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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Jan 12. 2019

헤르체고비나 중심 모스타르의 아담하지만 묵직한 시내

UNESCO, 터키, 오스트리아, 이슬람, 가톨릭 그리고 전쟁의 상흔


모스타르(Mostar)는 

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체에서

5번째로 큰 도시란다.


물론 내가 모스타르 전체를 둘러본 건 아니지만,

그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 치곤 

생각보다 아담하다.


우선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들이 

UNESCO 문화유산인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와 

구시가 근처에 몰려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도시 하면 연상되는 사무용 고층건물이나,

자동차나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거리가  

별로 많이 안보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 지리적 입지 때문에  

아늑하고 아담해 보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이건 메쥬고리에 다녀오는 길에 찍은 동영상인데,

모스타르 시로 들어가고 나올 때 

으레 이렇게 주위의 산을 타고 빙 돌게 된다.


(동영상:모스타르 들어가는 길)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난 관광객들이 주로 모여있는, 

대놓고 관광지인 스타리 모스트와 구시가만 

둘러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타리 모스트"를 벗어나 원심력에 따라 

"아담한" 모스타르 여기저기를 걸어 다녔는데,


구시가 바깥쪽

흔한 유럽 혹은 그냥 한국도시 같은 풍경 속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내가 지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있구나'

싶게 만드는 

낯섬, 이국적임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스러움"이 있다.


모스타르는 아래 지도처럼 생겼다.

(위쪽이 서쪽, 오른쪽이 북쪽이다.)


물론 이게 모스타르 전체는 아니고,

관광지를 중심으로 만든 지도인데,

이렇게 중심에 강이 흐르고, 

사방에 산[지도의 바깥쪽 연두색]이 둘러싸고 있다.


https://viagallica.com/bosnie/lang_en/carte_ville_mostar.htm




1. 구시가


지난 포스트에 언급한 바와 같이,

1992-1995년 보스니아 전쟁 동안 심하게 파괴된 

모스타르의 구시가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지도 22번]

2004년 UNESCO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역사적 가치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겉모습만 봐도 

모스타르에서 가장 특별한 것들이 

구시가에 집약되어 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로 북적댄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그건 밤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밤 늦게까지 상점과 카페는 문을 열고,

관광객은 밤에도 조명을 받아 빛나는 

구시가 돌길을 걸어 다닌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스타리 모스트"가 가장 유명하니,

거기서 걸어서 10분은 걸리는 골목에서도 

Stari most란 이름의 베이커리를 만날 수 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스타리 모스트의 이미지도 자주 만날 수 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1993년은 스타리 모스트가 

전쟁 중 폭격으로 끊어진 해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하지만 "스타리 모스트"가 재건되었다고 해서

전쟁의 기억도 모두 사라진 건 아니라,

그냥 평범한 벽에 이런 추모비도 있다.


추모비에는 1993년 8월 6일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름이 써 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이국적인 건축과 볼거리로 가득한 

모스타르 구시가 쪽으로 걸어갈 때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오는 특별한 건축은  

네슈 아가 부치야코비치 모스크 (Džamija Nesuh-age Vučjakovića, Nesuh-Aga Vučjaković Mosque) [지도 15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잠시 후 눈 앞에 나타나는  카라죠지 베그 모스크 (Karagöz Bey Mosque, Karađozbegova džamija) [지도8번]는

16세기 건설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모스크로

소정의 입장권을 내고 모스크에 입장할 수도,

탑(Minaret)에 올라가볼 수도 있다.


코소보 프리슈티나나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에서 

모스크는 종교시설일 뿐, 관광지가 아니라,

아무리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려도 

비이슬람교도 관광객이 입장할 수 없어 보였는데,


[어쩜 입장해도 되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관광객을 위한 안내문이 전혀 없었다]


모스타르의 모스크 몇 개는 

소정의 입장료를 내면 입장이 가능하다.


난 모스타르를 한번 다 돌아보고,

그 중 한 모스크 탑에 올라가야겠다 생각하고,

우선 그냥 지나갔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이 모스크 옆엔 무덤도 있다.


프리슈티나와 포드고리차에선 

모스크 옆에 무덤이 없었는데,

모스타르와 사라예보엔 

모스크 옆에 무덤이 있는 경우가 많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여기서도 1992-1995년 보스니아 전쟁 중

사망한 사람들의 비석이 보인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Koski Mehmed-Pašina džamija, Koski Mehmed Pasha Mosque) [지도 9번]는 모스타르의 가장 대표적인 모스크로, 모스타르의 상징과 같은 모스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모스타르의 모스크는 전부다 색깔도 똑같고

서로서로 무척 많이 비슷하게 생겨서,

난 단지 위치로만 구별할 뿐,

그 모양으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17세기 초반에 건설되었다는 이 모스크는

여러모로 좀 특별하다.


