨍 내리쬐는 맑은 날의 모습과는 또다른

독특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이미 "구면"이라

8년만에 보는 구시가가

무척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밝은 아침에 나가서 보게 된

구시가는 여전히 아름답고

널따랗게 열려 있고,

유럽 어느 오래된 도시에나 있는 구시가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크라쿠프만의 새초롬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두~둥~

구시가 광장에서 Matras라는 서점을 발견했다.


바르샤바에서도 여러 군데에서 본 서점 체인이라

처음엔 그냥 아무 느낌 없이 들어갔는데,

그 입구에 이런 게 써 있다.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이 건물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폴란드어]

이 건물에서 유럽 최초의 서점이 1610년에 설립되었다. [영어]

1610년 Franciszek Jakub Mercenich
1875년 Gebethner i Spółka
1998년 Matras


이름은 바뀌었지만,

계속해서 이 자리에 서점이 있었나보다.

무려 400년을 말이다.


사실 유럽 최초의 서점이

폴란드 크라쿠프라는 도시에 있는게

신기하긴 하지만 놀랍진 않다.


폴란드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고

서점도 곳곳에 많이 있다.


물론 폴란드도 역시나

온라인 서점이 영역을 넓혀가면서

오프라인 서점들은 점점 축소되어 가고,

그래서 바르샤바에선

내가 좋아하던 서점들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폴란드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책을 많이 읽고,

시인이나 소설가 같은 사람들이

매우 중요한 문화계 인사

혹은 지식인 그룹으로 간주되어

폴란드인들 사이에서 널리 유명하다.

 

아마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누구인지,

혹은

가장 최근에 읽은 한국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 선뜻 대답을 못할 그런 나라에서

"노벨상"을 못 받는 게

단지 "번역"의 문제인 것처럼,

또는

"한국어는 번역할 수 없다"라는

이상한 이유를 대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세상에 쉽게 혹은 완벽하게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언어는 없으며,

문학의 저변이 좁은 그런 나라에서

위대한 문학이 창작되리라 기대하는 건

사실 도둑놈 심보인 것 같다.


먼저 읽는 사람이 많아야

쓰는 사람도 많아지고

그래야

거기에 "잘 쓰는" 사람도 많아지지 않겠는가?


폴란드의 서점과 문학 얘기는 나중에 기회되면

다시 좀 더 이야기하고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Matras의 홈페이지다.

영문 사이트 없이

폴란드어로만 되어 있는 게 좀 아쉽지만,

폴란드어를 몰라도 google 지도는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크라쿠프 구시가의 Matras 서점의

저 심상치 않은 내력을 보고

이 Matras라는 서점이 갑자기 확 좋아지고,

이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을 품고 있는

크라쿠프라는 고풍스러운 도시가

또 확 좋아졌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내부도

역시 원조라 그런지,

바르샤바 곳곳에 있는

Matras 체인 서점들보다 훨씬 좋고,

아마 400년이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형성되었을

뭔가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매력적인 공간이다.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한국의 대형 서점보단 아담하지만,

그래도 꽤 크기가 있었는데,

넓기보다 길었다.


좁고 긴 복도 같은 서점 내벽에

분야별로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마치 모험을 떠나는 탐험가가

보물을 찾아 동굴 속을 걸어들어가는

그런 느낌으로

진열된 책들을 둘러보며 걸어 들어갔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책장 앞에는

편안한 의자와 작은 탁자가 마련되어 있고,

심지어 작은 스탠드까지 앙증맞게 달려 있다.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처음엔

'참 읽고 싶은 공간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뭔가 내가 인지하지 못한 어떤 요소가

내가 책을 사도록 심리적으로 자극했는지,

난 원래 여행지에서 작은 기념품도

거의 안 사는 편인데,


그리고

배낭에 빈 자리가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기서 책을 5권인가를 사서

바리바리 비닐 쇼핑백에 싸들고 바르샤바로 향했다.


그 중 두 권은 Matras 서점 바깥에 걸려 있던

크라쿠프 그림을 그린

만화가 안드제이 믈레치코(Andrzej Mleczko)

성인용 그림책이었다.

