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인 성모 발현지에서 온몸으로 체험하는 십자가의 길
Medjugorje 혹은 Međugorje는
한국어로 "메쥬고리에" 또는 "메쥬고례"에 가깝고,
다음과 네이버에선 "메주고리예"로,
구글에선 "메주고레"로 표기한다.
보스니아어(또는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에서
među[메쥬]는 "사이"란 뜻의 전치사 혹은 접두사,
gorje[고리에]는 "산(gorja)"의 복수로,
메주고리예(Međugorje)는
"산들 사이에"라는 의미인데,
정말 산들 사이에 빙 둘러싸여 있다.
사실 발칸반도의 도시와 마을들은
다들 산들 사이에 있으니,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 특별한 건 아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발칸반도의 흔한 산골 마을인
메주고리예가 유명한 건
이곳이 성모 발현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전세계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성지"로 알려져 있고,
한국 천주교신자의 "유럽 성지순례지" 목록에도
자주 "메주고리예"가 포함된다.
한국인 방문객이 얼마나 많은지,
메주고리예에서 이런 광고판도 봤다.
그뿐 아니라 여기 성당에선 한국어 미사도 한단다.
원래 한국어 미사 시간이 따로 있는 건지,
아님 한국인들만 따로 모여 미사를 할 수 있게
따로 장소를 마련해주는 건지는 모르겠다.
가톨릭 성지로서 메주고리예의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6명의 아이들이
메주고리예 포드브르도(Podbrdo)언덕에 올랐다가
그 곳에서 여러 번 성모마리아를 만났다며,
성모가 해 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했다.
당시 공산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처음엔 그 산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했다가,
2년 후부터는 입산을 허용했고,
이후 메주고리예에는 유고슬라비아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방문객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이 성모마리아를 만난 지 10년 후,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고,
보스니아에서 전쟁이 발발하며,
많은 도시들이 폭격을 당했는데,
희한하게도 메주고리예는 전쟁 중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기적"이 벌어졌다.
1989년엔 이제 청년이 된
성모 목격자 중 한 명의 아이디어로
유럽 여러 나라의 청년들과 함께 하는
국제 가톨릭 청년 축제를 개최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매년 7월말-8월 초 1주일간
청년 가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한
국제 청년 축제(International Youth Festival)가
열리기도 한다.
크로아티아어 수업 함께 듣던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출신 가톨릭 신자들은
그 청년 축제 참석차,
매우 여러 번 메주고리예에 다녀왔다고 했고,
그 친구들뿐 아니라 다른 유럽 가톨릭 신자들도
꽤 자주 방문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메주고리예는
현재 프랑스 루르드,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이어,
3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성모발현장소 중 하나다.
그러한 신자들 사이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루르드, 파티마와 달리,
아이들이 성모를 만났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어,
로마교황청에서는
메주고리예를 성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성모의 발현이 거짓이라는 증거
또한 없기 때문에
신자들이 방문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진 않다.
성모 발현 여부나 성지 여부와 관계 없이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종교적 각성을 하거나,
신앙심을 돈독히 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2018년 1월 크로아티아로 떠나면서,
기회 되면 메주고리예도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월말 두브로브니크 갔을 때는 못 가고,
7월에 구 유고슬라비아 여행 계획하면서
메주고리예도 그 루트에 넣었다.
메주고리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서남쪽,
크로아티아에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도에서 보듯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에서는
모스타르(Mostar)와 가깝다.
모스타르에서 메주고리예는 약 25Km 거리인데,
산길을 돌아 돌아가서,
자동차로는 30분 정도 걸리고,
버스로는 40분-1시간 30분 정도 걸리며,
편도 요금은 약 4마르카(약 2,600원)정도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를 여행하다
메주고리예에 들르는 경우도 많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버스로 약 4시간 정도 걸리고,
편도 125 쿠나(약 23,000원)의 비용이 든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가면
버스로 3-4시간 정도 걸리고,
편도 100-120쿠나(약 18,000-22,000원)가 든다.
나는 모스타르 체류 둘째 날 메주고리예에 갔다.
