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Wien) 구시가 외곽
(이전 포스트에서 계속)
지난 포스트에서는
빈 구시가 중심부의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아래 지도 A, B]를 둘러봤다면,
이번 포스트에서는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많아 보이는
구시가 바깥쪽[지도 C, E, D]을 둘러보겠다.
구시가 중심 슈테판 성당에서 동북쪽으로 가면
중세시대 느낌이 많이 나는 옛 대학가가 나타난다.
빈 대학은 19세기 구시가 외곽으로 이전되어서
현재 빈 구시가 서북쪽 [위 지도 6번]에 있고,
13세기 초부터 존재했던 옛 대학가는 구시가 내에,
위의 지도 오른쪽 아래 구시가 확대 지도에서
Nightlife Here라고 표시된 곳이다.
난 그냥 쓰윽 둘러보기만 했는데,
20대 초중반의 사람들이 대개 독일어로 말하고,
카페, 레스토랑, 상점, 이정표 등에도
대부분 그냥 독일어만 쓰여 있는 것이
현지인의 공간처럼 보이는 데다가,
바깥에 붙어 있는 카페랑 레스토랑의 음식 가격도
대체로 매우 저렴한 것이
그냥 대학생들의 아지트 같았다.
그 동네에서 가장 큰 광장인 루겍(Lugeck)에는
유럽 인쇄 활자의 혁명을 가져온
구텐베르크의 동상이 서 있다.
여행하던 당시에는 그냥 단순하게
'아마도 구텐베르크가 빈에 살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구텐베르크는 독일 중부 마인츠에서 태어나서,
마인츠에서 사망했고,
그가 살던 15세기에 오스트리아나 빈은
영토의 크기나 경제적, 정치적 중요도에서
아직 존재감이 미미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가 이곳에 들렀을 확률도 지극히 낮아 보인다.
아마도 그의 새로운 인쇄술로
책의 대량 인쇄가 가능해지고,
그에 따라 학문의 전달과 확산이 용이해진 점,
그리고 독일의 종교개혁도 가능할 수 있었던 점 등
그가 유럽 문화와 학문에 한 지대한 공헌 때문에,
이곳에 그의 동상을 세운 것 같다.
20세기 초에 세워졌다니까,
100년이 좀 넘은 동상이다.
13C초 고등교육기관이 처음 생기면서 생성되어,
14C 후반부터 19C까지 빈의 대학가였던 이 동네는
3-5층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묘한 재미를 느끼며,
19세기에 대대적으로 재정비된
빈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중세적 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중세”라는 표현은 현지인 블로거들이
이 지역을 묘사할 때 항상 등장하는데,
어떤 게 중세적 건축이고,
비중세적 건축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난 약간 어둑어둑해질 무렵 이곳에 갔었는데,
길과 건물의 조명도 별로 밝지 않고,
행인도 많지 않아,
영화 속에 나오는
중세 유럽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좁고 어두운 골목의 끝에,
빈에서 흔히 보는 익숙한 초록 지붕이 보인다.
아래 사진 왼쪽의 초록 지붕은 예수회 성당이고,
그 주위엔 옛 대학의 중요한 건물들이 붙어 있다.
예수회 성당 바로 왼쪽에 붙어 있는 건물은
Domus Universitatis라고 불리는데,
옛 빈 대학의 행정기관이었다는 안내문이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 명판 아래
독일어로 쓰여있고,
라이프니츠, 츠빙글리, 그레벨 등이
공부했음을 알리는 명패도 붙어 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의
디지털 인문학센터(The Austrian Centre for Digital Humanities)란다.
예수회 성당(Jesuit Church, Jesuitenkirche)은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되었고,
당시 예수회가
인문학, 철학, 신학 학부를 담당하며
대학의 일부가 되면서,
대학 성당(University Church, Universitätskirche)이라 불리기도 한단다.
예수회 성당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옛 수도원(old Jesuit monastery)이다.
이곳은 예전에 슈타트콘빅트(Stadtkonvikt)라는
수도원 산하 기숙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슈베르트가
어린 시절 이곳에서 공부했다는 명패도
작은 문 옆 왼쪽 벽에 붙어 있다.
이 동네는 이렇게 명패에서
아는 이름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그 건너편엔 18세기 마리아 테레사 시절 지었다는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새 강당(Neue Aula)이 있다.
빈 대학이 구시가 외곽으로 이전하고 난 이후,
현재는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Austrian Academy of Sciences, Österreichi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본관으로 사용된다.
