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인의 바다가 시작되는 호수
타트라 산(Tatra mountains, Tatry)에서
가장 큰 호수인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는
직역하면 "바다의 눈"이라는 의미다.
폴란드어 'morski'는 'morze(바다)'의 형용사형이고,
'oko'는 '눈'이라는 의미의 단수 명사다.
즉, 문법적 정보를 담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개의 바다의 눈"이다.
그러고보면 눈이 한 개인 건 사실 어색한데,
예전에는
타트라산에서 가장 큰 호수만
"바다의 눈"이라 부른 게 아니라,
거기에 있는 호수를 모두 합쳐 통칭해서
복수로
Morskie Oczy(바다의 눈들)라 불렀단다.
이 때의 "바다의 눈"은 둘을 훌쩍 넘는 다수인건데,
그러고보면 눈이 여럿인 것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꼭 그래야 된다는 법은 없지만
그게 가장 흔하고 익숙하니
눈은 둘일 때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니 "바다의 눈"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가
딱히 사람이나 그 밖에 익숙한 생물체의 눈을
그대로 꼭 닮은 건 아니다.
예전에 복수형일 때나
지금의 단수형일 때나 말이다.
왜 이 호수가
이런 예사롭지 않은 멋진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보려
인터넷을 뒤져보니,
우선 타트라 산의 연못과 호수들이
그 중심은 짙은 파랑이고,
그 가장자리는 밝은 녹색인 것이
공작새 날개에 달린 눈을 연상시켜서
그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매우 그럴싸한데,
난 사실 이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다.
내가 들은 버전은
여기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지하길을 통해 바다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즉 바다는 몸통이고,
이 맑은 호수는 눈인거다.
그리고 어떤 폴란드 왕이
"모르스키에 오코"에서 가라앉은 배의 파편이
뿜어내는 빛을
어디 다른 곳에서 보게 된다는,
보통 폴란드인의 믿음처럼
이 호수의 물이 바다로 연결된다는 걸 증명하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의 전설도 있다.
난 폴란드 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작품속에서
자코파네에서 지하 통로가 발칸반도 밑을 지나
바다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읽고
정말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건
므로제크가 지어낸 기발한 이야기가 아니고,
폴란드 사람이라면 다 아는 그런
흔한 전설이었던 셈이다.
폴란드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르스키에 오코"의 물이
지하통로를 거쳐 결국 도착하게 되는 종착점은
크로아티아 옆에 있는 아드리아해다.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라는 이름은
17세기에 처음 등장한다고 하며
그 전에는 "흰 연못(Biały Staw)",
"물고기 호수(Rybie Jezioro)"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 이름이 왜 붙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명시되어 있진 않지만,
아마 "흰 연못(Biały Staw)"이라고 부른 건
그것이 맑고 투명한 연못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도 하얀 것 없는,
딱히 이렇다할 빛깔이 없는 투명한 와인을
여러 유럽어와 한국어에서 "백포도주"라 부르고,
한국어에서 한낮을 "백주대낮"이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고기 호수(Rybie Jezioro)"는
물론
거기서 물고기가 많이 서식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14년 7월 22일 The Wall Street Journal에서
세계 5대 호수를 소개했는데,
비록 짧고 가벼운 기사이긴 하지만,
거기에서 가장 처음으로 언급된 곳이
바로 이 "모르스키에 오코"이며,
The Hidden Gem (숨은 보석)란 별칭이 붙어있다.
그 밖에
미국 애리조나주의 파월 호수(Lake Powell),
케냐의 나쿠루 호수(Lake Nakuru),
스위스의 루체른 호수(Lake Lucerne),
핀란드의 사이마아 호수(Lake Saimaa)가
폴란드의 "모르스키에 오코"와 더불어
이 기사에서
세계 5대 호수로 소개된 곳이다.
내가 평소 호수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이 세계 5대 호수 중에
익숙한 호수 이름이 없는 걸보면,
아마도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혼자만 알고 있긴 미안한 아름다운 곳이라는
기준으로 선정된 리스트인 것만 같다.
"모르스키에 오코"는 정말 그 명성만큼 아름다운데,
이 아름다운 호수를 감상하는데는
시간과 노력을 좀 많이 투자해야 한다.
카스프로비 봉(Kasprowy Wierch)에 오를 때처럼
그렇게 단숨에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케이블카도 없고,
그 밖의 다른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 없다.
자코파네 여행안내소에서 받은
여행안내책자에 보면
"모르스키에 오코"까지 가고 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전부 합쳐 7-8시간 걸린다고 생각하고,
호텔에서 일찍 출발하라고 쓰여있다.