메주고리예에 일찍 갔다가
오후에 모스타르를 좀 더 둘러보고 싶기고 하고,
모스타르도 한여름 최고기온 40도에 육박하는데,
숙소 주인 아주머니 말이
메주고리예는 모스타르보다 더 덥다고도 해서,
너무 덥기 전에 산에 올라야 할 것 같아,
가장 이른 버스를 타고 갔다.
그 전날 모스타르 버스터미널 가서 물어보니,
보스니아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답변해주고,
메주고리예행 버스 시간을 따로 종이에 적어줬다.
하지만 그 친절한 직원이 알려준 정보는
나중에 보니 다 틀렸다.
우선 새벽 6시 45분 출발이라 적어준 그 버스는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6시 50분 출발이었고,
다른 도시에 들렀다 오느라 좀 더 늦어져서
결국 예정보다 25분 늦은 7시 15분 출발했다.
출발 시간보다 15-20분 일찍 간 나는
버스터미널에서 40-50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전날 버스터미널에서 물었을 때는
티켓을 버스 기사한테 살 수 있다고 했는데,
[발칸반도의 국가들에선 대체로 그렇다.]
알고 보니 버스 기사한테는 살 수 없고,
버스 플랫폼 옆에 있는
별도의 매표소에서 미리 구매해야 하는 거였다.
가격도 그 전날 7마르카(약 4,500원)랬는데,
실제로는 4마르카였다.
티켓을 왕복으로 살 수도 없었다.
버스로 1시간 정도 밖에 안 걸리는
모스타르와 메주고리예 간에는
여러 종류의 버스가 다녀서,
나는 갈 때는 승차감 좋은 관광버스를 탔고,
올 때는 덜컹덜컹거리는 시내버스를 탔다.
그렇게 버스 종류가 다르고, 티켓 가격이 달라서
왕복 티켓을 안 팔았나 보다.
그 친절한 버스터미널 직원이
내게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줬다고 믿고 싶진 않고,
계절마다 버스 시간이 좀 다르거나 자주 바뀌고,
시스템이 일원적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탄 버스는 약 한 시간 후
8시 10분에 메주고리예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메주고리예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것이
여느 발칸반도의 도시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모스타르나 사라예보 같은
다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도시랑 좀 다르다.
메주고리예 버스터미널에 쓰여 있는
autobusno stajalište[버스 터미널]라는 표현은
보스니아적인데,
[크로아티아어로는 autobusni kolodvor다]
그 옆 베이커리의 kava za van[테이크 아웃 커피]은
또 매우 크로아티아어적이다.
[보스니아식이면 kafa za poneti라고 썼을 거다]
"보스니아인"은 영어로 Bosnian이지만,
보스니아어로는 Bosanac 또는 Bošnjak인데,
전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란 나라의 국민,
후자는 국적과 상관 없는 보스니아 민족이다.
즉 모든 보스니아 국민(Bosanac)이
보스니아계(Bošnjak)인 건 아니고,
모든 보스니아계가 보스니아 국민인 것도 아니다.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방언이나 마찬가지인 유사한 언어를 구사하는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 등
민족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보다도 종교다.
보스니아계는 이슬람교도,
크로아티아계는 천주교도,
세르비아계는 동방정교도다.
만약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토박이가
자기는 세르비아계라고 밝힌다면,
그/그녀가 동방정교도라는 의미다.
행정적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일부지만
크로아티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메주고리예의 주민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고,
따라서 크로아티아계다.
메주고리예는 크로아티아와 가까우니,
언어도 크로아티아어식 단어를 많이 쓰고,
국적과 상관 없이
주민들이 스스로를 크로아티아인으로 여기니,
크로아티아 국기나 문장도 많이 보인다.
그래서 나에게 메주고리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토 안에 있는
"작은 크로아티아" 같았고,
다시 크로아티아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메주고리예는 아래 지도처럼 생겼는데,
나는 지도 중앙에 보이는 성 야고보 성당,
지도 왼쪽 상단에 보이는 성모 발현 언덕,
지도 가운데 상단에 있는 크리제바츠 언덕에 갔다.