옛 대학가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성삼위 그리스 정교회 성당(Holy Trinity Greek Orthodox Church, Griechenkirche zur heiligen Dreifaltigkeit)도
매우 특별하면서 또 아름다운 건물이다.
18세기 후반 건설된 이국적인 성당의
두 가지색 벽돌 외벽과 둥근 쿠폴은
비잔틴 르네상스 양식의 산물이고,
나는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내부의 아기자기한 장식은
오스트리아 바로크 스타일이라고 한다.
전반적 스타일과 짙은 벽돌색은
"빈"적이지 않지만,
그 금빛의 아기자기한 디테일은
매우 "빈"스러운 이 예쁜 성당엔
그리스계였던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카라얀의 가족이 다녔단다.
이 근처 어떤 건물의 외벽에는
로터투름(Roter Turm),
즉 "붉은 탑(Red tower)"라는 의미의 글자와
알록달록 예쁜 모자이크가 있다.
여행하면서는 그냥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중세시대 빈을 둘러싼 요새의 중요한 이정표였으나,
이후 도시 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이 근처에 있던 역사적 건축이라고 한다.
이게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또 하나의 중요한 빈의 명물이 되었을 것 같다.
여행안내서에 안 나오는 그런 사연을 알고 나면,
그 도시가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빈 구시가에서 서북쪽으로 걸어가면
보티프 성당 (Votivkirche, Votive church)
[지도 22번]의 뾰족뾰족한 첨탑이 보인다.
오스트리아 황제의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걸
신에게 감사하며,
19세기 말 건설한 고딕양식의 가톨릭 성당이다.
votiv[보티프]는 독일어로 “봉헌된”이라는 의미다.
보티프 성당에서 멀리 않은 곳에
현재의 빈 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14세기 구시가 북쪽에 처음 생긴 빈 대학 (University of Vienna, Universität Wien) [지도 6번]은
19세기 후반에 구시가 외곽으로 이전되었다.
신 르네상스 양식의 새 대학 건물은
빈 자연사 박물관 및 미술사 박물관과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유로화 통합 전
오스트리아 실링화 지폐에도 등장했을 정도로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건축이다.
대학 옆 빈 시청(Rathaus, City hall) [지도 7번]은
보티프 성당과 마찬가지로
신 고딕양식이고,
역시나 뾰족뾰족 높은 첨탑이 인상적이다.
이 동네 건축들은 다 크지만,
이 건물은 유난히 더 커서,
거의 한 블록을 다 차지하고 있고,
그 옆엔 그만큼 거대한 공원도 있다.
빈 시청 옆에는
국회(Parlament, Parliament) [지도 8번]가 있다.
빈 대학과, 시청, 국회 건물은
서로 인접한 곳에 자리 잡고 있고,
모두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고,
모두 거대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건축양식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각각 다 그 의미가 있다.
빈 대학은 인문주의의 부활을 상징하는
신 르네상스 양식,
시청은 번영을 상징하는 신 고딕양식,
의회 건물은
민주주의의 발상지 고대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18-19세기 유행했던 신 고전주의 양식이다.
난 이걸 보자마자,
201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보고,
고대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줄 알았었는데,
알고 보니 19세기에 건설된 신고전주의 건물이었던
아테네 국립대학, 도서관, 학술원을 연상했다.
그래서 아테네나 빈이나,
그냥 그때 이런 건축이 유행했나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아테네 신고전주의 건물 중 두 개를 만든
덴마크 건축가가
빈의 오스트리아 국회 건물도 지었단다.
내가 갔던 2018년엔 리모델링 중이었는지,
아랫부분이 가려져 있었는데,
지붕 위 4두마차를 탄 승리의 여신 니케의
청동상은 볼 수 있었다.
이런 동상이 지붕 위에 8개가 있단다.
국회 앞쪽엔
말을 길들이는 남자를
역동적으로 표현한 청동상이 서 있는데,
이 또한 4개가 있단다.
국회 앞엔 그리스 여신 아테나의 동상도 보인다.
리모델링중이라 아래가 안 보여서 몰랐는데,
원래 이건 분수란다.
분수 위 전쟁과 지혜의 신인 아테나는
금빛 투구와 갑옷을 입고,
왼손에 금빛 촉이 달린 창을,
오른손에는 온몸이 금빛인
미니 사이즈의 승리의 여신 니케를 들고 있다.
부르크 극장(Burgtheater)[지도 13번]은
빈 시청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다.