도로 쪽으로 난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안뜰 중앙에 분수 같은 것이 있고,

북쪽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서너 개 있고, 

서쪽에 있는 작은 건물에는 

아랍어를 보스니아어식으로 변형한

아레비차(Arebica)라는 문자도 쓰여 있고,


그 옆에는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무덤이 있다.


[아랍문자랑 비슷한 보스니아 문자는 아레비차,

키릴문자랑 비슷한 보스니아 문자는 보산치차로

알고 있었는데,

현지인에게 이거 아레비차 아니냐고 물어보니, 

보산치차(Bosančica)라고 대답했다.

역사 학자나 언어 학자들과 달리

일반 보스니아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안뜰 남쪽에 바로 모스크가 있는데,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지,

한여름 낮 최고기온 40도일 때도

여기 가면 그래도 그늘이 있었다.


만약 모스타르에서 

모스크를 딱 하나만 들어가 본다면, 

여기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갈 때마다 사람이 많아서

'나중에 가야겠다' 하고 나와서는

결국 모스크 안과 탑 위에는 못 들어 가봤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스타리 모스트"에서 가장 가깝게 보이는,

네레트바 강 북쪽의 풍경을 완성하는 모스크가 

바로 이건데,

모스크 탑에 올라가서 보는 풍경도

이 모스크에서 보는 게 가장 좋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스타리 모스트" 사진도

아마 여기서 찍은 것 같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 가톨릭 성당


모스타르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꽤 많다.


한국 포털에서 "모스타르"를 검색해보니, 

메쥬고리에로 성지순례 간 한국 가톨릭교도들이

모스타르에 잠깐 들렀다는 글이 많이 보인다.


근데 난

가톨릭 성지를 방문하러 유럽에 온 한국인들이

모스타르에 들러   

구시가의 터키식 가옥과 모스크들 사이를 

단체로 걷는 게 좀 웃겼다. 


유럽엔 "성지"까진 아니더라도,

가톨릭의 역사가 뿌리깊고,

다양한 시대에 건축된 다양한 가톨릭 성당이 있고,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가톨릭적인" 나라나 도시도 매우 많은데,


왜 굳이 멀리 유럽까지 성지 순례를 와서 

여러모로 "이슬람적인" 도시를 관광하나 싶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모스타르는 

딱히 이슬람적인 도시가 아니다.


언뜻 보이는 모스크 수로 봐서는 

거의 다 이슬람교도일 것 같은 모스타르엔 

가톨릭 교도가 생각보다 많이 거주한다.


지난 포스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체 인구의 50%가 

이슬람교도인데,


모스타르가톨릭 크로아티아계(약 48%)가 

이슬람 보스니아계(약 44%)보다 조금 더 많다.


그리고 모스크만큼 많은 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크기는 압도적인 가톨릭 성당들이 있다.


구시가에서도 보이는 프란치스코 성당(Franjevačka crkva i samostan sv. Petra i Pavla, Franciscan Church and Monastery of St. Peter and Paul)[지도 3번]이 그 중 하나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프란치스코 성당은 19세기 중반 

오스만제국의 도움으로 처음 건설되었다가,

1992년 보스니아 전쟁 중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종전 후 가톨릭 인구가 늘어나 

2000년 다시 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중세의 고딕 대성당을 닮은 높은 첨탑과

어마어마한 규모 때문에 

8년이 지난

2018년 7월까지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그래서 미사를 볼려면, 

아직 완성 안된 정면의 대성당이 아니라,

북쪽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안에서 미사가 진행되지 않을 땐 

이 문도 굳게 닫혀 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거대한 성당 옆 첨탑까지 오르는 데는 

370계단을 걸어 올라야 하는데, 

내부의 엘리베이터로 중간 정도까지 가서,

거기서 152계단을 더 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첨탑은 입장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고,

입장료도 따로 받는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프란치스코 성당은 멀리서도 눈에 띤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난 어마어마한 규모 때문에 

프란치스코 성당이 대성당인줄 알았는데,

가톨릭 대성당(cathedral)은 따로 있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Katedrala Marije Majke Crkve, Cathedral of Mary, Mother of the Church)[지도 16번 근처]이 그것이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19세기부터 대성당 건설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1세기 후인 1970년대가 되어서야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의 대성당이 건축되었다.