대부분의 메주고리예 관광객이 방문하는 장소도
이렇게 세 군데 혹은
크리제바츠 언덕을 제외한 두 군데다.
버스터미널에서는 성 야고보 성당이 제일 가깝고,
거기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메주고리예를 신자들 사이의 성지가 되게 만든
바로 그 성모 발현 언덕 입구가 나온다.
성 야고보 성당을 처음 봤을 때,
시골 성당치곤 생각보다 너무 크고,
너무 새 건물이라 깜짝 놀랐다.
성모 발현 이후 늘어난 방문객 때문에
최근에 성당을 새로 지었나 보다 생각했다.
알고 보니,
성 야고보 성당은 19세기 말에 처음 건설되었는데,
지반이 약해 벽이 허물어져
1934년 다시 좀 더 크게 짓기 시작해서
수십 년 후인 1969년에 완성되었다.
당시에는 마을 규모에 비해
너무 성당이 큰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는데,
그러한 선견지명(?)적인 큰 규모로 지은 덕분에
10여년 후 성모 발현 소식이 알려진 후
전세계에서 몰려들기 시작한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성당에는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미사가 있는데,
아침 7시 반에는 "크로아티아어" 미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토 내에 있으면서도
보스니아어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 다음엔 여러 다양한 언어로 하는데,
내가 갔을 땐 독일어 미사를 했다.
가톨릭은 어떤 나라든지 전례가 거의 동일하고,
강론보다는 "성찬예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난 그냥 그 독일어 미사에 참석했다.
1960년대까지 천여 년간 전세계 성당에서
라틴어로 미사가 진행되기도 했고,
심지어 유럽의 성당에 가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하는 미사에
더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성당 뒤쪽엔 야외 제단이 있는데,
성모 발현 이후 급증한 방문객을 위해
1989년에 새로 세웠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이곳에서도 미사가 진행중이었는데,
폴란드어 미사였다.
아직 오전인데도 무지 더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었다.
야외 제단 뒤쪽에는 "십자가의 길"과
그리스도 동상이 있다.
1998년에 설치된
그리스도 승천 동상(Kip Uskrslog Isusa, Risen Christ statue)은
오른쪽 다리에서 계속 물 혹은 기름이
흘러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갔을 때는 어떤 폴란드 가족이
따로 준비해 온 티슈 같은 것을
하나씩 하나씩 다리에 문지르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기름 혹은 물을
병자에게 가져다 주면 도움이 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주고리에 여기저기에서
티슈 혹은 손수건도 따로 팔고 있다.]
그 가족이 잠깐 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양보하는 동안
나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다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인터넷에서는 그 미확인 물질이
흘러내리는 영상도 있던데,
2018년 7월 초 한여름에는 흘러내리기까진 않고,
약간 미끈거리는 정도였다.
(동영상: 메주고리예 그리스도 동상)
그렇게 성당 근처 구경하다,
내가 메주고리예에 간 이유인
성모 발현 언덕에 갔다.
원래 그 언덕은 포드브르도(Podbrdo),
즉 "아래(pod)" "언덕(brdo)"라는 이름의
낮은 언덕이었는데,
1981년 이후
발현 언덕(Brdo ukazanja)으로 불린다.
성 야고보 성당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던
어떤 20대 초반 여자분에게
얼마나 걸리나 물었더니,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한 20분 걸렸던 것 같다고 했다.
걸어보니 정말 성 야고보 성당에서
언덕 입구까지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거기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또 15-2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땡볕에 걷는 게 좀 지루하긴 하지만,
중간중간에 계속 화살표가 나와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
마치 한국의 불교사찰 근처처럼,
입구에는 이렇게 기념품 파는 곳이 있다.
비슷하면서 또 다른 게 신기하다.
행동 지침이 그려진 안내판도 있다.
야외지만 "성지"이므로
시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모 발현 언덕은 돌산이고,
경사도 가파른 편인데다가,
햇볕은 쨍쨍 내리쬐는데,
나무들은 키가 작아서 그늘이 별로 없다.
그래서 높이는 별로 높지 않아도
올라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루트가
내가 본 건 두 개였는데,
어쩜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상상했던 것보다 험한 길이라,
내가 지금 맞게 가고 있는 건가 싶어질 쯤엔
돌 위에 새긴, 성경의 장면들이 눈 앞에 나타난다.