즉 정치, 사회나 성 같은 걸 소재로

만평을 그린 책이었는데

하드커버라 무게가 꽤 됐다.


자필 서명이 들어 있는 거였는데,

아마 밖에서부터 그의 Kraków그림을 보면서

사고 싶어졌던 마음이

"자필 서명"에서 결국 구매로까지 이어졌나보다.


여기서 산 책은 다른 책들과 함께

바르샤바에서 우편으로 한국에 부쳤는데,

1주일 정도 후에 도착했다.


아무튼 Matras의 좁고 긴 복도의 끝에 도달하면

아래 사진 같은 공간이 나온다.


소파도 좀 더 푹신해보이고,

나무 천장도 멋스러운데,

사진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까페가 나온다.


그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이

서점 내부에서 마실 수 있는 거였는지,

아님 그 카페 안에서만 마셔야하는 건지는

확인을 못했는데,

뭐 둘 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아늑한 공간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이 서점이 맘에 들었던 게 아닌 듯

이렇게 다들 한번씩 사진들을 찍곤 했다.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그런데 사실 그렇게 사진 찍는 사람들보다

더 신기한 사람들은

그렇게 옆에서 사진을 찍어대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미동도 없이

눈길 한 번 안 주고

책읽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위의 사진처럼

막다른 벽에는 사진과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거기에서 뒤를 돌아보니,


내가 방금 지나온 그 좁은 길 위

그 낮은 천장 위에

폴란드 문학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그리고 거기서 2009년 노벨상 수상자인

루마니아 태생 독일 소설가

헤르타 뮐러(Herta Müller)의 사진과 싸인도 발견하고,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내가 좋아하는 폴란드 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사진과 싸인도 발견하고,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양들 아래 지하실(Piwnica pod baranami)"

사진마저 발견하고 말았다.

(2016년 7월, Matras 서점, Stare Miasto, Kraków. Poland)


"양들 아래 지하실(Piwnica pod baranami)"

예전에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에 대한 글을 읽다

알게 된 곳인데,


이름 그대로 정말 "지하실"에서 모여

스탠딩 코미디도 하고

시낭송도 하고

문학 얘기도 하고,

영화 얘기도 하고

그랬던

크라쿠프 예술가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사진 옆에 쓰여 있는 연도가 2003년이다.

그럼 이건 예전에만 존재하던 모임이 아니고

최근까지 활동을 했던 곳인거다.


거기에까지 생각에 미치자

"양들 아래 지하실"이 아직까지 있으면

거길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책을 사면서

서점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양들 아래 지하실"이 아직 존재하나요?"


직원이 멀뚱멀뚱 쳐다보기에

급하게 덧붙였다.


"아님 지금은 없나요?"


그 말에 직원이 미소 지으며

"지금도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하고는

나더러 따라오라고 하더니,


구시가 광장의 옆쪽을 가리키며

"저기"란다.


아, 정말?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 쪽으로 갔다.


분명히 그 서점 직원이 바로 옆이랬는데,

그 이름이 쓰인 간판이 안 보여서

지나가는 남자한테 물어 보려고 말을 걸었다.


그는 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기도 크라쿠프 사람 아니라서 모른다더니,

내가 미처 실망할 겨를도 주지 않고

황급히

근데 어딜 찾냐고 되물었다.


내가 "양들 아래 지하실"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거라면 저 쪽에 있다"며

방향을 일러줬다.


좀더 바깥쪽에 있는 건데

내가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서 물어본 거였다.


그래서 그가 일러준 쪽으로 갔는데,

여전히 못 찾는 나.


나중에 알고보니 "양"의 형상을 찾았어야 했는데

글자를 찾아서 계속 못 발견했던 거다.


그래서 결국 근처에서 전단지 나눠주는

어여쁜 폴란드 아가씨에게 다시 물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여기"라며 바로 옆의 입구를 가리켰고

그녀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던

명함같은 질감과

딱 그만한 크기의 카드를 하나 나에게도 줬는데,


그건

바로 "양들 아래 지하실"

10% 할인 쿠폰이었다.