나도 그 팁을 보고
자코파네 마지막 날
아침 일찍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모르스키에 오코"로 출발했다.
"모르스키에 오코"는
자코파네 시내에서 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자코파네 안에 있거나
자코파네 옆에 바로 붙어 있거나
혹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지 않다.
차를 타고 가야 한다.
그나마 그것도 "모르스키에 오코"의
가장 바깥쪽 입구까지만 차가 들어갈 수 있다.
아래 지도에서 붉은 선이
"자코파네" 시내에서
"모르스키에 오코" 입구 가는 길이다.
지도 동쪽의 점선이
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국경인데,
보다시피
슬로바키아(Słowacja)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자코파네 시내에서
앞에 "Morskie Oko"라는 푯말을 단 버스를 타고
50분 정도 가며
2016년 여름에
요금은 10즈워티(약 3000원 정도) 였다.
성수기인 여름에 버스는
15분에서 30분 정도의 간격으로 있었고,
그냥 산쪽으로 향한 일반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타면 된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고
Zakopane 발 버스에서 내린 후,
입구에서 입장료를 사서
거기서부터 또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소정의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입장료는
2016년 현재
보통 5즈워티, 할인 2.5 즈워티다.
그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서
국립공원에 드디어 입장하면
이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
걸어갈 것인지, 마차를 타고 갈 것인지.
걸어가면 약 2-3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고,
마차는 좀 더 빠르지만,
어차피 마차가 끝까지 가는 게 아니라,
마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서,
20-40분을 더 걸어 올라가야 한다.
즉,
마차를 타도 1시간 30분은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호수에 도착해서
호수를 한 바퀴 돌면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따라서
자코파네에서 버스로 왕복 1시간 40분
+
호수까지 걸어가는 시간 왕복 5-6시간
(마차타고 가는 시간 왕복 3-4시간)
+
호수에 도착해서 그 주위를 걷는 시간,
혹은 쉬는 시간 1-3시간
이렇게 합치면
총 7시간에서 10시간을 잡아야 하는거다.
그래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게 낫고,
여기를 가게 되면
하루 종일 여기서 보내게 된다고 생각하고,
"모르스키에 오코"를 위해 하루를 비워두는 편이 낫다.
사전 정보를 읽고서,
나는 갈 때는 마차를 타고,
올 때는 걸어 내려올까 생각하고 갔는데,
내가 아침 일찍 가서
나랑 같이 간 사람들이
다들 의욕이 넘치는 아침형 인간이었는지,
젊은이들뿐 아니라
어르신들, 아이들 다들 마차 안타고
그냥 걸어올라가길래,
나도 그냥 그들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마차는 중간에 쉬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 마차를 타지 않으면
중간에 탈 수 없다.
처음에 걷기로 결정하면 끝까지 걸어올라가야 한다.
소위 낙장불입이다.
마차는 내려 갈 때와 올라갈 때 가격이 다른데,
2016년 현재
올라가는 길은 60즈워티(약 18,000원),
내려오는 길은 40즈워티(약 12,000원)를 내야 한다.
마차에는 10-2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것 같고,
두 마리 말이 끄는데,
속도가 아주 느리다.
마차가 옆으로 지나갈 때
"말이다!"
라고 말하는,
4-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딸에게
어떤 폴란드 젊은 아빠가
"말이지? 우리 저 말 따라잡을까?"
라고 응대하는 걸 들었는데,
정말 컨디션 좋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겠다 싶은 속도로
터벅터벅 간다.
물론 사람보다 힘이 좋은 말은,
경사가 급한 언덕에서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테니
혹시 한번 따라잡히더라도
결국은 말이 앞설 것 같긴하다.
이 느릿느릿 가는 마차의 마부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을 하지 않고,
그냥 고삐를 살살 잡아당기며
조심조심 달래며 천천히 말을 몰고 간다.
즉,
마차 탑승의 주된 목적은 빨리 가는 것보다는
편히 가는 것인 것 같다.
걸어 올라가고 또 내려갈 때
옆으로 워낙 많은 마차가 지나가서,
마부가 뭐라고뭐라고 말을 하면서
가는 말을 살살 달래며
무슨 포대자루 같은 주머니를
말 엉덩이쪽에 대어주는 장면까지도 목격했다.
아마 그 때 말이 걸어가면서
대소변을 보는 중이었던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불결하거나 불편하기보다
다 너무 자연스럽다.
느린 속도로 천천히 올라가니
마차를 타고 가면서도 충분히
주변 경치를 여유있게 관람하고,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찍을 수 있다.
그런 느림,
그런 여유 너무 좋다.