내려오던 길에서 본 건 "십자가의 길"이 확실한데,
올라가던 길에 있던 게
십자가의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멀리 평화로운 메주고리예 전경도 보이지만,
대체로 이런 험악한 길과 마주해야 한다.
올라가는 게 생각보다 힘들어서,
몸이 약한 사람은 여기 오르다가
정말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헉헉대며 힘들게 정상에 오르면,
한 구석에 예수 그리스도 상이 보인다.
그리고 언덕 가운데에 성모상이 서 있다.
사진에서 많이 봤던 거라 익숙하기도 하고,
그래도 실물은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다.
성모상 오른쪽 발 아래
한국어, 크로아티아어, 영어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라고 쓴 명패가 보인다.
2001년 성모 발현 20주년 기념으로
이 곳에 성모상을 세울 때,
한국인들이 재정적 지원을 했다고 하는데,
아마 그러면서 그런 문구를 함께 넣었나 보다.
(동영상: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 언덕)
그렇게 힘들게 걸어 올라왔는데
그냥 내려가기 허무해서,
좀 앉아 있다가,
올라온 루트와 다른 루트로 다시 내려 갔다.
특별한 길이 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안내판이 세워진 것도 아니지만
"십자가의 길" 그림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 새 언덕 밑에 다다른다.
지지난 포스트에서
이상하게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는데,
메주고리예에서도 그랬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성모 발현 언덕 꼭대기에서
성모상 오른쪽 발 옆에 있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가 나오게
성모상 사진을 찍고 있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오랜만에 한국어를 보니, 내가 환청을 들었나?'
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헝가리 친구 라우라(Laura)가 서 있었다.
라우라는 2018년 2월 말부터 6월초까지
약 4개월간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어 배울 때
우리 반이었던 친구인데,
매우 밝고, 긍정적이고, 호기심 많고,
에너지가 넘치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리고 라우라는 봄에 나와 함께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Plitvice), 자다르(Zadar), 코르나티(Kornati) 군도, 크르카(Krka) 국립공원에도 함께 가고,
수업에서 크로아티아어로 두 명씩 발표할 때도
같은 팀이었던,
나한테는 조금 더 특별한 친구였다.
그 전전날인가 크로아티아어 같은 반 친구들의
단체 Whatsapp 창에서 근황 이야기할 때,
라우라는 스플리트(Split)에 있다고 했었는데,
거기서 메주고리예에 온 라우라를,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여행하다
모스타르에서 메주고리예에 온 내가,
우연히,
그것도 성모 발현 언덕 정상의 성모상 옆에서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만난 거다.
나는 정상에 오른 지 10-15분 정도 된 상태에서,
몇분 그늘에 앉아 있다 일어나 사진 찍던 중이었고,
라우라는 엄마랑 함께 왔는데,
자기 먼저 정상에 도달해서,
엄마를 기다리던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루트로 걸어 올라왔고,
아주 짧은 시간 정상에 함께 있었던 건데,
그렇게 만난 게 정말 너무 신기하다.
"성지"라 경건한 분위기라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라우라는 원래 하루 일정으로 메주고리예 왔다가
너무 좋아서 며칠 더 있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라우라랑 연락해 보니,
2019년 새해도 메주고리예에서 맞았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매우 특별한 메주고리예의 매력을
라우라는 느끼고 있는 게 틀림 없다.
정상에서 라우라를 만난 김에,
멀리 십자가 있는 산에도 가봤냐고 물었더니,
어렸을 때 한번 갔었다고 했다.
내가 올라가는 데 얼마 정도 걸리냐고 했더니,
[크로아티아 체류 후반기엔
내가 시간 강박이 좀 심했다.]
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고,
무척 힘들었다고 그랬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서,
이제 겨우 11시-12시 정도였기 때문에,
더구나 메주고리예가
한국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도 아닌데,
벌써 모스타르로 돌아가긴 좀 아쉬워서,
그리고 "성지"에서 만나리라 기대했던
"성령"의 은총도 아직까지 느끼지 못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십자가 있는 산에도 올라보기로 했다.