"양들 아래 지하실"이 속하는 범주는

캬바레(Kabaret)인데,


예전에 폴란드 친구한테 듣기론

폴란드의 kabaret에서는

정치나 사회를 풍자하는

스탠딩코미디를 한다고 했었다.


근데 그 뿐 아니라

bar나 cafe처럼 술과 음료도 파나보다.

하긴 술이 들어가야

좀 더 자연스럽게 그런 얘기가 나올거다.



그녀가 서 있던 그 건물 위를 올려다보니,

정말

양머리가 세 개 있었다.

그래서 이름이 "양들 아래 지하실"이었던 거다.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Kabaret "양들 아래 지하실"은

1956년 5월 26일 피오트르 스크지네츠키(Piotr Skrzynecki)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고,

처음엔

크라쿠프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소였다고 한다.


멀지 않은 곳에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야기엘론스키 대학(uniwersytet jagielloński)"이 있다.


그러다가 거기에서

젊은 작가, 음악가, 화가 등 예술가들이

공연을 하거나 자기 작품을 발표하게 되면서

크라쿠프 문화 예술의 중심이 되었고,


젊은이들이 모였으니

기성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당연히 나왓을테고,

당시 독재 공산 정부를 풍자하는

스탠딩 코미디를 하면서

폴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 코미디 바(kabaret)가 되었다.


즉 이곳은 폴란드, 특히 공산 폴란드의

문화예술과 저항의 상징인 것이다.


여기의 예술 스타일을 폴란드인들은

"지하실(piwnica) 스타일"이라고 불렀는데,

현재 이 말은

Underground 예술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전에 아는 폴란드 선생님과

한국 연극을 보러 갔을 때,

뭔가 비주류적인 실험적인 느낌이 강한

그 공연을 보고,

"양들 아래 지하실"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은

내가 당연히 그게 뭔지 모를거라 생각하고

말을 꺼냈는데,

내가 알고 있어서 좀 놀란 눈치였다.


어쩜 그 때 내가 모른 척했으면

그 곳에 얽힌 다른 재밌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성급하게 안다고 해서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곳은

1950, 1960년대 폴란드 jazz의 중심이기도 했고,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져서  

1996년부터 매년 여름

"양들 아래 지하실 여름 재즈 페스티벌(Letni Festiwal Jazzowy w Piwnicy pod Baranami)"

이 개최된다.


정통 재즈는 아니지만 약간 jazzy한 음악을 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폴란드 가수

그줴고쥐 투르나우(Grzegorz Turnau)

여기 출신이란다.

 

2016년 7월 내가 여기 간 날도

8시에 재즈 공연이 있었는데,

난 그날 저녁 바르샤바로 돌아가야해서  

결국 아쉬운 마음 가득

저녁 기차를 타야했다.


1997년 설립자가 사망하자,

"양들 아래 지하실"도 없어질거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현재까지도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를 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건 참고로 1997년 6월 13일자 Independent 지에 나온 Piotr Skrzynecki에 대한 기사인데,


이곳의 설립자인 피오트르 스크지네츠키(Piotr Skrzynecki)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한 폴란드 신문은

"End of an Epoch (한 시대의 끝)"라는

헤드라인을 잡고

[google 검색을 해봤는데 어떤 신문인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장례식에서는 누군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It was much more than a cabaret. It was a breath of freedom and of ironic distance to the reality which surrounded us." (그것은 카바레 이상의 공간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과의 아이러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자유의 숨결이었다)


[근데 이 말한 사람이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닌지,

아니면 영어로 번역할 때 의역을 많이 했는지

누가 그리고 폴란드어로 정확하게 어떻게 말했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의미 있는 멋진 공간을

폴란드인들이 없어지게 놔둘 리 없고,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행사를 기획하고 개최하고 있으니

아마 "양들 아래 지하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명성을 이어갈 것 같다.

