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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Oct 11. 2016

숨은 보석 폴란드 자코파네(Zakopane)

사실 폴란드 바르샤바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이국적인 문화나

떠들썩한 축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관광지로 크게 매력이 있는 도시는 아니다.


그건 한국인뿐 아니라 다른 유럽인들에게도 그래서

관광객도 별로 없다.


하지만 생활하기에는 꽤 편하고

여러모로 좋은 곳이고,


난 여름의 바르샤바를 아주 좋아해서

2008년, 2013년, 2016년 여름에

폴란드에서 지내는 동안,

항상 바르샤바에 먼저 짐을 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르샤바에만 머문 건 아니다.


2008년에 폴란드에 갔을 때는

계속 바르샤바에 있다가

폴란드를 떠나 우크라이나로 가는 길에

크라쿠프(Kraków)에 들렀었고,


2013년엔 역시 바르샤바에 주로 머물면서,

포즈난(Poznań), 브로츠와프(Wrocław)그단스크(Gdańsk)를 갔다왔다.


2013년 폴란드에 갔을 때

나의 여러 방문목적 중에는

폴란드어를 마스터하고,

폴란드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것이 있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이 두 가지가 병행하기 힘든 것이었다.


폴란드어 수업을 열심히 하게 되면,

다른 지역 여행을 주말에만 해야 해서

사실 여행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고,


여행을 작정하고 제대로 하려면

폴란드어 수업 시간을 줄여야 했다.


그래도

이왕 간 거

두 개 다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보니,

항상 인생이 그렇듯이,

결국 여행도 생각했던 만큼 다 못하고,

폴란드어도 마스터하지 못했다.


그런 걸 다 하기에 6주는 너무 짧았던 거다.

사실 그 둘 중 하나만 하기에도 길지 않은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언어를 6주동안 마스터한다는 게

어불성설이긴 한데,

2008년에 5주동안 있으면서

폴란드어가 많이 느는 걸 경험하고,

6주 정도 공부하면 그보다 더 실력이 많이 늘어서

원어민이 될 줄 알았나보다.


아무튼 그런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폴란드에 갔던 2013년에

내가 여행을 떠나려고 생각했다 결국 못 간 도시가

바로 자코파네(Zakopane)였는데,


내가 "폴란드를 여행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어디어디 가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여러 도시를 읊어댈 때


자코파네(Zakopane) 부분에서

바르샤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며

"자코파네 정말 좋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한국어 블로그들에서

"자코파네"와 관련된 포스팅을 보면,

'삶이 견딜 수 없게 될 때 항상 자코파네가 있다'

라는 폴란드 속담 얘기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근데

나한테 이 말을 해준 폴란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냥 "자코파네 좋다"고 말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마치 그런 말을 내뱉고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곤 했었다.


한국어 블로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 속담이

폴란드어로는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google에서도,

폴란드 대표 포털인 onet에서도 찾아봤다.


나름 폴란드어로 작문한 문장으로도 검색해보고,

그냥 중요 단어들 그러니까

"인생(życie)", "Zakopane(자코파네)", "zawsze(항상)", "nie do zniesienia(견딜 수 없다)"

들만 두어개씩 넣어서도 검색해봤는데,


1-2시간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못 찾았다.


그 와중에 영어 버전은 어찌 어찌 찾았다.

When life gets unbearable, there is always Zakopane.


그래서 '이 문장을 치면 폴란드어로 어떻게 말하는지가 나오겠지'라고 기대하며,

다시 google과 onet을 뒤졌는데,

이번에도 실패다.


나중에 폴란드 친구한테 물어봐야겠다.


그런 말이 있는지,

그리고 있다면 폴란드어로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게 있다면 몇 주나 몇달 후에 이 포스트에 덧붙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건,

그런 말이 있던지 없던지,

영어와 한국어로 된 여행 포스트에 있는 것과 달리,

폴란드인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랬으면 내가 폴란드 사람들한테

이미 여러번 들었어야 했고,


2시간이 아니라

2분 만에 검색으로 발견했어야 했을테니까.


하지만

그런 말을 자주 하건 하지 않건

폴란드인들이 자코파네를 매우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자코파네 좋다는 얘기는

사실 폴란드 가기 전에 이미

한국에 살고 있는 폴란드 친구한테도 듣긴 했는데

딱히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산에 오를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사실 난 평지는 아주 잘 걸어서

몇시간이고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는데,

산은 잘 못탄다.