공산 유고슬라비아는 

1960년대 말-1970년대초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요구가 커졌는데, 

아마 당시 종교활동에 대해서도 좀 더 관대해져 

가톨릭 대성당을 새로 지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또한 보스니아 전쟁 중에 크게 파괴되어, 

전쟁 후 다시 재건되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대성당 서쪽엔 

"티호미르 미시치" 전투에서 사망한 이들과 
크로아티아의 자유를 위해 싸운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 2017년 모스타르

라고 쓰인 기념비가 서 있다.


분명히 그 전투의 희생자 중에는 

보스니아인이나 세르비아인도 있을 텐데, 

크로아티아인만 언급한 것이며, 

크로아티아 문장을 새긴 것이며,

종교를 앞세운 정치적 기념비 같아서 

난 뭔가 마음에 안 든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3. 코사차 대공 저택


프란치스코 성당 [지도 3번]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모스타르 구시가와 다른 모습의 

"보통의 시내"가 나타난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한 블록을 걸어가면 

반파시즘 기념비(spomenik antifašizmu)가 보인다.


2차세계대전 중 사망한 사람들을 기려,

공산 유고슬라비아 시절 세운 것으로, 

이것도 비교적 최근에 복원되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그곳에서 서쪽으로 계속 걸어 

하얀색이 유난히도 햇볕 아래 반짝이는, 

공동묘지처럼 보이는 비석들을 지나면,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코사차 대공 저택(Dom Herceg Stjepan Kosača, Lodge "Herceg Stjepan Kosaca")[지도6번]이 나온다.


스티에판 코사차 대공은 

"헤르체고비나"라는 지명의 어원이 되는

바로 그 herzog로,

15세기에 이 지역을 통치했던 인물이다. 


난 그 대공이 살던 집 혹은 

당시에 건설된 건축인 줄 알고 잔뜩 기대했는데,


1959년 유고연방 시절 건설된 문화공간으로,

공산주의식 작명(?)인 

"문화의 집(Dom kulture)"으로 불리다가,

(이상하게도 중동부 유럽의 구 공산국가엔 

다 이런 이름의 문화시설이 있다.)

1994년부터 "코사차 대공 저택"이 됐다.


콘서트, 전시회 등을 하는 

이 건물과 이 주변 지역은 

모스타르의 가장 중요한 문화공간이라고 한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물론 한 여름이라 뙤약볕이 내리쬐긴 했지만,

그래도 분수도 있고,

옆에 큰 공원도 있고,

카페도 있고 해서,

잠깐 쉬었다 가기 좋은 공간인 것 같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여름이라 특별한 문화행사가 없어서인지,

아님 원래 모두에게 열린 공간인지,

수위 같은 분이 있긴 했는데,

들어가는 걸 막진 않았다.


문화의 중심답게

입구 정면에 커다란 예술작품이 달려 있었는데,

그림의 표정이 너무 처연하다.


괜히 마음이 숙연해져서 

한참 동안 그림을 쳐다봤다.


아무런 설명이 안 써 있어도,

왠지 이건 보스니아 전쟁과 관련된 느낌이다.


종전 후 20여년이 흘렀어도, 

전쟁의 상흔은 아직 가시지 않았나 보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맞은편 벽의 부조는 한없이 발랄하다.


아래층 카페에서 들려오는 

보스니아 노래를 따라 부르며,

어깨를 들썩들썩하던 

숙소 주인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이런 유희적 인간 또한 

흥 많은 보스니아인의 모습인 것 같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바깥엔 15세기 보스니아 왕국의 여왕인 

카타리나(Katarina Kosača)의 동상도 서 있다.


오스만제국으로 끌려갔다 

로마로 도망친 가톨릭교도 카타리나 여왕은 

그리스도교인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계 모두에게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고,


이 건물에 있는 미술관이

Queen Katarina Kosača Art Gallery이라서,


그녀의 동상이 여기 서 있는 것 같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코사차 대공 저택 앞 작은 로터리 남쪽엔

즈리니에바츠 공원(Park Zrinjevac)이 있다.


시민들을 위한 작은 공원으로,

나무 밑 벤치도 많고, 

어린이 놀이터도 있고,

그 밖에 다른 재밌는 설치물도 있었다.


일테면, 이런 "때늦은" 대형 부활절 달걀.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그리고 이런 브루스 리, 즉 이소룡 동상.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이거 2005년에, 홍콩보다도 먼저,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이소룡 동상이란다.


이소룡이 생전에 모스타르에 방문한 건 아니고,

보스니아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고,

중국혈통의 미국인이었던 그가

여러 민족이 모여있는 

모스타르의 화합을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이 이유를 듣고 봐도 쌩뚱맞은 이 동상을 두고,

모스타르 주민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단다.