 

60년의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물리적으로 매우 낡았지만,

젊은이들이 꾸준히 새로운 행사를 벌인단 점에서는

그 정신과 에너지는 매우 젊은,

매우 모순되지만 매력적인 문화예술 공간이다.


2016년 여름 당시에는

이런 모든 정보를 다 안 건 아니고,

그냥 크라쿠프에서

아주 중요한 예술가들의 모임이라는 것만,

그리고 거기에

므로제크가 몸 담았다는 것만 알았지만,

그것만으로도 호기심이 동해서

"양들 아래 지하실"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양머리 세개 밑의 문으로 들어가면

이런 안뜰이 나오는데,

아담한 이 공간에서 아마도 봄가을이나 여름엔

공연이나 영화 상영 같은 걸 하는지

작고 낮은 무대 비슷한 나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름밤에 무릎 담요를 하나 가볍게 덮고 앉아,

별을 보며 여기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면

참 좋겠다 싶었다.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위 사진에 파랑색 플래카드엔 왼쪽부터 차례로

저렴한 여름 영화.
제 10회 "양들 아래 극장" 휴가철 영화제.
2016년 7월 1일부터 9월 1일까지. 요금 7즈워티.

라고 쓰여 있다.


"양들 아래 지하실"에 들어가면,

지하실 답게 어둡고

특유의 쾨쾨한 냄새도 난다.


난 좀 이른 저녁에 들어가서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아마 늦은 저녁에 사람이 더 많아지면

담배도 많이 필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그런 중요한 역사와 의미를 가지지 않았으면

그저 그런 낡은 카페처럼 느껴졌을 것도 같다.


크라쿠프 예술문화의 온상답게

곳곳에 영화 포스터, 사진, 그림등이 걸려 있고,

또 벽에 직접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했는데,


무언가 생긴지 오래된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두께와

여러시간대의 서로 다른 전시물이 함께 만들어내는

뭔가 산만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화로운

공간적 풍요와 심정적 온기 같은 게 있었다.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어차피 그날밤

바르샤바행 기차를 타기 전에 요기를 해야해서

메뉴를 훑어봤는데,

마실 건 많지만, 먹을 건 별로 없다.


거의 유일한 먹을 거리가 토스트였다.


그래서

밖에서 받은 10% 쿠폰을 보이고,

커피와 토스트를 시켰는데,

토스트에 씨앗을 뿌려주는 건 특이했지만,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미식가들을 위한 공간이 아닌 건 확실하다.


(2016년 7월, "양들 아래 지하실" bar , Stare Miasto, Kraków. Poland)


다음이 "양들 아래 지하실" 공식 홈페이지다.

단, 여긴 매우 폴란드적 공간이라

관광객이나 다른 외국인이

방문할 확률이 낮아서 그런지

영어로 된 설명은 없다.


그래도

여러 다양한 행사에 대한 안내가 눈에 띄는데,

그 중에는

11월 25일 밤 8시에 개최되는

"60년대식 무도회"포스터가 인상적이다.

부제는 "가을 밤의 꿈"이다.


(Piwnica Pod Baranami 지도, Kraków, Poland)


그렇게 나는 크라쿠프 안 쪽 깊숙이

혹은 폴란드 문화 안 쪽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고,


비록 거기 머문 시간은 1시간이 채 안 됐겠지만,

"양들 아래 지하실"을 통해

무언가 진짜 크라쿠프를 알게 되고,

크라쿠프에 좀 더 가까와진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그 존재를 너무 늦게 알고,

너무 짧게 머물어서 그런지,

그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더 많이 남고

더 애뜻한 마음이다.


만약 다음에 또 세번째로 크라쿠프에 가게 되면

좀 더 오래 머물면서

아마 Matras 서점과 "양들 아래 지하실"을

자주 갈 뿐 아니라,

관광지 말고 다른 또 중요한 공간들을 발견하고,

또 거기에 마음을 붙이게 될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의 관광지에서

나한테 의미있는 특별한 공간을 찾으니,

크라쿠프가

가고 싶은 도시,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가 되었다.


여행을 많이 할수록

발을 움직이는 주동력이

눈과 귀보다

마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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