나에게 등산은 무언가 너무 전문적인 일이고,

산을 생각하면 우선 숨이 찬다.


산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한두 번 산에 간 적이 있는데

매번 너무 힘들었고,

웬만해선 산은 별로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 흔한 등산복도, 등산화도 하나 없고

당분간은 장만할 계획도 없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챙겨서,

차려입고, 차려 신고 가야하는 것도 사실 귀찮고,

좀 심리적으로 걸리적거린다.


정상에 올라가면 그렇게 좋다고들,

마음이 확 트인다고들 하는데,


그냥 비슷한 복장을 하고,

거의 줄을 서다시피해서

한 명씩 차례차례 올라가는 것에서

난 사실 별 큰 자유를,

별 "확 트임"을 못느끼겠다.


등산을 생각하면 그래서 마음이 좀 답답하다.


난 아직 산보다는 바다가 좋다.


나무는 좋은데,

유럽의 숲처럼, 한국의 산림욕장처럼

그냥 평지에 우거진 나무가 좋다.


그래서 자코파네가 좋다는 얘긴 많이 들었지만,

산행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서

선뜻 가지 못했다.


그런데 2016년 여름에 가보니

자코파네의 산은

우리나라 산처럼 오르기 힘들지가 않다.


한국의 산은 가파르고

산행에 기술과 장비가 필요해 보이는데,

(어쩌면 그렇게까지 필요하진 않은데

워낙 뭔가 격식을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이

그런 걸 유난히 챙기는건지도 모르겠다.)


자코파네의 산은 해발고도는 높은데

산 자체는 별로 가파르지 않고,


등산로도 잘 만들어져 있어서

등산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거뜬히 오를 수 있는 그런 산이다.


물론 난 산아래부터 산 정상까지 걸어올라가진 않았는데,


언뜻 보기에 어려워보이지 않는데다가,


비록 정상까지는 아니었어도

산 아래에서 산 중간까지 걸어올라가는 길도

그닥 힘들지 않았으며,

(나랑 같이 올라간 사람들 중엔

어린 아이들과 어르신들도 적지 않았다)


내가 걸어간 그 산 중간에서 산 정상(자그마치 해발 1987m다)까지는

걸어서 2-3시간밖에 안 걸리는 거리라고

여행안내책자에 쓰여있었고,

(아마 어려운 루트였다면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산 정상에서 만난,

산 아래에서부터 걸어 올라온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특별한 장비나 특별히 전문적인 복장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있어서

(물론 난 그 케이블카가 무작정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자코파네에서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대단한 산악인이나 등산애호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냥 입던 옷 입고,

운동화 신고 올라가면 된다.


케이블을 타고 올라가

정상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슬리퍼에 민소매 티를 걸친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산정상은 좀 추웠는데,

산 아래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그런 복장이 가능한거다.




자코파네는 폴란드 남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의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폴란드 내 Zakopane 위치)

(사진 출처: http://www.skyscrapercity.com/showthread.php?t=485676)


2016년 여름에 바르샤바에서 자코파네에 갈 때,


갈 때는

바르샤바에서 자코파네까지

"Warszawa-Zakopane"직행기차를 탔고,


올 때는

자코파네에서 크라쿠프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크라쿠프에서 바르샤바까지

"Kraków-Warszawa"기차를 탔었는데,


언뜻 번거로워 보이는 두번째 방법이 더 좋다.


(2016년 7월, Warszawa발 Zakopane행 기차)
(2016년 7월, Warszawa발 Zakopane행 기차)
(2016년 7월, Warszawa발 Zakopane행 기차)


"Warszawa-Zakopane"기차는

자주 다니지 않기도 하거니와,

직행이긴 한데

쉬지 않고 바르샤바부터 자코파네까지

곧장 가는 기차가 없고,

가는 중간에 이런 저런 도시에서 멈추었다가

기관차를 바꿔서 출발한다.


우리처럼 그냥

직선 선로로 쭉 이어진 길에서 잠깐 쉬었다

가던 길로 그대로 출발하여 계속 가는 게 아니고,

어떤 도시에 도착하면

그 역까지 약간 꺽어져서 들어간다.


마치 버스가 차고지에 들어가듯이

그렇게 들어가 있다가,

기관차를 바꾸고

다시 나와서 길을 간다.