그래서인지
계속 두다리를 바삐 움직여 걷고 있는데도
그 걷기가 운동이 아니라 휴식의 느낌이었다.
(동영상: Morskie Oko 마차)
내 앞에 가던 사람들 중에
쭈욱 늘어서 있던 마차에 오르는 사람이 없던 게
마차 타지 않고 걸어 올라간
가장 직접적 이유이긴 하지만,
그것말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사람들이 주저 없이 걸어올라가는 그 길이
나무가 많은 산으로 올라가는 거라
사실
가는 길 자체가
걷고 싶고,
직접 느끼고 싶은
꽤 매혹적인 길이었다.
그리고 전날 카스프로비 봉(Kasprowy Wierch)을
3시간 줄서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을 때,
'이럴거면 차라리 걸어 올라갈 걸'
생각했던 게,
그리고 정상에서
'다음엔 걸어올라와 봐야겠다'
고 생각했던 게
그 다음날 "모르스키에 오코"까지
마차 타지 않고
그냥 걸어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한
숨겨진 이유였던 것 같기도 하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모르스키에 오코"까지
가는 길은 일종의 산길이라
약간 경사가 있어서,
올라가는 길은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내려오는 길은 시간이 덜 걸린다.
"모르스키에 오코"는 꽤 높은 곳에 자리잡은 호수로
호수 표면이 해발 1,395미터다.
서울의 관악산이 약 630미터 정도,
북한산이 830미터 정도라고 하니,
우리나라에 있는
웬만한 산보다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거다.
지금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
올라갈 때는 2시간 20분-40분,
내려올 때는 1시간 40분-2시간 정도가 걸려서
왕복 4시간-4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왕복 4시간-4시간 30분이라고 하면
사실 어마어마한 시간인데,
실제로 걸어보면
그렇게 많이 오랜 시간이거나
먼거리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는 마차를 타도
가고 오는데 3-4시간은 잡아야 하기 때문에
목적지 체류보다
거길 가고 오는 과정이 차지하는
시간적 비중이 더 크다.
그리고
최종목적지인 "모르스키에 오코"도 좋지만
거기를 올라가고 내려가는 그 과정에서
만나는 자연이 너무 좋다.
걷다보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약수처럼 뚝뚝 떨어지는 것도 보이고,
폴란드 사람들이
그냥 빈 생수통에 담아 마시길래
나도 따라 했는데,
아주 차갑고 맑고 맛있는 물이어서
배탈 안나고 안전하게 갈증을 해결했다.
가는 길이 길다보니 중간중간에 화장실도 있고,
그 다음 화장실이
몇분 후에 나오는지도 써 있는데,
간이 화장실이라 위생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2시간 20분-40분 산행을 한 후 만나게 되는
"모르스키에 오코"는 너무 맑고 아름다워서
한동안 넋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멀리서 보면
높고 푸른 산과 맑고 큰 호수가 만들어내는
절묘한 풍경에 반하고,
가까이 가보면
그 맑디 맑은, 깨끗하고 차디찬 물에
한번 더 반하게 된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가까이서 봤을 때 아름다운데,
멀리서 보면 별 매력이 없는 게 있고,
멀리서 봤을 때 아름다운데
가까이서 보면 참 별루다 싶은 게 있는데,
이 호수는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다 아름답다.
(동영상: Morskie Oko 입구에서 찍은 전경)
(동영상: Morskie Oko 입구에서 찍은 구름 덮인 Rysy 산)
"모르스키에 오코"는
면적이 34.93ha이고
가장 깊은 곳의 깊이가 51m라고 한다.
깊은 호수라 수영은 금지되어 있다.
낚시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다리를 살짝 담그는 건 괜찮다.
단지 이렇게 맑은 물에
여행에 지친 땀내나는 더러운 내 발을 담가도 되나
하는 생각에
호수에게 좀 많이 미안하다.
호수에 발을 담그면
온몸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놀라
꿈틀꿈틀거릴 정도로
다리뼈를 지나 엉덩이꼬리뼈부터 머리뼈까지
한기가 관통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물이 그렇게 차갑다.
호수 입구에는 식당으로 사용되는
목조건물이 있고,
그 밑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몰려 있다.
사람들이 수영복을 안 입었다 뿐,
피서철 한국의 해수욕장 같은 느낌이 사뭇 든다.
"모르스키에 오코" 올라가는 길에
잠깐 바위에 걸터 앉아있는데,
내 옆에 앉아 있던 폴란드 아주머니가
아들로 보이는 소년에게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카메라를 든 소년이
"옆에 사람들이 나온다"며 투덜거렸다.