Burg[부르크]는 독일어로 “도시”라는 의미로,
18세기 마리아 테레사 여제가
왕궁 부속극장으로 처음 만들었는데,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이 초연되기도 했고,
독일어 공연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극장이라고 한다.
다른 주변 건축에 비하면 아담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매우 크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스타일이라는 극장 건물의,
장식이 많은 외벽과 둥근 앞면은 매우 아름답다.
빈 국회 길 건너편에 있는
19세기 말 신 르네상스풍 건물
정의궁(Palace of Justice, Justizpalast Wien)엔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앞 슈메를링 광장(Schmerling platz)에도
뭔지 알 수 없는 고풍스러운 건축들이 많이 서 있다.
멀리 보이는 회색 지붕 건물은 빈 대학이다.
그 광장을 돌다 보면 만나게 되는
아우어스퍼그 궁(Palais Auersperg)은
18세기 초반 바로크 양식으로 건설된 왕궁인데,
화려한 장식의 건물 자체도 눈에 띄지만,
남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콘서트가 열렸었고,
19세기엔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2차세계대전 중엔 레지스탕스의 은신처였고,
연합군의 폭격으로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고,
현재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 이벤트가 열린단다.
구시가에서 서남쪽으로 나오면
슈바르첸베르그 광장(Schwarzenbergplatz)이 보인다.
이곳은 원래 구시가의 남쪽 경계였다가,
빈이 확장하면서 19세기말부터 개발되었다고 한다.
당시 유행 스타일이 반영된 건물들은 고풍스럽고,
이제 백년을 갓 넘긴 건물들이라 외관은 깔끔하다.
슈바르첸베르그 광장엔 나폴레옹 전쟁 때 활약했던
슈바르첸베르그 대공 카를 필립(Karl Philip)의
청동 기마상이 서 있다.
그 광장 중앙의
카지노 안 부르크극장(Burgtheather im Kasino) 건물은
부르크극장과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원래는 어떤 대공의 왕궁으로 지었는데,
20세기 초 카지노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부르크극장 건물로 쓰고 있다.
그래서 "카지노 안 부르크 극장"이 되었다.
극장 위쪽 외벽의 동상은 약 2.5미터로,
모두 오스트리아의 역사적 인물들이란다.
그 건너편에 있는 인더스트리 하우스(Haus der Industrie, House of Industry)는
20세기 초반에 세운 고전주의 건축으로,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의 대관식을 했던 곳이다.
건물 지붕에는 "오스트리아 산업에 바침"이라는
의미의 독일어가 쓰여 있고,
그 위의 고민하는 형상은
대장장이 그리스 남신 헤파이스토스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해 클래식 공연을 하는 콘서트홀이 있나 보다.
인더스트리 하우스 다른 건너편에는
빈 상공인 펀드(Fonds der Wiener Kaufmannschaft)가 있다.
이 건물은 현재 빈 경영대학원이라는데,
20세기 초 건설되었다는 이 건물 외벽에는
상업의 신 헤르메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산업이며, 상업이며,
당시 오스트리아인들의 실용적인 성향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고전적 건축에도 묻어나는 것 같다.
그 옆의 심상치 않은 건물은
프랑스 대사관(Embassy of France)이다.
프랑스 대통령의 엘리제 궁의 건축가가 지은
20세기 초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이다.
그 옆에 있는,
다른 의미에서 역시나 심상치 않은 구조물은
붉은 군대 영웅 기념비(Heroes' Monument of the Red Army, Heldendenkmal der Roten Armee)다.
2차세계대전 중 빈에서 사망한 소련군을 기리며
1945년에 소련이 세웠다는 거대한 조형물은
그 크기며 스타일이며
매우 사회주의 리얼리즘적이어서,
건축양식의 다양성에 일조하긴 하지만,
빈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20세기 공산주의가 아니었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조형물까지 갖추게 되긴 했다.
그 사회주의 리얼리즘 조형물에 멀지 않은 곳엔
카를 성당(Karlskirche, St. Charles Church)[지도 40번 근처]이 있다.
페스트가 지나간 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4세가
역병의 수호자 가톨릭 성인 가롤로 보로메오의
이름을 따 지은 가톨릭 성당으로,
18세기 중반 바로크 양식으로 세워져서
세부장식이 많고 화려하다.
작곡가 비발디가 이곳에 묻혀,
성당에서 비발디 콘서트를 연다.
입장도 콘서트도 유료였던 걸로 기억한다.
(빈 카를 성당 홈페이지)
이 성당 앞엔 큰 연못이 있다.
카를 성당 서쪽엔 같은 연초록 지붕의
빈 공과대학(Vienna University of Technology, Technische Universität Wien)이 서 있다.