가끔은 아까 가던 방향 그대로,

가끔은 조금 방향을 틀어 약간 다른 방향으로.


한국은 철로가 주로 남북으로 뻗어있지만,

폴란드의 기차는 사방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그런 거 같다.


그런데 그 역으로 꺾어들어가서 기관차를 바꾸는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멈추었을 때 기관차를 바꾼다는 건,

크라쿠프 역을 떠난 이후부터

자코파네 가는 길에 들른 여러 역들에서

다시 출발할 때마다

기차가 번갈아

순방향으로 가다가, 역방향으로 가다가 하면서

계속 움직이는 방향을 바꿔서 알았다.


생각 같아선

그냥 시간에 맞춰 기관차를 바꾸면 될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닌지,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많이 지연되어서,

나는 예정된 시간보다

자그마치 1시간 늦게 자코파네에 도착했다.


지금 찾아보니

원래 8:25 출발, 14:06 도착이었는데,

아마 3시가 넘어서 도착했나보다.


사실 그런 게 또 여행의 묘미이긴 하지만,

첫날 자코파네에 늦게 도착한 덕분에

낮에만 자코파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못하거나

덜 하게 된 점은 좀 아쉬웠다.


그리고 이런저런 도시에서 멈출 때

얼마간 멈추는지 방송을 안해주기 때문에

기차에서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기는

뭔가 좀 불안불안, 아슬아슬하고 해서

그냥 기차 안에만 있자하니

좀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폴란드인들도 거의 나처럼 그러고 있는데,

가끔씩은 내려서 좀 산책하다

다시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어느 기차역)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어느 기차역)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어느 기차역)


대부분의 승객들이 거의 기차 안에 앉아 있었는데,

이 가족은 이렇게 나가서 사진도 찍고,

뭔가 군것질거리를 사서 먹으면서

기차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나도 이들을 보면서

나가서 좀 구경할까 생각도 들었는데,

그냥 햇볕도 쨍쨍 내리쬐고,

기분도 약간 몽롱하고,

또 그러다 나를 버리고 기차가 떠나버리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에

기차 안에만 머물렀다.


그리고 사실 기찻길 말고

뭔가 근사한 풍경이나 건물이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달리 밖으로 나갈만한

시각적 자극이 없기도 했었다.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어느 기차역)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어느 기차역)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어느 기차역)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어느 기차역)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어느 기차역)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좀 지루했지만,

기차가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창밖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들판(pole)의 나라"라는 이름의 뜻에 걸맞게

거의 평지로 이루어진 폴란드이니만큼,

처음에 폴란드 한 가운데 바르샤바에서 출발할 땐

우크라이나 국기마냥,

위에는 파란색 하늘, 아래는 노란색 평야가

창밖에 펼쳐졌다.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동영상(1)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동영상(2)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동영상(3)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그러다가 점점 자코파네에 가까워 갈수록

다른 폴란드 지역에선 자주 보기 힘든 언덕도 보이고

산도 멀리서 아득하게 등장했다.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동영상(4)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동영상(5)

(2016년 7월, Warszawa에서 Zakopane 가는 길)

그렇게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3시가 훌쩍 넘어 자코파네 역에 도착했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찬란하고

날씨는 쾌청하고,

좀 낡은 기차역이긴 했지만

자코파네의 첫인상은 아주 좋았다.


(2016년 7월, Zakopane 기차역)
(2016년 7월, Zakopane 기차역)
(2016년 7월, Zakopane 기차역)
(2016년 7월, Zakopane 기차역)
(2016년 7월, Zakopane 기차역)


제일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PKP라고 쓰인 기차역 출입구를 나가면

오른쪽으로 시외버스터미널이 보인다.


기차 말고

"바르샤바-자코파네"간 직행버스도 있긴 한데

그건 기차보다 더 오래 걸려서

7시간이 넘게 걸린다.


위의 지도에서도 보다시피

자코파네는 크라쿠프와 가까워서

두 도시를 오가는 버스가 많고,

가장 큰 폴란드 도시인 바르샤바와 크라쿠프 사이를 오가는 교통편도 아주 많아서,

바르샤바에서 자코파네까지 간다면

직행 기차보다는

크라쿠프에 들렀다 가는 루트를 택하는 게 더 좋다.