순간적으로
내가 일어나서 비켜줘야하나 생각했는데,
그 아주머니가 그랬다.
"당연히 사람들이 있지(Oczywiście są ludzie).
사람들이 없게는 안 돼(Nie można bez ludzi)."
그리고 소년이 사진을 찍었는데,
난 사실 어떻게 보면 아무말도 아닐 수 있는 그 말이 인상 깊었다.
그러게.
우리가
여행지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사람이 없는 곳에 갈 수 없는 건데
불편한 옆엣 사람 탓을 하면서,
'그런 사람이 없길' 바라는 건
참 부질 없는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어디에나 사람들은 있고,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에나
우리 인생에나
옆에 항상 반갑지 않은,
내 인생의 사진에서 오려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수 밖에 없는거다.
그들이 없는 사진을 찍기도 힘들고
그들 없이 살아가기도 어렵다.
그들의 존재는 당연하게 여기고
아쉬운대로
사진을 찍고,
또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거다.
그 이후 여행 중에
그리고 귀국 후 생활 중에
사람에 지칠 때 그 아주머니의 말을 혼자 되뇌인다.
'당연히 사람이 있지. 사람 없이는 안 돼."
그나저나
난 내게 지혜의 말을 준
그 아주머니 바로 옆에 앉아 있었기에
본의아니게
폴란드 아주머니의 "모르스키에 오코" 기념사진에
반갑지 않은 관광객 중 한명으로
찍혀들어가게 된 것 같다.
(동영상: Morskie Oko 입구 그리고 사람들)
호수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사람도 드믄드문 보이고 아주 조용하다.
난 그냥 호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한바퀴를 빙 돌려고 걷기 시작했는데,
폴란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피해서
"정착할 수 있는"
좀 한적한 곳을 찾아 나선건지,
내 앞뒤로 걷던 사람들은
맘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 거기서 호수를 감상하곤 했다.
호숫가에는
아무런 특별한 표시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길이 나 있어서
그 좁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호수를 한바퀴 돌 수 있다.
좁긴 하지만 그래도 안전하고 튼튼한 길이라
어린 아이도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호수의 풍경이 바뀌는데,
그 풍경이 너무 멋지다.
호수 옆에는
해발 2503미터의 "리시(Rysy)"라는 산이 있는데,
호숫가 산책로에서 보는 이 산도 근사하다.
이 날은 산에 구름이 걸려 있었는데,
한 번밖에 안 가봤기 때문에,
그게 항상 걸려 있는 건지
내가 또 운 좋게 그런 날 간건지 모르겠지만,
손에 닿을 듯한 곳에 걸려 있는
그 비현실적인 구름이 또 계속
"너무 좋다"라는 한국말을 내뱉게 만들었다.
중간에 보면
이 산을 오르는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도 있었다.
어느 정도의 산세인지는 모르지만,
원칙적으로 이 호수에서 난 길로
산을 오르는 것도 가능은 하다.
(동영상: Morskie Oko, Rysy 산 1)
(동영상: Morskie Oko, Rysy 산 2)
그리고 호수 입구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그 입구에 있는 목조 건물과
주변 자연이 만들어내는 광경이 또 너무 멋지다.
(동영상:Morskie Oko)
그렇게 호수 주변을 2시간 정도 쭈욱 둘러보고
원래 있던 호수 입구로 나왔는데,
호수 위에 안개 혹은 구름이
자욱하게 내려 앉아서
2시간 전에 그래도 선명한 윤곽이 보이던 Rysy산이
이제 안개 또는 구름 속에 사라져서
가물가물하다.
그것도 맨눈으로 보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천상의 것처럼 아름다운데,
사진에 담으려했더니
피사체의 윤곽이 분명하지 않아
멋져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카메라에서 손을 놓고
한참을 그냥 멍하니 쳐다보다가,
저녁에 크라쿠프로 떠나야하는 걸 생각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 걸어내려오기 시작했다.
(동영상: 안개낀 Morskie Oko)
같은 길인데
내려 오는 길은 올라가던 길보다
더 수월하고 더 빠를 뿐 아니라,
아는 길이라 심리적으로도 더 편안했다.
오후가 다 되어 올라오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다.
호수 위에 안개가 많이 내려 앉은 게 생각나서
'저 사람들은 내가 본 걸 못 보겠구나'
싶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안개가 내려 앉은 호수도 사실 멋있었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여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나
눈이 보송보송 오는 날 가도
근사할 것 같다.
물론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는 걸 전제로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내려와서
국립공원 입구에서
"Zakopane"라고 쓰여있는 버스를 탔다.