멀지 않은 곳에 아무 설명도 없는 조형물은

누가 봐도

1993년 폭격으로 끊어졌던 "스타리 모스트"다.


뭔가 갑자기 마음이 또 짠하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4. 스페인 광장


즈리니에바츠 공원의 동쪽 출구로 나가면

스페인 광장(Spanish Square, Španjolski trg)이 나온다.[지도 4번]


1992-19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사망한 

21명의 스페인 군인을 기리며, 

종전 후 1995년에 이곳에

"스페인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스페인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교통의 요지이고,

사방으로

모스타르의 가장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우선 서북쪽엔 

조금 전에 지나 온 즈리니에바츠 공원이,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으로 이어지는 동쪽엔,

이슬람 모스크와 

바위 산 밑 붉은 지붕의 주택들이 보인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동남쪽의 높은 건물의 벽에는 

2004년 재건된 "스타리 모스트"가 

매우 긍정적인 메시지와 함께 그려져 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하지만 길 건너편 스페인 광장 동북쪽엔 

20여년전 폭격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마치 "희망만으로는 살 수 없다"거나,

"과거를 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서쪽 공중화장실 뒷벽에는

"Svemir je električni krastavac(우주는 전기 오이)" 

라는 그래피티가 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그 위에 누군가의 큰 얼굴이 그려진 걸 보고,

나는 어떤 보스니아 정치인이 한 헛소리를 

조롱하는 건 줄 알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알렉사 산티치(Aleksa Šantić)라는 

모스타르 출신 시인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이란다. 

그래피티 속 남자는 사진 속의 산티치를 닮았다.


시적 비유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다니,

나의 감성이 너무 오염됐나 보다.


그런데 그게 시의 한 구절인 걸 알고 봐도,

여전히 "우주가 전기 오이"라는 구절에 

나는 큰 감흥이 없다.


"스페인 광장"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마도 서남쪽에 있는 모스타르 고등학교(Gimnazija Mostar, Gymnasium Mostar)일 것이다.[지도 4번]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19세기 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기 건설된

신 무어 양식의 건축으로,

모스타르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산이며,


아직도 고등학교로 사용된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참고로 크로아티아 리예카의 "터키 하우스"가

크로아티아 유일의 신 무어 양식 건축이었는데,


(2018년 7월, Rijeka, Croatia)


그것보다 

"모스타르 고등학교" 건물이 더 근사한 것 같다.




5. 티토 다리


스페인 광장에서 동쪽 네레트바 강 위엔 

티토 다리(Titov most)가 있다.


다리 자체가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거나,

특별히 아름다운 건 아닌데, 

거기서 보는 

네레트바 강변의 풍경이 나쁘지 않다.


여기는 현지인의 공간이라,

"스타리 모스트"처럼 다른 관광객에 부대끼지 않고,

평화롭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강폭은 좁아도,

뾰족뾰족한 바위 강변에 부딪히며 

사나운 동물 같이 포효하며 빠르게 흘러가는 

네레트바 강 자체는 평화롭지만은 않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동영상:티토다리에서 본 네레트바 강)



티토 다리를 건너 구시가를 끝에 다다르면,

공중목욕탕(Gradska banja, Public Turkish Bath)이 보인다. [지도 5번]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통치기에

만든 터키식 목욕탕으로,

오스트리아 분리파 양식에다가 

이슬람적 요소를 혼합했다는

구시가 입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이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6. 평범한 뒷골목


구시가 가는 길 동쪽에 있는 

티토 길(Ulica maršala Tita)은 

모스타르에서 

그리고 헤르체고비나에서도 가장 긴 길로,

이 길을 따라 걸으면, 

평범한 모스타르의 뒷골목도 구경하고, 

또 가끔은 의미 있는 장소도 발견하게 된다.


어떤 곳은 마치 한국의 주택가처럼 낯익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그러다가 매우 보스니아적인 것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아래 벽에 그린 그림은 

구 유고슬라비아 전성기의 지도자 티토(Tito)다.


사람들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정서적으로 희망적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이건 "라즈비탁" 즉, 

"발전" 백화점(Robna kuća Razvitak)으로, 

1970년대 공산 유고연방 시절 건설된 

모스타르 상징과 같은 존재였는데,

전쟁 때 폭격을 맞아 

지금은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되어 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하지만 백화점치곤 심상치 않은 

원시주의(Primitivism) 느낌의 

정교한 벽의 도드라진 문양은 

여전히 개성을 품어내고 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모스타르엔 이렇게 폐허가 된 건물이 적지 않고,

어떤 건물엔 총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지도 9번] 옆 공터.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티토 길을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면 

무슬리베고비치 저택(Muslibegovića kuća, Muslibegović House) [지도 12번]이 나온다.