더군다나 크라쿠프 자체도

볼 거리가 많은 관광도시라서

거기에 잠시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폴란드를 방문하는 한국 여행객 대부분은

구시가가 예쁘고,

아우슈비츠와 소금광산도 가까이에 있어

할 것도 많은 크라쿠프에 "우선"

혹은 크라쿠프에"만" 가므로,

사실 "바르샤바"에서 "자코파네"로 가는

한국인 여행객은 거의 없을 것 같긴 하다.


자코파네에서 크라쿠프간 거리는 100km인데,

자코파네와 크라쿠프 오가는 버스는

중간에 웬갖 도시와 시골 정류장에서

다 멈춰서기 때문에

버스를 타면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근데

크라쿠프에서 자코파네까지 기차로 가면

3시간 넘게 걸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나도 기차로 바르샤바에서 크라쿠프쯤까지 갔을 때

'이제 다 왔구나' 생각했는데,

거기서 자코파네까지 거의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도상으로 보면 "크라쿠프-자코파네"간 거리가

"바르샤바-크라쿠프"간 거리보다 훨씬 짧은데,

아마도 "크라쿠프-자코파네"간 기차가

곧장가지 않고

버스처럼 이 도시 저 도시 다 돌았다 가고,

또 한번 정차할 때마다

오랫동안 멈춰있기 때문인 것 같다.





Zakopane

예전에 목동들이 잠깐씩 머무는 곳이었으며,

사람들이 자코파네에 정착하고 마을을 형성한 건

별로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17세기 후반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당시 자코파네와 그 인근 지역의 인구를 합쳐서

겨우 43명이었다고 하니,

뭐 시골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소박하다.


그렇게 예전에 자코파네는

사람들이 거의 안 사는 아주 작은 시골이었고,

폴란드 왕과 합스부르크 왕 등의 소유이다가

19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개발이 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브와디스와프 자모이스키 (Władysław Zamoyski) 백작이다.


그는 경매에 나온 자코파네의 땅들을 구입하여

수도, 전화를 놓고,

학교, 박물관, 우체국 등을 지으면서

그 지역을 현대화하였다.


당시에는 폴란드가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통치 받던 시절이라,

자모이스키가 자코파네 땅을 사기 전에

그 땅은 폴란드인의 땅이 아니었고,

그가 경매에서 실패했으면

그 땅을 사려고 같이 경매에 참석했던

어떤 프로이센 공작 손에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랬으면

현대화나 근대화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이,

그냥 개인의 이윤 추구나

개인적 행복을 위한 공간으로만 활용되었을 거다.


그니까 자모이스키가 당시에 한 일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어떤 돈많은 양반댁 자제가

어떤 산세가 아름다운 시골 마을 땅 대부분을

친일파나 일본인에게서 사서

그 지역에 서양식 학교도 짓고, 전기, 수도도 놓고,

그밖의 많은 현대적 건물을 지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비록 조선의 양반이 그런 일을 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근현대사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당연히 자코파네 시내 한가운데

자모이스키 동상이 있다.


내가 그걸 당연히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없다.


그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마 생각만하고 못 찍었나보다.


(Zamoyski 동상, Zakopane, Poland)

(사진 출처: http://z-ne.pl/s,doc,22144,1,1506,pomnik_hr_wladyslawa_zamoyskiego.html)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자코파네가

폴란드에서 헝가리로 탈출하는 통로이자,

독일군 게슈타포의 아지트가 되어서

독일군의 악명높은 고문실이 이 도시에 있었고,

그 고문실이 있던 건물은 아직도 남아서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Zakopane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는데,

폴란드 사람들은 흔히

zakopać(자코파치)

즉, '파묻다'라는 의미의 동사에서 파생된 수동형,

'파묻힌 것'이라는 의미라고 추론한다고 한다.


한편 학자들은

"나무가 다 제거된 땅"이라는 의미의 kopane에

za가 결합된 형태라고 추론하는데,

za는 전치사로 '너머', '뒤', '후'의 의미가 된다.


아마도 나무가 많은 산림지역에

나무를 제거하고 난 후 마을이 형성되었을테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가설이며,

아마도 그냥 무턱대고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할 근거가 충분할테니

학자들의 추론이 더 신빙성은 있겠지만,


폴란드 사람들이 비로소

자코파네의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자연에 감탄하기 시작한 게 19세기경이라고 하니,

"파묻힌 곳"이라는 어원이 사실 좀 더 와 닿는다.