이제 50분을 버스를 타고 내려가면
자코파네 시내에 도착하겠구나 생각하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자리가 부족해 두 세명은 서서 가야했는데,
갑자기 서서 가던 그 두세명이
"이렇게 서서 자코파네까지 갈 수 없다"며
"모르스키에 오코" 입구
바로 다음역인 로터리에서 내리더니,
안 내릴 것 같이 앉아 있던
나머지 폴란드 사람들이 우르르 같이 내렸다.
그리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들 뿔뿔이 흩어져 갔다.
그 옆에 주차장이 있었는데
그래서 거기 주차 되어 있는 자기 차로 간 건지,
아님 그 근처 어디 다른 곳에 좀 산책하러 간 건지,
아님 그 둘다인지 모르겠다.
난 버스 안에 혼자 앉아 있다가
결국 기사 아저씨에게 가서
폴란드어로
"여기서 내려야 하는 건가요?" 물었더니
아저씨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구, 어떻게 해야 하나?" 하더니
내리라고 한다.
내가 얼마 내야 하냐고 하니까
3즈워티만 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5즈워티를 내고 내렸는데
나름 깎아준거다.
그래서 그렇게 얼떨결에 내렸는데,
그 "Zakopane"행 버스는 로터리에서 유턴해서
다시 "모르스키에 오코"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아마 다시 다른 승객들을 태우러 갔나보다.
난 버스를 내린 정류장에 서서
어떻게 하나 기다렸는데,
"모르스키에 오코"에서 나오는 버스는 만석이라
내가 서 있는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들 지나가고,
주변에 걸어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간만에 지나가는 사람이 보여서
뛰어가서
"Zakopane"가는 버스 어떻게 타야하는지 물어보면,
그들도 관광객이라 잘 몰랐다.
그래서 거기서 한 20-30분 정도 그러고 있다가
다시 "모르스키에 오코"입구 쪽으로 되돌아가서
(10-15분 정도 걸은 것 같다)
다른 "Zakopane"행 버스를 탔다.
거기 사람들이 다 "Zakopane"시내로 가기 때문에,
다른 도시로 가더라도
거기에 들러야 하기 때문에
다행히
"Zakopane"행 버스는 엄청 많다.
언제든지 새 버스를 탈 수 있다.
이번엔 다행히
아까처럼 로터리에서 내리는 사람 없이
무사히
시내까지,
종점인
크라쿠프행 버스를 탈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갔다.
생각하지 못한 변수로
거의 1시간 정도를 그렇게 날리고,
마지막으로 한번 다시 둘러 보려던
Zakopane 시내는 결국 다시 둘러보지 못하고,
그렇게 뚱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크라쿠프로 향했다.
자코파네(Zakopane)행 기차안에서부터
"모르스키에 오코(Morskie Oko)"까지
2박 3일간 자코파네의 모든 것이
다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계속 감탄만 하고,
다 너무 좋기만 했는데,
이제
작은 삐걱거림들이 다 거슬린다.
버스터미널에서 타려던 크라쿠프행 버스는
간발의 차이로 떠나버려서 30분을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사먹은 피자도
주문하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뭔가 끝운이 안 좋은 것 같고,
맘이 개운하지 않다.
살짝 삐쳤다.
아직도 그 때 "모르스키에 오코"에서
그 폴란드인들이
왜 그렇게 중간에 우르르 버스를 내렸는지
잘 모르겠다.
그 기사 아저씨도 난처해한 걸 보면
그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그 때 모르는 척하고
계속 버스에 앉아있는 게 더 나았을까?
아님
그렇게 내린 게 맞는 거였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신기한 건
그 때는 그 "삽질" 때문에
기분이 안 좋고
마음이 위축되고 닫혀 있었는데
지금은 뭐 아무렇지도 않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고,
그렇게 그 누구도 가해자가 아닌 상황에서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 상황도 있기 마련이다.
그 어정쩡한 에피소드 말고도
시간이 없어서
Zakopane의 또다른 주요 명소인
구바우프카(Gubałówka)에 결국 오르지 못하고
그냥 와야했던 게
그 때는 너무 아쉬워서,
'첫날 저녁에 카스프로비 봉(Kasprowy Wierch) 행 케이블카를 탔어야 했다.'
'적어도 둘째날 더 일찍 갔어야 했다.'
라는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다음에 자코파네(Zakopane)
다시 가야할 이유가 남아 있어서,
그리고 거기 가면
가장 먼저 가야할 곳이 생겨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자코파네(Zakopane)에 대해선
좋은 감정만 남았다.
언제 또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가게 되면
또 다른 자코파네의 숨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근거없는 기대감도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