꼬꼬마 라우라가 올라가는 데
한 시간 걸렸으면
어른인 난 좀 덜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멀리 산 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지도를 체크하면서,
십자가 산을 향해 가다가 중간에
체나 콜로 공동체(Zajednica Cenacolo, Community Cenacolo)를 발견했다.
체나 콜로 공동체는 1983년 이탈리아 수녀가
마약, 알콜 중독, 도박 등으로
잘못된 길로 접어든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처음 만든 공동체로
이후 10여개 국으로 확대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메주고리예에 있다.
새 삶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이 곳에 머물면서
세상과 격리된 채 기도와 노동을 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나처럼 역시나 관광객인 듯 보이는
폴란드 가족밖에 보지 못했는데,
원래 인적도 드물고 조용한 곳인 것 같았다.
탁자 위에는 이 공동체에 대한 설명이
여러 언어로 적힌 종이가 놓여있었고,
(그 중엔 한국어도 있었다)
기도를 적어 넣는 통도 하나 있길래,
잠깐 쉬면서 나도 쪽지에 기도를 적어 넣었다.
체나 콜로 공동체에서 나와서
십자가가 있는 산,
즉 크리제바츠 언덕을 향해 갔다.
성모 발현 언덕에서 십자가 언덕까지
걸어서 30-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땡볕인데 나무 그늘도 없고,
또 별로 볼거리도 없이 그냥 황량한 들판이라
걸어가는 길이 좀 지루하다.
그렇게 크리제바츠 언덕 입구에 도착해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1시간,
정상에서 내려오는 데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예상과 달리 꼬꼬마 라우라보다
더 빨리 올라가지 못했다.
십자가 언덕의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성모 발현 언덕이랑 비슷한 바위 언덕인데,
언덕 자체가 여기가 좀 더 높고,
더군다나 1-3시 경에 오르니,
나무 그늘도 거의 없어서 더위 때문에도 힘들었다.
당시 메주고리예의 낮기온은 40도 정도였는데,
그렇게 땡볕 속을 걸으니,
체감 온도는 40도를 훨씬 넘는 것 같았다.
물론 습도가 낮아 그늘에 앉아 있으면,
산이라 바람도 불고,
그렇게까지 덥진 않았지만,
앉아 쉬기 보다는 걸어가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전반적으로 무지무지 더웠다.
그래서 2018년 7월말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 너무 덥지 않냐?"고 물었지만,
낮 최고기온이 비슷해도
한국에선 땡볕에 돌아다닐 일이 없어서,
난 한국의 그 "역사적인" 더위가
그렇게까지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2018년 서울보다 메주고리예가 훨씬 더 더웠다.
크리제바츠 언덕 입구에 이런 돌조각이 있고,
그 다음부터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길이 끝남과 동시에
정상의 십자가에 도달하게 된다.
"십자가의 길(Via Crucis)"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시간을 기억하며
기도를 하는 가톨릭의 의식인데,
십자가형 선고부터 부활까지
성경에 나오는 14개의 장면을 따라가며 기도한다.
이건 십자가의 길 제1처:
"예수님의 사형 선고 받으심"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중간 중간에 주변 풍경도 보인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짐"
제6처: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여기까진 올라갈 만 했는데,
이제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하면서,
걷는 속도는 느려지고,
그늘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제7처:"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
제 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넘어지심"
난 제9처와 제10처가 가장 힘들었다.
그리스도가 세 번째 넘어진 부분에서
순례자도 함께 넘어질 것만 같다.
십자가 언덕에서 들리는 말은
대부분 크로아티아어 아니면 폴란드어였다.
폴란드 친구 아냐 말이
워낙 폴란드인들이 여름에 크로아티아로
휴가를 많이 간다던데,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방에 휴가 갔다 들렀는지
메주고리에도 폴란드 사람이 정말 많았다.
몬테네그로는 러시아인이,
메주고리예는 폴란드인이 점령한 것 같았다.
그런데 나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올라가던
폴란드 가족 중에서 어린 딸 아이가
더 이상 못 올라가겠다며 울었다.