그리고 정말 힘들게

자코파네에 도착해서

도시 뒤로 겹겹이 보이는 아름다운 산과

맑은 하늘을 보았을 때,


그리고

카스프로비 봉(Kasprowy Wierch)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를 갔을 때,


내가 계속 생각했던 게

"왜 이런 데가 안 알려졌지?"였던 걸 보면

다시 한번 "파묻힌 곳"이라는 의미가 더 와 닿는다.



한국 블로그에서 자코파네에 관한 포스팅을 보면,

'삶이 견딜 수 없게 될 때 항상 자코파네가 있다'

라는 폴란드 속담(?)과 더불어

어김 없이 함께 등장하는 게


대한항공에서 "내가 사랑한 유럽"의

10대 여행지로 선정되었다는 설명이다.


난 그게 너무 신기하다.


아, 정말

그런 순위를 보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


아니면 모르고 갔는데,

나중에 다른 블로그에서 보고 알게 된 걸

덧붙여 놓은걸까?


아무튼 그래서 찾아보니,

"내가 사랑한 유럽" 중에서도                                                                                                    

"유럽 속 숨겨진 유럽"이라는 소항목에서 

3위를 차지했다.


그 "내가 사랑한 유럽" 리스트에 있는 도시를

다 가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데를 가봤는데,

다른 항목에선

공감이 별로 안 가는 부분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한국인들은 대체로

"사진발" 잘 받는 곳,

첫눈에 보기 좋은 곳, 예쁜 곳을

좋은 여행지라고 여기는 듯하다)


자코파네가 "유럽 속 숨겨진 유럽도시" 중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건

나도 완전 공감한다.


비록 그게 어떤 식으로 결정된 순위인건지,


누가 정한 건지,


'숨겨짐'을 과연 순위를 정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숨겨진 여행지가

높은 득표를 받는다는 게

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폴란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

또 매우 사랑하지만,

한국인뿐 아니라 유럽인들에게도

자코파네는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니다.


사실 자코파네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긴 하지만,

스위스 도시들 같은 "큰 한 방"이 없긴 하다.


한국 블로그에 등장하는

자코파네에 대한 가장 흔한 표현이

"동유럽의 알프스"이긴 한데,

폴란드 사람들이 자코파네의 타트라 산맥을

그렇게 부르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정체성은

"중부 유럽(Central Europe)"이라,


"동유럽(Eastern Europe)"이라고

불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가

"동유럽"이라는 표현에 경기를 일으키고

여러번 "동유럽"이 아니라

"중부유럽"이라고 강조한 바 있으며,


당시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체코가 속한 중부유럽이

"납치된 서양(occident kidnappé)"이라고,

그니까

'동'보다는 오히려 '서'에 가깝다고 표현한 바 있다.                                                                  


지금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사람들에게

동유럽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같은 나라들이다.


그리고 그 나라들과 같이 묶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러니 "동유럽의 알프스"라는 표현은

폴란드에서 나오지 않았을거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역시나 그런 표현은 없다.


사실 영어로 검색해도 거의 안 나온다.

Polish alps (폴란드의 알프스)라는 표현은

자주 발견된다.


아무튼 알프스도 타트라도 아름답지만,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서 보는 알프스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면,

폴란드의 타트라산은 좀 아담하다.


만약에 내가 유럽인이고

가까운 데 알프스가 있으면

굳이 타트라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다가

자코파네는 가는 길 마저도

시간도 오래 걸리고 녹록하지 않지 않은가!


물론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실

나는

알프스보다 타트라의 아름다움에 더 감동했다.


아마도 그건 나이 때문일 수도 있고,


(알프스는 아직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체감 못하던 때,

자연보다는 인공적 아름다움에

더 감탄했던 시절에 갔었다)


사전 정보나 기대의 유무 때문일 수도 있다.


알프스는

사진에서도 많이 보고 티비에서도 많이 보고

그래서 그런지

무척 아름다왔지만,

감동적이지까지는 않았는데,


타트라 산맥의

카스프로비 봉(Kasprowy Wierch)에 올랐을 때는

그렇게까지 좋으리라고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갔다가,

그 아름다움에 정말 감동해서

그냥 넋 놓고 앉아 계속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


확실히 자코파네와 타트라산은

그들만이 가진 매력이 분명히 있고,

그 근처를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정말 한번 꼭 들려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아직 다 파헤쳐지지 않은,

보석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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