18세기에 건설된 대표적인 오스만식 저택으로,

호텔로 묵을 수도 있고,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구경만 할 수도 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좀 더 남쪽으로 걸어가면, 

국립극장(Narodno Pozorište, National Theatre) [지도 14번]도 있다.


1949년 유고슬라비아 시절 문을 열었고,

1990년대 초 전쟁 때는 

대피소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결국 전쟁으로 무너져 다시 복원됐다고 한다.


내가 갔던 2018년 7월초에는

저녁에 무료 공연 같은 걸 하는 것 같았다.


어떤 공연인지 궁금해하며  

볼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는데,

공연 시간 다 됐는데도 관람객이 별로 없는 것이, 

대중적인 작품이 아닌 것 같고, 

그럼 보스니아어 원어민이 아닌 나는 

이해를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느니 그냥 

모스타르의 야경을 구경하는 게 낫겠다 싶어

극장엔 들어가지 않고, 

골목을 좀 더 걸어 올라갔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19세기 건축으로 보이는 극장 건너편 건물도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는데,

한참 복원 공사 중이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좀 더 걸으니, 

이제는 익숙한 풍경인 이슬람 사원도 보이고,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가파른 계단 위 시계탑(Sahat-kula, Clock Tower) [지도 18번]도 보인다.


모스타르의 시계탑은

17세기 오스만제국 지배기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와 노비사드에도,

코소보 프리슈티나에도,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에도 

오스만제국 시절 세워진 시계탑이 있었다.


왜 오스만제국에선 시계탑을 그렇게 세웠는지,

함 찾아봐야겠다.


지금은 종은 없지만,

이 시계탑 위의 종소리는 

걸어서 3시간 걸리는 거리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그러면 모스타르에선 얼마나 크게 들렸다는 건가?


이 시계탑도 보스니아 전쟁 중 파괴되었다가

1999년 다시 복원됐다고 한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시계탑에서 좀 더 남쪽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오스트리아 지배기에 건설되었을 법한 

유럽적인 건물인 세르비아 총영사관(Generalni konzulat Republike Srbije, Consulate General of the Republic of Serbia)이 나온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세르비아 영사관 앞에 공터가 있는데,

거기에 서면 모스타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이건 서쪽의 훔(Hum) 산인데,

저 산의 정상에 올라가면,

모스타르가 한 눈에 내려다보여, 

전망이 매우 좋단다.


그런 "탁 트인 시야" 때문에, 

90년대 전쟁 중엔 사수들이 매복하던 곳이었단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단, 아직도 이 산에 지뢰가 묻혀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는 글을 읽고,

숙소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정말 그렇고, 가끔씩 폭발하기도 한단다.


그 아주머니가 지인이랑 같이 거길 갔는데, 

지인이 자기가 좋아하는 꽃을 꺾으려고 가는 걸,

옆에 실이 보이길래 말렸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주셨다.


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정부에서 제거 안 하냐"고 물으니,

당연히 안 한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셨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지뢰가 묻혀있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보스니아 전쟁이 과거 이야기가 아닌 것 같고, 

전쟁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제 그 전망 좋은 세르비아 영사관에서 내려와

계속 남쪽으로 가면,

네레트바 강변에 쭈욱 늘어선 집들 

뒤를 걷게 된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이제 계속 비슷한 것만 나타나길래,

골목길 산책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산 너머 해가 지더니, 곧 밤이 되었다.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2018년 7월, Mostar, Bosnia & Herzegovina)




모스타르는 아담하고,

특히 구시가와 "스타리 모스트" 근처는 더욱더 작다.


가끔씩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구시가의 상점과 카페는 이국적이면서 편안하고,


그런 구시가에서 나와서

아주 조금만 발품을 팔면,

터키적이고 이슬람적인 풍경 이상의 

다양한 얼굴을 만날 수 있는 모스타르는

어쩌면 낯선 방문객이 

여행하기 아주 쉬운 도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을 듯 굳건히 서 있는 

터키식 돌다리 "스타리 모스트"도 그렇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모스타르의 다리와 건물과 거리도 

모두 90년대 초반 전쟁에서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복원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훔" 산의 지뢰나, 

아직도 폐허로 남아있는 건물이나, 총 자국이나, 

모스타르 여기저기에서

1992-1995년 이 도시가 겪었던 아픔의 흔적과

계속 만나게 된다.


비록 크기는 작아도  

아직 모스타르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계속 숙연하고,

전쟁에 대해, 민족에 대해, 종교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묵직한 여행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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