그 근처의
카를 광장 역(U-Bahn-Station Karlsplatz)은
19세기 말에 건설된 슈타트반(Stadtbahn) 역 건물이다.
1989년 슈타트반이 사라진 후,
현재는 그 일부가 U-반, 즉 지하철역으로,
나머지 일부가 박물관과 카페로 사용되고 있는데,
아르누보 디테일이 매우 아름답고,
크기가 작아서 그런지 앙증맞고 친밀감이 든다.
그밖에 빈 곳곳에서 특별한 디테일을 만날 수 있다.
아르누보 스타일인 것 같은 입구의 장식부터
아방가르드한 그래피티,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 외교관이 살던 건물,
그 외교관의 이름을 딴 길 위의
종교적 모티브 나무 부조,
17세기 건설된 성 로흐 성당(St. Roch's Church, Rochuskirche),
1970년대 건설된 공동주택,
20세기 초 보로메오 분수(Borromaeus fountain),
17세기 빈 시장 리벤베르그(Liebenberg) 동상,
19세기 말 성 니콜라이 러시아 정교회 성당(Russisch-Orthodoxe Kathedrale zum heiligen Nikolaus),
그리고 그 근처에 있던,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쁘고 현대적인 건축도 있다.
새벽에 도착해 저녁에 떠나는 꽉찬 3일 동안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빈을 다 보진 못했다.
두 번이나 갔지만,
워낙 볼 게 많은 빈은
주요관광지 중에서도 못 간 곳이 많다.
예전 배낭여행 갔을 때 들렀기 때문에,
이번엔 빈 외곽의 여름 궁전인
이번에 일찌감치 루트에서 제외했고,
미술사 박물관 건너편에 있던 자연사 박물관,
그 근처 쿤스트 할레 빈(Kunsthalle Wien),
모차르트 하우스,
프로이트 박물관,
만 레이 전시관도 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빈에서 촬영한 유럽 여행자의 로망
"비포 선라이즈" 투어도 있었는데,
투어는 커녕,
영화에 나왔던 장소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그밖에
내가 그냥 겉만 훑어보고 사진만 찍었던 곳,
아예 가볼 생각도 못했던 곳 중에서도
좋은 곳들이 많을 것 같다.
대단한 클래식 애호가도 아니면서
빈필을 한번 보겠다는 지극히 속물적인 목적으로
빈으로 급히 떠난 나는,
그 소기의 목적을 어영부영 달성하고 나서,
거기 간 김에 박물관에도 가본 거였는데,
그렇게 "덤으로 간" 박물관이 전시 내용이 알차고,
종류도 다양해서,
빈 박물관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하지만 박물관 안에만 있긴 또 아쉬워서
박물관 밖을 돌아다녀봐도,
"관광객들 눈 앞에 전시된"
빈이라는 도시의 구석구석이 예쁘고,
유럽 도시치고는 꽤 커서 그런지,
그 아름다움이 획일적이지 않고
시대적으로 스타일적으로 다양한데,
또 그 안에 정돈됨과 통일성도 있다.
"빈" 하면 떠오르는
단 하나의 대표 이미지가 없는데,
예전엔 그게
내가 다른 유럽 도시와 빈을
구별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고,
지금은 그게 괜찮은 게 많아서
하나를 콕 찝을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빈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보니,
관광지건 구경거리건 중심에만 몰려있는 게 아니고,
그냥 현지인의 생활공간도
고풍스럽고, 깔끔하고,
아름답고 또 자연스러워서,
빈이라는 도시의 매력이 도시 여기저기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
그래서 중심의 관광지 밖의 빈도 매우 매력적이고,
걸으면 걸을수록 또 다른 빈의 매력을
새롭게 만나게 되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여행하며 내가 느낀 “빈"스러움은
그런 “확장된 중심성”이랄까 뭐 그런 거였다.
물론 사람이건 도시건,
겉모습만 가지고 평가하는 건
공정하지도, 현명하지도 않고,
부분만 보고 전체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는 건
사실 좀 위험하기도 하지만,
며칠 좀 둘러보니,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이자,
“가장 높은 삶의 질”을 자랑하는 도시라는
그 영예로운 평판에 걸맞게
빈은 “꽤 좋은 도시" 같다.
빈필 갈 때 보니,
행정적으로
어딘지 모르게 답답한 구석도 있는 것 같지만,
빈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오래 머물면서,
중심을 좀 더 확장하면서,
그 속을 좀 더 알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