그걸 보니,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그 이유를 모르는 고된 일을 하는 건
아이한테 더 힘들겠구나',
'라우라도 예전에 저러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다른 한편으로
'그래도 나중에 라우라처럼 어른 되면,
스스로 선택해서 또 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 아이도 라우라처럼
메주고리예를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될 지 모른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이제 힘들어서 사진 초점도 잘 못 맞춘다.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리심"
이건 슬라브코 바르바리치(Slavko Barbarić)라는 가톨릭 신부의 추모비인데,
금요일마다 신자들과 크리제바츠 산의 "십자가의 길"을 하던 중 여기에서 쓰러져 사망했다고 한다.
제14처:"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
이제 "십자가의 길"은 끝나고,
정상의 하얀 십자가가 보인다.
크리제바츠(Križevac)라는 언덕 이름에서
크리즈(Kriz)는 "십자가"라는 의미다.
원래 이 산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 야고보 성당에서 이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망 1900주기를 기념하며
1933년 십자가를 세웠고,
그 때부터 "크리제바츠 언덕",
즉 "십자가 언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대형 십자가 앞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Isusu Kristu, Otkupitelju ljudskog roda, u znak svoje vjere, ljubavi i nade podigoše o. Bernardin Smoljan i zupa Međugorje.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믿음, 사랑, 소망의 증표로 베르나딘 스몰랸 사제와 메주고리에가 세움)
Od svakoga zla uslobodi sve nas Isuse!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구해주소서, 그리스도여)
뒷면에는
"33년부터 1933년까지"라고 쓰여 있다.
십자가 뒤엔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탁 트인 전망이 눈 앞에 펼쳐진다.
(동영상: 메주고리예 전망)
십자가 언덕에서 3시쯤 내려와서,
성 야고보 성당에서 묵주를 사고 축성도 못 받고,
급하게 버스터미널에 갔다.
모스타르 행 버스는 4시 15분 출발 예정이었는데,
4시 30분에 왔다.
한국 저상 시내버스처럼 생겼고,
요금은 3.5 마르카(약 2,300원)다.
햇볕 내리쬐는 창가에 앉아 졸면서 가다 보니,
1시간 후인 5시 30분쯤 모스타르에 도착했다.
난 2016년 폴란드 쳉스토호바에 가서 ,
미사 중에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몸에 힘이 다 빠지면서
한동안 무기력해지는 경험을 했고,
영적으로 치유 받은 느낌이었다.
쳉스토호바는 폴란드인의 성지지만,
메주고리예는 전세계인의 성지니,
거기에선 훨씬 더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특별한 종교적 깨달음까지 얻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우연히 친구 라우라를 만나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긴 했어도,
메주고리예에서는
내 마음이나 몸이 느끼는
특별한 체험을 하지는 못했다.
1시간에 한 대씩 미사를 하고,
대형 슈퍼마켓 같은 대형 성물가게가 있는
성 야고보 성당은
어딘지 모르게 종교적 기업 같고,
성모 발현 언덕 중앙에 서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은
상상력을 방해하고,
그 흰색 성상에 얼룩이 묻은 것 같은
영적이지 않은 것에 신경을 쓰게 한다.
오히려 처음엔 갈 생각을 안 했었던
크리제바츠 언덕의 "십자가의 길"은
사실 아직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해본 십자가의 길 중에서 최고였다.
"십자가의 길"이 만들어진 이유인,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내 몸이 이보다 더 잘 이해하고 반응하는
십자가의 길은 앞으로 만나기 어렵지 싶다.
메주고리예에 처음 갔을 때는
여름에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더운데,
왜 메주고리예에서 하필 7월말 8월초에
가톨릭 국제 청년 축제를 하나 했더니,
한여름 성모 발현 언덕에 오르고,
한여름 십자가 언덕의 "십자가의 길"을 해야,
정말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서
특별한 정신적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1981년 아이들이 성모를 처음 만난 날도
여름인 6월 24일이었다.
그렇게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영적 치유나 특별한 종교적 깨달음을
못 얻고 그냥 온 건 아쉽지만,
그래도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